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 킴(Юлий Ким), <나 워낙 배포 크게 살고 싶어>(Песня Современных Пиратов)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기왕 인간으로 태어나 한 세상 살다가는 거라면, 베짱이 두둑하고 그릇이 크거나 무던한 성격으로 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름대로 여러 수를 찾아보았지만 타고난 성질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일찍이 현대사회의 상식과 현대인의 논리로는 도저히 나의 본성을 보호할 수 없으며, 21세기에는 내가 발과 마음을 붙일 장소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겁쟁이가 어느 날 느닷없이 책방을 하게 되었다. 때는 2021년, 장소는 서울. 모두가 말렸고, 사업자등록 후 책 계약을 하기 위해 만난 도매 거래처 직원까지도 이렇게 말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물론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만일 나에게 조언을 해준 이들이 현대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들의 말을 경청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대착오적 겁쟁이에게도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나는 나와 새롭게 시작될 서점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미신과 주술, 초능력을 총 동원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비기는 지면 관계상 알려드릴 수 없으나, 혹여라도 궁금한 분은 국회도서관에 있는 <알코프리바 나지에 선생의 몹시 비밀스럽고 절대로 모두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위험천만한 금단의 자영업 주술서>를 참조하길 바란다.)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우선, 서점 이름. 그렇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름은 인간과 사물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했다. 세계문학 서점을 하기로 한 이상, 최대한 거창하고 위대한 작자의 이름을 빌려오는 것이 인지상정. 세계문학사상 가장 풍요롭고 부의 스케일이 큰 작자. 聖 프랑수아 라블레님의 가호를 받기로 했다(잘 되면 라블레 덕, 안 되면 라블레 탓이다). 겁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일을 그르치거나 인생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자책을 하기 때문인데. 일단 책임소재를 돌리니 한결 부담이 줄었다. 게다가 지난 생을 반추해보건대, 라블레는 미신이 아니었다. 라블레는 경험이고, 과학이다. 내가 해마다 달마다 여러 책을 읽었건만, 팡타그뤼엘 1서, 가르강튀아(2서), 팡타그뤼엘 3서, 4서를 읽는 동안에는 유난히 공돈이 자꾸 들어와 재정상태가 아주 풍족했기 때문이다.(돈 중에 최고 돈은 공돈 아니던가!) 그리하여 나는 주기적으로 몇 년에 한번씩 금전운과 풍요의 감각을 회복하고자 라블레를 읽어왔다. 부디 라블레가 우리 서점을 책임져주시기를. 황금벽돌로 쌓인 텔렘수도원의 기적을 믿나이다.

그 다음이 음악.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술의 필수요소는 노래다. 서점 운영시간에 노래를 틀면 손님들의 책 읽기에 방해가 되기에, 지금까지는 한 번도 틀지 못했지만 우리 서점에는 주제곡이 있다(모름지기 영혼이 있는 책방이라면 숨겨둔 주제곡이 있기 마련이니, 이 참에 전국 방방곳곳 동네책방을 방문하여 예의상 책 한 권 사고, 노래 한 곡 청해보시라.) 노래란 널리 퍼트려 여럿이 부를수록 주술의 힘이 강해지는 법이니, 내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나처럼 겁이 많고 불안에 시달리는 분을 위해 특별히 우리 서점의 노래를 나누고자 한다. 2인조로 함께 부르거나 가사를 암송하면 더욱 효능이 있다. 제목은 바로, <나 워낙 배포 크게 살고 싶어>(율리 김). 벌써 감이 오지 않는가? 가사 전문을 보면 더욱 굉장하다.

나 워낙 배포 크게 살고 싶어

나 워낙 배포 크게 살고 싶어, 하
나 워낙 좋아해, 커다란 배포!
나 들어서더라도
더러운 방탕길로,
그 대신 자유를 얻으리! 다, 다, 다.

아마도 나 너무 심하게는 못되겠지 – 하하
왜냐면 나 사람들 창피하니까
그래도 난 알아, 여기 앉은
사람들 다 마음 속은 다
도적과 악당인 거, 다, 다!

에흐, 깜깜한 밤, 강철 단도!
구리줄에 총 터어키 화승총,
우린 자유로운 새-때가 됐다!
해적들, 잘해라, 성공해!

평생 읽고 쓰고 누가 좋아해? – 하하!
받아줘, 자연아, 이 신선한 원시인들!
이 세상 모든 책들,
월터 스코트만 빼고 다,
닻 공장 아궁이로 보내, 다, 다!

에흐, 높은 돛, 중간 돛, 키, 다 알아,
자, 해보자, 얘들아, 아무나 키 잡아!
누가 투덜거리면
그놈에게 우리 모두 다
슬쩍 0을 곱해버리자, 모두 다, 다!

에흐, 깜깜한 밤, 강철 단도!
구리줄에 총 터어키 화승총
우린 자유로운 새-때가 됐다!
해적들아, 잘해봐, 성공해! *

* 율리 김, 《율리 김, 자유를 노래하다》, 최선 옮김, 뿌쉬낀하우스, 2005

내 노래 듣는 여러분 영혼에 도둑놈과 악당이 산다는 사실을 익히 잘 안다는 폭로부터 시작하여, 말로 초치거나 방해하는 무뢰한에게는 슬쩍 0을 곱해버리자, 는 실용지침까지. (재빨리나 어서, 얼른도 아니고, ‘슬쩍’이다!) 배포도 여간 큰 배포가 아니다. ‘워낙’ 큰 배포! 율리 김은 몇 년을 두고 들어도 새롭다. 커다란 웃음으로 나의 심약한 마음을 날려버리신다. 겁쟁이는 이렇게 배포 큰 자아를 빌려 입고, 노래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살 수가 없다.

율리 김은 음유시인(바르드)의 전통이 살아있는 소비에트-러시아의 4대 시인 중 한 분인데, 참고로 16년 전에는 내한하여 공연도 하셨다. 바로 그 현장에 라블레의 서점지기 중 한 명인 GW가 있었다. GW는 공연을 보자마자 이분 노래의 위대함을 직감하고 음반이 수록된 가사집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7년 뒤, 나에게 율리 김을 전파해주었다. 비록 9년 뒤에 우리가 함께 책방을 열고, 책방의 주제곡으로 이분을 모시게 될 줄은… 당시에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이것도 인연이니, 율리 김이시여. 당신의 노래로 이 심약한 겁쟁이를 부디 살게 하소서. 워낙 큰 배포로 살게 하소서.

러시아 서점에 가면 율리 김의 음반 또는 가사집은 시집 코너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서점에서는 문 열고 들어오자마자 맞은편에 보이는 벽면서가에 계신다. 내 글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확인하고 싶은 분은 오셔서 서가에서 <율리 김, 자유를 노래하다>를 찾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