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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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깊은 밤, 서울의 한 지하철 역사 안에는 여자들만이 가득했다. 흡사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의 한 장면 같았다. 지상을 향해 줄지어 계단을 오르던 여자들. 길게 뻗은 언덕길을 숨죽여 걷던 여자들. 경찰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붙잡고 어디를 가냐 물으며 신분증 검사를 한다는 흉흉한 말이 돌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역사 안은 은밀한 집결지처럼 느껴졌다. 여자들은 집에서 쓰던 담요 몇 장을 한아름 안은 채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오기도, 편의점 로고가 박힌 검은 봉지 가득 미니 초코바나 비스킷을 챙겨오기도 했다. 화장실 한쪽에 여성용품을 잔뜩 가져다 두기도 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오로지 그 밤을 함께 견디기 위해서. 그건 무슨 마음일까. 지독하리만큼 매서운 한파를 뚫고 달려오게 한 마음. 경찰차벽으로 봉쇄된 아스팔트 도로에 남겨진 사람들을 지키려는 마음은. 차마 오지 못한 이들이 온라인으로나마 같이 밤을 새워가며 함께 하던 그날 밤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이 보듬고 지켜내려던 건 딱히 거창한 게 아니었다. 고립된 이들을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것. 단순하고도 자명한 이유, 그거 하나였다.
그러나 달랑 그 마음 하나만으로 그 밤을 견뎌내기에는 너무 추웠다. 목덜미에 붙여두었던 핫팩을 떼어 발바닥으로 옮겨 붙이고, 장갑 낀 두 손으로 깡깡 언 발을 주무르며 별짓을 다 해봐도 이미 몸에 들어찬 냉기가 빠질 리 만무했다. 어느덧 지하철 막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아스팔트 위를 콩콩 뛰거나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두 팔을 하늘 위로 크게 휘저었다. 체온을 올리려면 몸을 움직여야 했다.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경찰들에게 차를 빼라고 다그쳤다. 높은 건물 하나 없이 깜깜하기만 한 남태령 일대는 밤새 계속되는 시민들의 자유 발언이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처럼 끝없이 번졌고, 잠시 발언이 멈출 때는 적막할 틈도 없이 케이팝이 흘러나왔다. 문선을 추며 자못 비장하게 민중가요를 부르던 시위 현장이 더 익숙하던 내게, 색색의 LED 응원봉을 흔들며 케이팝을 부르는 집회가 제법 재밌게 느껴진 건 그날 밤 덕분이었다. 에스파의 ‘위플래쉬’ 정도는 돼야 영하의 추위에 맞설 수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생각했다. 오직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해 품을 들이는 일. 그야말로 온 마음을 쏟아붓는 행위에 대해서. 그런 경험은 살면서 흔치 않다. 어쩌면 누군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경험일 수도.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이익과 효율로 두면, 타자를 향한 지지와 응원은 늘 허비의 영역에 놓이게 된다. 그럴 시간에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는 자본주의적 잠언은 그 사랑을 매번 깎아내리고 우습게 만든다. 너무 맹목적이라고,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냉소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태도가 마치 대단히 예리하고 현명한 것인 양 구는 자들. 중립 기어를 박는다는 표현 뒤에 숨어 타자로부터 자신을 둔화시키는 것이 마치 경쟁에서 살아남는 훈련쯤으로 착각하는 자들. 선의를 위선으로 감지하고, 계급과 폭력은 필연적이라 믿는 자들에게 세계는 조롱하고 의심할 거리로 넘쳐난다. 그들에게 누군가의 고통 섞인 절규와 생을 내건 투쟁은 그저 불운한 자들만의 몫일 뿐이다. 불행이 늘 자신을 비껴갈 거라는 착각은 얼마나 우스운가. 역설적으로 ‘인생은 복불복’이라는 자조적이고 굴종적인 밈에 절여진 삶이란 또 얼마나 너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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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상우조선의 외주인력 관리소장을 맡고 있는 용우는 하청 노동자들과 경영진 사이에서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한다. 용우는 평생 거제에서 조선업에 종사하며 생활을 일궈온 하청 노동자들과 자신의 처지를 딱 잘라 선 긋기 어렵다. 그들은 관리 대상이기 이전에 함께 땀 흘리며 고된 현장을 지켜온 동료이자, 한 집 건너 아는 동네 이웃이었다. 그러나 용우는 마감일에 쫓겨 주말도 반납한 채 격무에 시달리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의 파업 투쟁을 대놓고 응원할 수 없다. 사측이 과로로 숨진 동료의 산재 처리마저 거부하자 조합원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으나, 용우의 직속상관은 그들을 당장 해고할 거라 겁박할 뿐이다. 참다못한 용우가 당신도 거제 사람이면서 너무하지 않느냐고 항의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상관으로서는 그 거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건 기업의 자본이지,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러니 사람이 죽어 나가도 현장은 늘 효율적으로 가동되어야 하고, 정해진 마감일은 끝내 지켜야 한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용우가 항의 시위를 무마하려 달래듯 꺼낸 말은 ‘인생은 복불복’이라는 밈의 속성과 닿아 있다.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체제 순응적인 태도. 거제 사람인 용우의 상관이 평생 쓰던 사투리를 거둔 채 서울말을 고집하는 것도 시스템에 더 잘 적응하고 복무하기 위해 자신을 길들여왔다는 방증에 가깝다.
