<주디>(2019)

직업적 이유로 그나마 남들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을 한다. 스타란 무엇인가. 무엇이 스타를 만들고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가. 모두가 동경하고 사랑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미워하는 게 가능한 존재. 극단적으로 이중적인 시선 안에서 스타로서의 커리어, 한 개인으로서의 일상을 지켜나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스타가 그냥 탄생하는 것도 아니다. 재능, 외모, 위기관리 능력, 시기, 운, 기타 등등의 조건들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한다.

된다 해도 가시밭길이다. 외부 상황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 역시 만만치 않다. 40년 가까이 대중의 스타로 살아온 배우 김희애를 보라. 누군가 보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쥐어보지도 못할 너무 많은 기회와 물질을 누리는 삶일까? 하지만 그는 살면서 초코파이 하나를 다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이 고백이 도저히 잊히질 않는다. 모두가 그의 우아함에 반할 때, 혹독한 자기 관리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던 사람의 말. 이 하나로 배우의 모든 시간을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단적인 예일뿐이다. 다만 모두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쉽게 지고 마는 기본적인 욕망 앞에서도 꼿꼿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에만 보전 가능한, 스타의 자리라는 명암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다.

<주디>는 스타의 삶을 바로 옆자리에서 들여다보는 기분을 안기는 영화였다.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른 <오즈의 마법사>(1939)의 도로시, 배우 주디 갈란드(1922~1969)의 이야기다. 영화는 그의 인생 전체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가 비인간적 시스템 안에서 스타로 발돋움한 시작점과 경력의 가장 내리막 시기를 오가는 방식을 택했다. 카메라는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 MGM에 발탁된 어린 주디(다르시 쇼)가 학대당하며 활동을 이어가던 때와, 1968년의 주디(르네 젤위거)가 영국 런던의 투어 쇼 무대에 섰던 순간들을 교차로 보여준다.

MGM의 수장 루이 B. 메이어(리처드 코드리)는 주디를 스튜디오 소유의 물건 다루듯 한다. 하루 열네 시간 이상 일할 수 있도록 각성제를 먹이고, 불면증에 잠 못 이룰 때 다시 수면제를 먹인다. 깡마른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한 끼의 식사만 허락한다. 그나마도 수프와 커피 정도가 전부였다. 작은 일탈이라도 할라 치면 어김없이 정신 교육을 가장한 언어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어린 나이부터 비정상적인 수면 시간과 갖은 약물 투여, 폭력적 환경에 노출됐던 주디가 건강한 심신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기란 불가능하다.

중년의 주디는 속수무책으로 망가진 상태다. 누구나 그를 둘러싸고 계산기를 두들기지만, 누구도 그의 삶을 책임지려 들지는 않는다. 여러 차례의 결혼 생활은 한 번도 그의 안식처가 된 적이 없다. 양육권을 주장하는 전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주디. 약물과 술에 취해 엉망으로 구는 듯해도, 무대에서 사람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재능은 여전히 순간순간 반짝인다. 쇼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한번 스타였던 사람의 기질은 그렇게 쉽게 빛을 잃지 않는다.

<주디>(2019)

온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는 해도, 이 영화가 인물을 보여주는 태도 자체에는 종종 물음표가 생겼다. ‘주디 갈란드의 인생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에 대한 극단적 원인과 결과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유를 빼앗긴 스타가 겪어야 했던 불행의 극한 지점으로만 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다만 이 영화는 주디의 고통을 소비하지만은 않는다. 그를 초기 할리우드 시스템의 폭압에서 살아남은 스타,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무대를 사랑했던 엔터테이너, 무엇보다 자녀들을 향한 사랑을 끝내 놓지 않았던 어머니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디는 시스템의 피해자인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끝내 살아낸 생존자였다.

그리고 여기엔 또 한 명의 현실 속 스타, 르네 젤위거가 있다. 그의 음성과 육체는 주디 갈란드의 충실한 재연이라는 과제를 넘어 그 이상의 울림으로 관객을 설득해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극 중 캐릭터이자 자신의 우상이었던 배우를 연기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삶을 연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세상 그 누구보다 깊숙하게 주디의 삶을 이해했을 것이다. 연기로서 굿을 하듯 주디의 지난 세월을 위로했을 것이다.

모든 영화가 관객 각자의 것이라 당연히 생각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아닌 것도 같다. <주디>의 역할은 ‘오버 더 레인보우’라는 아름다운 노래 안에서 세월을 가로지른 두 스타가 서로를 위무하고 껴안으며 포개지는 것으로 이미 완벽한지도 모르겠다. 르네 젤위거라는 눈앞의 별을 통해, 무지개 너머 여전히 반짝이는 또 하나의 별을 보았다.

<주디>(2019)
Judy
감독
 루퍼트 굴드
주연 르네 젤위거, 제시 버클리, 핀 위트록, 루퍼스 스웰
시놉시스
<오즈의 마법사>의 영원한 ‘도로시’. 시대를 초월한 히트송 ‘오버 더 레인보우’의 주인공. 20세기 최고의 여배우 주디 갈랜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생애 마지막 무대를 런던에서 준비하는데…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막이 오르고 레전드 쇼가 시작된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