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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영화
평일 오후 설화 속의 연인
포스터 한 장으로도 이미 매혹되는 영화가 있다. 최근에는 <운디네>가 그랬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뒤를 돌아보는 여자의 눈. 곧 폭풍 같은 감정의 격랑이 일어날 듯 보이는 그 눈을 마주치자마자 마음에는 깊은…
불가능한 이상을 향한 무모한 믿음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를 만나기 직전, 운디네(폴라 비어)는 자신을 버리고 간 연인 요하네스(제이콥 맛쉔즈)와 함께 오던 카페를 찾았다. 30분 뒤에 돌아올 테니 기다렸다가 다시 날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당부했지만 요하네스는 이미 떠나고 없다.…
휠체어를 탄 라푼젤, 성을 탈출하다
클로이(키에라 앨런)에게 집은 더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 때문이다. 요 근래 클로이는 엄마의 행동이 어딘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했다. 몇 가지 물증 역시 확보했다. 그러면서 분명해진 감각은, 엄마가 나를 위험에…
우리의 일상도, 누군가에겐 공포다
* 영화 <런>(2020)과 <나이브스 아웃>(2019)의 경미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미합니다만, 그래도 영화를 보신 뒤에 글을 감상하실 것을 권합니다. 세상엔 사전에 예습을 하고 봤을 때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도…
밥으로 쌓은 정, 마음으로 맺은 인연
혼밥, 간편식의 시대다. 바쁘고 삭막하게 돌아가는 도시의 시간 안에서 요리의 과정은 종종 번거로운 것 취급당한다. 타인과 함께 하는 식사도 마찬가지다. 언택트 시대의 밥상 풍경은 더하다. 요즘엔 식사가 나누는 기쁨보다는 고독의…
저기 거울 속에, 당신이 기다리던 얼굴이 있다
<밥정>(2018)의 주인공인 ‘방랑식객’ 임지호 셰프는 영화 내내 극복할 수 없는 결핍을 채우려 노력한다. 어린 자신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돌아오던 길에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는 생모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에, 임지호 셰프는…
놀이공원의 로미오과 줄리엣
사람을 단번에 무장해제시키는 공간이 있다. 놀이공원은 그중 하나다.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수많은 놀이기구, 사람들의 웃음과 비명과 음악이 뒤섞인 소리들, 커다란 탈것에 실려 춤추고 노래하는 캐릭터들의 퍼레이드 행렬…사람들의 즐거움을 지향하는 장소라는…
긍정하기로 했다. 세계의 비극에 맞서는 짧고 순진한 위로를.
로맨스물도 사람을 얼얼하게 만들 수 있구나. <어트랙션>(2019)을 보고 난 뒤 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스톡홀름의 유서 깊은 놀이공원 그뢰나 룬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미오와 줄리엣> 풍의 로맨스는 좀처럼 은유를 모른다.…
사소하고도 특별한 우리의 여름밤
모든 계절의 낮과 밤 풍경이 다르지만, 여름밤만큼은 좀 더 특별한 감흥을 느낀다. 시끌벅적하고 뜨거운 낮이 사라진 자리에 어둠이 찾아드는 소리와 모양은 근사하다. 밤이 급작스레 찾아오는 듯한 다른 계절과 달리 여름은…
그런다고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남매의 여름밤>은 콕 짚어 줄거리를 말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물론 하고자 한다면 불가능하진 않다. 아빠(양홍주)의 사업이 망하자,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 남매는 아빠와 함께 짐을 싸서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김상동)의 오래 된 이층 양옥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