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 Shrinking>(2023)

나는 가끔 모로 누워 하늘을 보려 한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습관처럼 가끔은 관 같은데 들어가고 싶다고 너스레 떨곤 한다. 왜 하필 관이냐고 묻는 이들 있다. 이미 관을 대체할 만한 궤 구조로 만들어진 몇 가지 사물 떠올려봤다. 전화 부스 – 누울 수 없이 서 있어야 함. 칸막이 책상 – 시야가 막혀 갇힌 느낌. 대신 관의 강점은 이런 것이다. 펑키하고 키치하게 꾸미기 가능, 소재, 컬러, 페인트 광택까지도 커스터마이징 가능. 평범한 직사각형이라기보다는 마름모꼴 구조라 몸에 꼭 맞을 테고 이리저리 흐뜨러진 몸을 딱 잡아줄 것임, 뚜껑만 닫지 않으면 열린 공간이기에 명상 공간으로도 활용 가능, 수치심에 숨고 싶을 때에도 효과 있음, 탁월한 인스타그래머블 아이템, 비밀을 묻을 안락한 공간이 될 것이 틀림없음. (단, 내가 원하는 관은 오동나무관 같은… 막연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식 장례용 관은 아니다. 영화나 뮤직비디오 소품으로 쓰이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뱀파이어 전용관 그거다 그거. 심심하면 종종 서양권 관 제작 업체 웹사이트 검색해 본다. 최애 관도 미리 점찍어두었다.) 하지만 관을 방 한가운데 놓기 위한 더 넓은 집이 필요하단 점에서 이 모든 건 즐거운 상상에 그치고 만다. 원래 너스레 떨기용 수다의 종착지는 공기 중으로 흩어짐에 있지 않은가!

그제였던가? 전신 거울이 실려 온 커다란 택배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글로벌 가구 브랜드 출신 박스답게 어떤 무게든 견딜 만큼 튼튼하고, 물류 센터부터 배송 트럭까지 갖가지 현장을 이리저리 구른 흔적도 없이 도톰하고 매꼬롬한 자태를 지켜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번… 누워 볼까…? 순간 체면이 앞섰다. 혼자 사니까 여긴 내 집이니까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데, 눈앞에 놓인 큰 택배 상자에 풀썩 드러눕기 행하는 데에는 용기 따위 필요 없는데. 왜인지 머뭇거리는 자신이 조금 웃겨서 일단 잽싸게 사진만 찍고 널브러진 주변 쓰레기를 황급히 정리해 집 앞에 내다 버렸다. 그러고는 SNS에 이렇게 썼다. “혼자 살아도 혼자 있고 싶어서 관 같은 데 들어가고 싶음. 전신 거울 샀더니 관짝 같은 박스가 옴. 들어가… 볼까 조금 고민… 했지만 내다 버림. 혼자 살아도 체면은 차려야하니까…⚰️” 몇몇 이들에게 DM이 왔다. “독서실에 가보면 어떨까? 차라리 반신욕 욕조는 어때? 혼자 있는데 왜 혼자 있고 싶다는 거야?” 글쎄… 모두들 나만의 평안으로 숨고 싶지 않나? 이집트 미라처럼 평평한 네모 안에 바로 누워 숨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상태로 눈만 깜빡이고 싶은 상태, 누구나 그런 순간을 기다리는 건 아닌 건가?

언제부턴가 나는 대부분을 모로 누워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단지 물리적인 자세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체면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있지만, 집에서도 밖에서도 삐딱하게 누워서는 곧고 유려한 자세로 바로 누울 기회를 엿본다. 그러나 자꾸 모로 누워 벽이 아닌 하늘을 보려 하기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어버렸다. 모로 누워 흘겨본다. 부디 바로 누워 무위의 세계로 회피하고 싶다. 어긋난 시도라거나 요행만을 바라는 이 정신 상태가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의 주인공 지미와 닮았단 생각을 한다. 지미라는 남자도 모로 누워 있다. 나와 다른 것은 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여 체면 따위 잊은 지 오래라는 것 정도랄까.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 Shrinking>(2023)