그러나 용우의 딸 필선은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다. 늘 여기보다 더 멋진 곳―이를테면 뉴욕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을 상상하는 필선에게 회사와 집만을 오가는 아빠의 활동 반경은 너무 좁고 안정적이기만 하다. 서울의 명문고 축구부와 시비가 붙어 폭력 사건에 휘말렸을 때조차, 용우는 필선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무릎을 꿇고 선처를 구하는 방식을 택한다. 싸운 학생이 조선소 본사 간부의 자식이라는 걸 알게 된 직후에 한 행동이었기에 필선은 더 비참하다. 아빠 니는 세상이 그리 어렵나? 교무실 문을 박차고 나간 필선이 뒤따라오던 용우에게 쏘아붙인다. 만일 영화의 배경이 1999년이 아닌, 2025년의 겨울이었다면 필선은 아마 아빠에게 요즘 소셜 미디어에 떠도는 말을 캡처해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저항 좀 해, 체제에 순응하려고 태어났어?」
필선은 원하는 걸 쟁취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교내에서 합법적으로 힙합 댄스를 출 수 있는 연습 공간을 얻기 위해 필선은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축구 대회 우승에 목말라 있는 교장의 허가를 받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치어리딩엔 딱히 관심도 없었지만, 축구부 시합이 당장 코앞으로 다가왔기에 필선은 재빨리 단원을 모집한다. 팀명은 밀레니엄 걸즈. 한 번도 군무를 춰본 적 없는 그들은 삐걱거리며 어설프게 대형을 맞춰나간다. 그들은 연습 삼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 리허설을 하기로 한다. 시장, 병원, 경로당 등 거제 곳곳을 돌아다닌 그들은 상우조선 파업 투쟁 현장에도 방문하기에 이른다. 단원 대부분이 상우조선 노동자의 딸들이었다. 단결 투쟁 띠를 이마에 두른 노동자들 앞에 서서 밀레니엄 걸즈는 응원곡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두 팔을 힘차게 휘저으며 아스팔트 위를 신나게 뛰어다닌다. 동아리 창설의 처음 목적과는 다소 멀어졌지만, 필선은 치어리딩을 통해서 응원의 힘을 느낀다. 응원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의 눈에서 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함께 호흡하다 보면 금세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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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부터 나는 그 강력한 응원의 힘을 믿고 있다. 폭력과 혐오가 난무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차별과 배제의 언어를 내뱉는 자들이 작정하고 세를 불리며 힘을 과시하려 드는 때에도, 나는 남태령과 한남동, 그리고 거제와 구미에서의 그 환상적인 밤들을 곱씹으며 확신한다. 발가락이 다 떼어질 것만 같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밤을 함께 견디던 사람들이 나를 더 나은 세계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확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반드시 그 세계에 당도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파업은 왜 응원하면 안 되냐는 영화 속 대사는 2025년 겨울에도 유효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말벌 시민들이 있다. 개인의 투쟁을 너무 외롭게 두지만은 않겠다고 배턴 터치를 해가며 서로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한남동에서 듣던 한 시민의 발언을 오래 품게 될 것 같다. 어쩌면 이분 덕분에 나는 더 나은 세계에 이미 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귀한 발언을 나눈다.
“나는 농가에서 태어난 아이요, 산재로 장애인이 된 건설 노동자의 딸입니다. 성소수자의 친구이고, 이주노동자의 이웃이며, 언젠가 노인이 되고, 언젠가는 어린이였으며, 언제나 노동자일 것입니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위해, 그들이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함께 합니다. 이미 나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중략) 서로를 혐오하도록 조장하는 자들은 귀를 열고 들으십시오. 너희들이 아무리 우리를 갈라 놓아도 우리는 서로를 느꼈다. 이젠 함께 내일로 간다.” *
* 2025년 1월 3일 한강진역 관저 앞 집회에서 천** 님의 발언 중 발췌.
OTT 디즈니 플러스
연출 박범수
출연 이혜리, 박세완, 이정하, 조아람
시놉시스
1999년 세기말, 거제의 댄스 콤비 필선과 미나는 댄스 연습실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에서 전학온 치어리더 세현을 내세워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그렇게 9명의 멤버들이 모여 얼렁뚱땅 탄생한 밀레니엄 걸즈. 치형의 만년 꼴찌 거제상고 축구부를 우승으로 이끌어야만 하는데… 오직 열정만큼은 충만한 생판 초짜 치어리딩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의 모두를 향한 신나는 응원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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