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2019)

영화와 소설처럼 누군가 가공하고 창조한 이야기 속 인물의 삶은 극적이다. 그의 인생 전체라기보다 일상이 뒤흔들릴 사건이나 감정적 상황을 맞이한 때를 단편적으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상은 다르다. 우리의 시간은 극적인 사건보다 일상의 권태로 채워진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단순하게 진단하곤 한다. 특별할 것 없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그저 그런 이야기.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개인의 삶은 그 자체로 고유한 한 편의 이야기다. 크고 작은 행복과 절망을 경험하고, 동시에 주변과 관계 맺으며 성장하고 살아가는 내용의 서사. 다만 이것은 너무도 긴 시간 동안 더디게 펼쳐지므로,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것 아닐까.

<작은 아씨들>의 원작자 루이자 메이 올컷의 생각 역시 이와 같았던 것 같다. 영화 속 말마따나 “여성은 결혼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인 이야기가 아니면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던 시대. 1800년대에 펜을 들었던 이 여성 작가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마치 가문 네 자매와 옆집 소년 로리를 주인공으로 한 글을 연재해나갔다. 독자들의 반응을 회의적으로 예상했던 이들과는 달리 소설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나아가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이 됐다. 보편적인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 소설을 통해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들과 일상을 누려간다는 것의 소중함을, 누군가는 꿈의 가치를 생각했다.

<작은 아씨들>을 스크린으로 옮긴 네 번째 감독이 된 그레타 거윅은 작가가 남긴 이 한마디를 띄우며 영화의 문을 연다.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 영화는 네 자매에게 비교적 공평한 분량을 할애했던 원작과는 달리, 작가가 되길 소망하는 둘째 조(시얼샤 로넌)에게 주인공의 자격을 준다. 그러면서 자매들의 이야기가 조의 펜 끝을 통해 탄생한 기록임을 분명히 한다. 자신의 글이 그리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이는 조에게 동생 에이미(플로렌스 퓨)는 이렇게 말한다. “쓰이지 않으니까 중요한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 걸지도 모르지.” 영화는 그렇게 생생하게 기록된 ‘진짜’ 여성의 삶, 또한 인생 가장 보통의 순간들이 실은 기억하고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임을 지적하고 있다.

<작은 아씨들>(2019)

거윅은 시간 순 배열인 원작의 구성을 과감히 뒤바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방식을 택했다. 어른이 된 네 자매들의 삶 속에는 가난했지만 따스함으로 가득한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성인으로서 각자가 새롭게 감내해야만 하는 어려움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가족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실은 세상의 점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의 절망,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때의 고통 같은 것들은 자매들의 인생을 조금씩 무겁게 만든다. 과거의 사소한 선택과 판단은 현재의 어떤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은 아씨들>은 그것이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과정일 뿐 결과가 아니라고 말한다. 경험은 양분이 되고, 내가 있는 곳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시대적 제약과 개인적 슬픔에 주저앉지 않으려는 태도와 용기는 값진 것이다. 다분히 교훈적인 주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자체가 교조적이지 않은 이유는, 주인공들이 자신의 성격적 결함이나 못난 실수들을 부단히 다듬어가며 더 나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매일같이 일상적 투쟁을 거듭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를 중요하게 언급하고 싶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미어지는 듯했던 로리(티모시 샬라메)의 고백 장면 역시 물론 훌륭했다. 그러나 조와 엄마(로라 던)가 나누던 대화가 그보다 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욱하고 못된 성질을 다스리기가 어렵다는 조에게 엄마는 이렇게 얘기한다. “어떤 천성은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단다.” 넌 여자애가 너무 고집이 세,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성질 좀 죽여. 이런 꾸지람 대신 ‘고결함과 드높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화법은 얼마나 다정하고 훌륭하단 말인가. 우리가 누군가의 인생에 의미 있는 한 페이지로 남는 건, 결국 이런 사려 깊은 태도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아씨들>(2019)
Little Women
감독
 그레타 거윅
주연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 엘리자 스캔런
시놉시스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는 네 자매를 우연히 알게되고 각기 다른 개성의 네 자매들과 인연을 쌓아간다. 7년 후, 어른이 된 그들에겐 각기 다른 숙제가 놓이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