나는 스르륵 일어나 마주 봐야만 한다

지미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생활을 잃었다. 술과 마약에 취해 밤을 지새우기 일쑤고 슬픔보다 더 큰 상실감에 찌들어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진 얼굴로 겨우 하루를 살아간다. 자신도 무엇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라서 지난 1년간 사춘기에 접어든 10대 후반 딸을 외면해 왔다. 그런 지미의 직업은 역설적이게도 심리치료사. 회차가 쌓일수록 이 아이러니는 깊어진다. 이 시리즈의 영어 원제는 “슈링킹(Shrinking)”이다. ‘줄어들다’, ‘줄어들게 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인 ‘슈링크(Shrink)’는 치료사,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등 정신 건강 전문가를 지칭하는 속어이기도 하다. (이를 다소 너절하게 번역한)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는 바로 이 아이러니에서 출발한다. 지미는 환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상담하면서도 조언을 건네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과 충동은 컨트롤하지 못한다. 자꾸 엇나가기만 하는 심리치료사는 이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 망쳐버린 주변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이 드라마가 도착하려는 곳은 결국 내면으로의 침잠이 아닌 열린 커뮤니티다. 가족, 친구, 동료, 이웃… 무작정 환대하며 부둥켜안아 주는 곳이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서로의 못남을 참고 참다 폭발하는 곳, 그러나 그 폭발로 인해 마주 보는 곳 혹은 마주 봐야만 폭발하는 곳 말이다. 이제 지미는 자신을 극복해 보려고 하고, 그럴수록 사람들과 엉키고, 멀리서 봐야만 웃긴 상황이 거듭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는 이 시리즈를 힐링 심리치료 코미디로 소개하기도 한다. 등장하는 앙상블을 보고 있자면 나와 주변을 필시 돌아보게 되니까. 그럼에도 분명히 밝히자면 불안한 지미가 펼치는 심리치료는 무척이나 위험하다. 환자와 사적인 경계를 넘나들며, 그냥 저질러보라는 처방으로 환자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환자들에게 투영할 때도 있다.

다행히 지미의 균형을 잡아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지미의 동료이자 멘토인 폴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한 솔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인디아나 존스, <블레이드 러너>의 릭 데커드를 연기한 배우 해리스 포드가 폴을 연기하는데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영웅의 얼굴로 살아온 이 배우가 이 시리즈에서는 히스테리컬한 엘리트 노인의 모습으로 중심에 서 있다. 불완전함의 소용돌이에서 시니컬하고 이성적인 처방을 내리며. 그런 폴에게도 숨기고 싶은 것이 잔뜩 있다. 젊은 시절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 파킨슨병 초기 증상들, 새로운 사랑 앞에 솔직하기 등등. 폴 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그런 식으로 회피의 방을 만들고서는 관으로 성큼 들어가려 한다.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 Shrinking>(2023)

나는 누군가가 힘껏 달리는 장면을 좋아한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기초적인 움직임 중 하나일 뿐인데 거대한 생명력이 느껴지잖냐. 여러 시간을 건너오며 달리는 장면들에는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모던 러브(Modern Love)’가 눈부신 배경음악이 되어주고는 한다.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 시즌 1 피날레에도 같은 노래가 등장한다. 지미도, 지미 주변 사람들도 이제 막 달리기 시작했다. 시즌 2에서는 나름의 방향을 갖춰 달린다. 그리고 시즌 3 제작이 확정됐다.

언젠가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 새 시즌이 나왔을 때에도 나는 바로 누울 수 있는 관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일 것이다. 여전히 성가신 인간으로 남아 모로 누워 하늘을 보려 할 것이다. 커뮤니티가 주는 기쁨은 때로 너무나 부적절하고, 개인의 슬픔은 때로 너무나 적절하니까. 이 문장은 뒤집혀도 성립할 수 있다. 심리 치료의 핵심은 마주보기, 그러니까 사랑의 한 속성이 징글징글함이기도 하단 걸 잊지 않는 것이다. 그걸 깨달으려면 둘 이상의 사이에 속해야 한다. 숨는 건 언제나 편하다. 그렇지만 혼자 안의 혼자로 마트료시카처럼 겹겹 갇혀있다 다시 벽을 깨고 나오려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힘이 든단 것쯤이야 현대인이라면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2023)
원제 Shirinking
OTT Apple TV+, TVING
크리에이터 빌 로렌스, 제이슨 시걸, 브랫 골드스타인 외
출연 제이슨 시걸, 제시카 윌리엄스, 해리슨 포드, 루키타 맥스웰 외
시놉시스
아빠이자 친구, 그리고 심리 치료사인 지미는 아내를 잃은 후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기 버거워한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어떤 것도 거르지 않고 맵디매운 진실을 말해 주는 새로운 방식을 실행해 보기로 한다. 과연 지미는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자신을 도울 수 있을까? 다시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요절복통 대소동이 벌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