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놀리아>(1999)

<오즈의 마법사>,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 <스타탄생> 등의 걸작을 남긴 당대 최고의 스타 주디 갈란드의 인생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아역배우 시절 그의 에이전트 노릇을 했던 어머니는 오디션 기회를 대가로 영화계의 거물들을 딸의 침실로 밀어 넣었다. 그는 스타가 된 뒤에도 “너는 예쁘지 않다”는 말을 밥 먹듯이 들어야 했고, 체중 조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하루 식사량은 치킨 스프 한 접시로 제한당했다. 무리한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스튜디오가 강권한 암페타민 기운으로 일을 하다가, 잠 못 드는 밤이 되면 역시나 스튜디오가 강권한 모르핀 기운에 의지해 잠이 드는 날이 계속됐다.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 내내 학대와 심각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주디 갈란드의 말년은, 다섯 번의 결혼 실패와 약물 중독으로 인한 급격한 건강 악화, 재정 파탄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르네 젤위거가 말년의 주디 갈란드로 분한 전기영화 <주디>를 보는 것은 온몸이 욱신거릴 만큼 고통스럽다. ‘Talk of the Town’이라는 이름의 런던 나이트클럽에서 5주간 공연을 서는 동안, 주디 갈란드(르네 젤위거)는 당연한 수순처럼 별 볼 일 없는 남자(핀 휘트록)와 사랑에 빠지고, 양육권을 잃고, 공연을 망친다. 희망이 모두 소진된 뒤의 황폐한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오른 무대에서 온몸의 희망을 쥐어짜 <오즈의 마법사> 수록곡인 ‘Over the Rainbow’를 부른다. “다음 곡은 뭔가가 이뤄지는 노래는 아니에요. 늘 꿈꾸던 어떤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그런 얘기죠. 어쩌면 그렇게 걸어가는 게 우리 매일의 삶일지도 몰라요. 그렇게 걸어가는 게 결국엔 전부죠.”라는 말과 함께. 마치 늘 자신의 부족한 자존감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았고, 사랑을 쏟고 그 사랑을 돌려받을 상대를 찾아 헤맸으나 끝내 그러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듯. 주디 갈란드는 조금만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남자라면 오래 고민하지 않고 결혼했고, 그의 곁에서 마침내 안정과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갈구했으나, 끝내 쇼 비즈니스가 그에게 안긴 상처에서 달아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 걸었다.

“멍청한 짓인 거 알아요. 정말 멍청하죠. 치아 교정기를 낄 생각을 했다니. 교정기를 끼면 날 사랑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뭐 때문에 그러겠어요? 나조차도 모르겠는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난 정말 줄 사랑이 많은데, 누구한테 사랑을 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매그놀리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그 고통을 어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 더 고통스럽다. 왕년의 퀴즈 신동이었다가 지금은 철저히 망가진 삶을 살고 있는 도니 스미스(윌리엄 H. 메이시)도 그렇다. 그는 어린 시절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타가 되었지만 어른들에겐 동물원 원숭이 같은 취급을 당했고, 벌어들인 돈과 명예는 부모가 다 강탈해갔으며, 번개를 맞은 이후로는 예전처럼 영민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모두의 조롱거리가 된 오늘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도니에게, 한때 퀴즈 신동이었다는 건 유일한 자랑이자 형벌이다.

단골 술집의 바텐더 브래드(크레이그 크빈스랜드)처럼 치아교정기를 끼면 브래드가 자신을 사랑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이 일하던 회사에서 교정기를 맞출 돈을 훔쳐 달아나던 도니는, 문득 다시 돈을 돌려놓기로 마음을 바꿔 먹고 돈을 돌려놓기 위해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다가 난데없이 떨어진 개구리비를 맞고 길바닥에 떨어진다. 때마침 자신을 발견하고 구해준 경찰관 짐(존 C. 라일리)에게 도니는 오열하며 호소한다. 정말 줄 사랑이 많은데, 대체 누구한테 사랑을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긴,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응당 자신을 사랑해줬어야 했던 부모는 자신을 학대했고, 자신에게 열광했던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을 비웃으며, 심지어는 온 우주조차 벼락을 내리는 것으로 자신을 조롱했는데. 누구에게 사랑을 주면 그 사랑을 되받을 수 있는지 도니로선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기에 필요도 없는 교정기를 끼면서라도 사랑을 갈구하고 싶었겠지.

