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흘러가고 빛바랜 사진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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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처음 들은 동물원의 노래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1집 타이틀곡이었던 ‘거리에서’였을까? 친구가 턴테이블에 동물원 2집 바이닐을 올리고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틀며 “인트로 정말 죽이지 않냐?”라고 말했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두 앨범 모두 비슷한 시기에 들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김광석의 절창과 김창기의 빼어난 곡쓰기 재능이 더해진 두 곡은 동물원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당시 나는 모으고 있던 카세트테이프를 처분하고 CD로 한참 감상 매체를 바꾸고 있었다. 어렵게 한 장, 두 장 모은 CD 부클릿 뒷면에 구매한 날짜를 적곤 했다. 지금도 갖고 있는 동물원 1집 CD 뒷면엔 그날의 글씨가 적혀 있다. 동물원의 다른 앨범들도 CD로 모았지만, 지금은 1집만이 남아있다. 삶의 중간중간 그 음반들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1집 CD를 정리하지 못한 건 거기에 내 인생의 노래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김창기가 만들고 부른 ‘잊혀지는 것’이다.
처음엔 나도 ‘거리에서’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듣고는 동물원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 타이틀곡이라는 건, 즉 ‘뜰 만한’ 노래라는 뜻이다. 김창기는 한 인터뷰에서 ‘거리에서’는 작정하고 ‘뜨려고’ 만든 노래고, 그런 여린 감수성의 가사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알고 의도적으로 쓴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작정하고 만든 노래들 뒤에 자리하고 있던 김창기의 본래 모습을 발견한 건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김창기는 동물원 1집 때부터 사랑에 실패한 화자(話者)를 내세운 노래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잊혀지는 것’은 그 시작점에 있는 노래였다. 김창기의 노랫말에 매료된 많은 이들이 ‘잊혀지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상에 관해 이야기하곤 한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은 유형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김창기는 일상의 언어를 가지고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는 그런 노래들을 만들었다. 평범한 언어를 가지고 누구보다 비범한 노래를 만들어왔다. ‘잊혀지는 것’에서 그는 사랑의 시작과 헤어짐,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상황에 대해서까지 노래했다. 이는 곧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의 노래엔 늘 아득하고 아련한 그리움의 정서가 담겨 있었다.
나에게 ‘잊혀지는 것’은 동물원, 즉 김창기의 노래이지만, 대중적으론 김광석이 다시 부른 버전이 더 유명할 것이다. 김광석 말고도 스위트피(김민규)가 커버한 적이 있고, 이소라가 방송에서 부른 버전도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김광석과 이소라뿐 아니라 그 어떤 명창이 다시 부른다 해도 김창기의 그 어설픈 노래가 주는 감동을 이기진 못한다. 그가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이라 노래할 때의 수줍은 떨림은 가창력의 범주로 이야기할 만한 것이 아니다. 간주와 후주에서 들리는 이성우의 기타 연주는 그리움을 잔뜩 담고 멀어지는 기적 소리 같다.
그래서 이 위대한 노래의 원곡을 매번 김광석이라고 쓰는 ‘방송국 놈들’이 밉고, 가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 노래에서 “시간은 흘러가고 빛바랜 사진만 남아”란 2절 가사를 빼먹고 똑같이 1절 가사로 녹음해서 다른 가수들이 그대로 따라 부르게 한 김광석도 원망스럽다. 1절의 “시간은 흘러가고 꿈은 소리 없이 깨어져”와 2절의 “시간은 흘러가고 빛바랜 사진만 남아”는 완전히 다른, 이별 뒤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는 중요한 문장인데 이 맥락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동물원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 어설픔이 주는 감동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들을 때마다 아릿하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