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dia, [나의 아저씨 OST], 2018

2022년 1월 3일, 편지 한 통을 썼다. 수신인은 2023년 1월 3일의 이미화. 다시 말해, 1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썼다는 말이다.

나로 사는 게 지긋지긋해서 누군가에게 날 좀 떠맡기고 싶은데 그게 또 나뿐이라 막막해질 때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면 도움이 된다. 편지라기엔 잘못한 일들만 오려붙인 오답노트에 가까워서 과거로부터 주문한 적 없는 우울을 받아들 미래의 이미화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당장의 답답함은 해소할 수 있으면서 이런 나를 감당하는 것도 어차피 (1년 후의)나일 테니 다른 사람에게 나를 떠넘겼다는 부채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편지에는 이렇게 썼다.
‘지키고 싶은 마음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비례해서 커지는 걸까? 책방을 지키고 싶은 만큼 도망치고 싶어지기도 해. 1년 후의 나는 어디에 있으려나. 책방이 아니라면 어디에?’
그리고 이런 말도 썼다.
‘책방 주인과 글 노동자로 사는 것 모두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 나를 불안하게 해. 내가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까? 1년 후에도 내게 돈을 주고 글을 맡기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내 글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봐 겁나. 책을 읽고 쓰고 파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마저도 변변치 않은 내가, 먼 미래도 아닌 고작 1년 뒤의 나도 쉽게 떠올릴 수 없는 내가 한심해.’

마지막엔 이런 말도.
‘겨우 이런 어른이 되려고 35년 동안 삶과 정면대결을 해왔다니. 그 모든 날들에 참패한 기분이야.’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묻고 싶어도 물을 사람은 이미 내가 되었으니 알 길이 없다.

최진영의 소설 『내가 되는 꿈』의 주인공 이태희도 1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1년 뒤 편지를 보내준다는 카페에 앉아 이 편지를 쓴다.’로 시작해서 ‘미래의 내가 이 편지를 아주 우습게 여기기를 바랄 뿐이다’로 끝나는 편지를. 문제는 이 편지가 1년 후의 이태희가 아닌 10년 전의 이태희에게 배달이 되었다는 점이다. 바람핀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못하고 수시로 모욕감을 주는 직장 상사를 견디지 못해 비상계단에 앉아 우는 어른으로 자란 이태희를, 16살의 이태희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내 편지가 2023년의 이미화가 아닌 16살 이미화에게 도착하는 상상을 해본다. 언제 닫을지 모를 책방을 운영하는 비주류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실망할까? 어쩌면 이런 미래쯤이야 미리 예상했다는 듯 크게 동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아직 내가 살아보지 못한, 앞으로 살아가야할 날들을 부정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 건너뛰거나 빨리 감지 않고 매일의 몫을 책임지며 만들어진 나를 인정하지 않는 어른은 되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하다.

편지를 다시 쓰기로 했다. 잘못 배달될 지도 모르니, 과거의 이미화가 들어도 속상하지 않을 말을 쓰자고. 마음에 꼭 드는 건 아니지만 나는 내가 되었다고. 이런 어른인 채로 나를 무릅쓰며 살아가고 있다고. 그리고 좋아하는 드라마의 OST도 한 줄 적어 넣었다. 믿어보고 싶은 어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였다.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