<매그놀리아>(1999)

“이 내레이터의 좁은 소견으로는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니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우연일 수가 없다.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그렇다. 이런 이상한 일들은 항상 일어나고 있다.” 9층에서 투신 자살을 하려 뛰어내리던 도중 6층에서 부부싸움을 하던 어머니가 발사한 총에 맞아 사망한 청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영화 <매그놀리아>는,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죄악이 갑작스러운 개구리비로 해소가 되는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자신이 살던 동네와 같은 이름을 가진 부랑자들에게 맞아 죽은 신사, 제 죽음에 공범으로 기록된 청년, 때 맞춰 내리는 개구리비 같은 것들이, 결코 우연일 리가 없다고 말하는 내레이터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기분이 묘해진다. 신의 섭리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정말로 인간사에 어떤 의지를 가지고 개입하는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왜 이리도 자주 고통을 겪는 걸까? 신의 유머감각은 왜 이리도 잔혹하게 비틀렸는가?

어쩌면 그건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좌절을 납득하기 위한 인간의 오랜 몸부림인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겪는 이 고통에도 사실은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극복도 할 수 없는 잔인하고 뒤틀린 우연의 연속을 견디기 위해,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섭리와 계획이 있어서 이 고난을 넘기고 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기로 한 건 아닐까. 그래야,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주디의 말처럼, 잔혹한 우연에 맞서 지지 않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결국 계속 걸어가는 게 전부일 테니까.

런던에서 주디 갈란드가 바비탈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난 1969년 6월 22일, 캔자스에는 토네이도가 일었다. 플로리다 다음으로 토네이도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 캔자스인 걸 감안한다면 그건 아마도 우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연과 필연은 대체 무슨 기준으로 구분하는 걸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뜻 없이 발생하는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간은 그 위에 맥락을 얹고 의미를 부여해 시간 위에 절개선을 그려 넣고 그걸 운명이라 부른다. 그래서 난 일평생 쇼 비즈니스의 참혹함에 시달리던 주디 갈란드가 무지개 너머 어딘가로 떠났다고 믿기로 했다. 캔자스 주 농장에서 숙모와 숙부와 함께 살다가 토네이도에 휩쓸려 마법의 대륙 오즈로 날아간 도로시처럼.

<매그놀리아>(1999)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주연 톰 크루스, 필립 베이커 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윌리엄 H. 머시, 줄리앤 무어
시놉시스
LA 산 페르난도 벨리의 어느 하루. 거물 프로듀서 얼(제이슨 로바즈 분)은 말기 암환자로, 남은 생이 얼마 되지 않는다. 간병인 필(필립 세무어 호프만 분)에게 오래 전 헤어진 아들(탐 크루즈 분)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그 아들은 지금 ‘여성공략법’ 강사로, ‘유혹하여 파멸시켜라’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남성 우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이한 인물.
얼의 돈을 보고 결혼한 젊은 린다(줄리언 무어)는 남편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탕스럽고 부정했던 과거의 죄의식으로 혼란에 빠진다. 얼의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원로 방송인 지미(필립 베이커 홀 분) 역시 암 판정을 받았는데, 그에겐 자신에게 성폭행당한 이후 마약과 매춘에 빠진 딸 클라우디아(멜로라 월터스 분)가 있다.
지미는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해보지만 거절당한다. 클라우디아의 집에 한바탕 소란이 일자,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짐(존 C. 라일리 분)은 클라우디아의 부서질 듯 여린 모습에 사랑을 느낀다. 지미가 진행하는 어린이 퀴즈쇼의 퀴즈왕 스탠리(제레미 블랙먼 분)는 아버지의 승부욕에 휘둘리고, 같은 프로의 퀴즈왕 출신인 도니(윌리엄 H. 메이시 분)는 사람들의 빈축이나 사는 무력한 실업자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