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ett Louisan, [Bohème], 2004

스무 해 전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천국에 온 것 같았다. 한가지 흠이라면,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다. 통장에 든 정착금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클랜드에서는 돈을 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영어가 딸려서 돈을 쓰기도 힘든 터였다. 때마침 서울에 일자리가 생겼다. 뉴질랜드에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한국에 들어왔다.

기러기 아빠 생활은 무척 쓸쓸했다. 낮에는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하지만 저녁에 오피스텔에 돌아오면 텅 빈 방이 나를 맞았다. 집이란 건물을 말하는 게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집은 가족이 있는 곳이었다.

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준 것은 독일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독일 제2방송국에서 방영하는 텔레노벨라「알리사, 네 마음을 따라라」를 즐겨 보았다. 아마도 이 일일 연속극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아네트 루이잔(Annett Louisan)의「사랑 노래(Das Liebeslied)」를 처음 만난 것은. 달콤한 삽입곡은 단박에 내 귀를 사로잡았다. “내 모든 것은 너를 그리워해”. 가사 한 줄을 기억해 폭풍 검색을 했다. 유튜브에 곡이 올라와 있었다. 아내에게 메일을 보내 링크를 공유했다. 내 심정을 그대로 전하는 노래 같았으므로.

주말이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제 전화 카드를 챙겨 가까운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다. 송수화기 저편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면 아내가 친구였던 옛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마흔 해 전. 그때는 온종일 함께 보낸 뒤에도 밤이면 꼬박꼬박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하숙집 앞 구멍가게 공중전화에서. 한번은 친구에게 못내 미안해했다. “오늘은 금방 끊어야 해.” 돈이 다 떨어져서였다. 주머니를 뒤져 보니 오 원짜리 동전 두 개가 있어서 가게에서 십 원짜리로 바꾸어 가까스로 한 통화를 할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크리스마스에 휴가를 얻어 뉴질랜드로 향했다. 휴대전화 캘린더에는 언제 입력했는지 ‘집으로’라고 적혀 있었다. 한 해 만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아내와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예비군 동원 훈련을 받느라 삼박 사일 동안 집을 비운 게 예전 최장 기록이었다. 오클랜드에서 아내와 얼굴을 마주하니 모든 게 그저 꿈만 같았다.

다시 신접살림을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딸이 등교하면 둘이서 타카푸나 해변을 산책하거나 데번포트의 카페를 섭렵했다. 함께 음악도 들었는데, 서로 취향이 사뭇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클릭하면 아내는 귓등으로 들었다.「사랑 노래」만큼은 예외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에게서 사랑 고백을 받는 게 싫지 않은 것 같았다.

“[……] 내 심장이 원하는 건 너뿐이야/하염없이 두근두근 설레면서//차분한 마음을 영영 잃고서/걸음을 디딜 때마다 넘어져/너무 큰 신발을 신은 광대처럼/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 첫눈에 눈이 멀었어/말을 잃고 귀가 먹었어/논리는 목이 부러지고/명징함을 잃어버렸어//두 발이 전혀 땅에 닿지 않고/내 하루에 아무 관심이 없어 [……] 망할, 사랑에 빠진 거야/빠져도 너무 깊이 빠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