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el, don’t look back in anger
‘사람이 죽은 것을 본 날이었다’
새로 나올 책의 첫 문장을 수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너무 자극적인 문장인가 싶었지만, 그 문장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는 명확한 사실이었으니까. 이제라도 수정하겠다고 할까 수정한다면 어떤 문장으로 해야 하나 수도 없이 고민하고 한숨 쉬었던 그날은 무더위의 절정이었던 8월, 일본의 섬머소닉 페스티벌에 ‘리암 갤러거’를 보러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출판사의 제안으로 책의 출간일은 10월 29일로 결정했다. 어떤 식으로든 나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참사의 당사자로서, 그리고 한 개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으로부터. 그날 이후 각종 불안장애와 공황 장애 등의 심신미약 상태가 지속되었고, 특히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페스티벌 현장은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힘든 상태였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리암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나의 청춘, 나의 오아시스였으니까. 어차피 매번 죽음을 생각하느라 하루를 다 써버리는 스스로에게 던져버리는 마지막 패 같은 것이었다. 이토록 처절한 마음으로 음악 페스티벌에 가다니, 왜 그렇게 오아시스와 리암을 보고싶어했을까. 정말 아이러니했다.
오아시스가 해체하고 노엘파, 리암파로 사람들은 나뉘었고 국내에서는 노엘의 인기가 조금 더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사실 리암을 좋아했다. 무대를 장악하던 오아시스의 프론트맨이자, 맛깔나게 노래를 소화해버리는 목소리, 특유의 삐딱하게 고개를 내밀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는 전매특허 포즈, 무엇보다 그냥 무대에서 멋지다. 그것도 매우 많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스타이자, 내가 사랑한 모든 오아시스 노래의 대부분은 리암이 부르고 소화하는 장면이었으니 나는 그냥 리암 갤러거의 무대를 실제로 한번은 보고 싶었다. 리암의 무대가 곧 오아시스라고 여기며.
이런 몽근하고 아련한 감정이 이어지던 찰나, 리암이 노래 중간에 갑자기 노래를 중단한다. 자신의 솔로곡 ‘river’였다. 그러더니 무대에서 갑자기 쌍욕을 해버리는 성질머리. 에코 제대로 안 넣느냐, 일 제대로 처안하냐는 말을 f워드를 써가며 음향 팀을 향해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며, 맙소사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거야. 말로만 듣고 유튜브로만 보던 20년 전 그 성질머리를 내가 살아생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다니.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 지구상의 마지막 록스타를 리암 갤러거라고들 하는데, 정말 맞는 말이었다. 리빙레전드의 성질머리를 보면서, 아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살아갈 인생을 기대하게 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세상엔 구경할 게 너무 많아라고 외쳤다. 그리고 성질머리를 드러낸 리암이 다시 또 아무렇지 않게 곡을 시작하는 모습도 정말이지, 나를 웃게 했다. 뒤끝이 없는 리빙레전드 록스타.
어디서나 한국인들의 재치와 주접은 정말 사랑스러운데, 역시나 일본 페스티벌까지 와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리암 갤러거의 뒤 대형화면으로 잡히는 푯말은 ‘riam come to korea!’ 모든 사람이 웃었고, ‘riam i love you!!’ 외치는 멋진 한국인. 그리고 거기에 ‘how much?’라고 묻는 미쳐버린 스타성의 소유자 리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나는 정말로 행복했다.
참사 이후 오아시스의 노래 중 가장 힘이 되었던 노래는, ‘live forever’.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기절할 때까지 맞고 학대당한 노엘과 리암 형제가 만들고 부른 노래. 후유증으로 데뷔 초창기는 말까지 더듬는 노엘이었고 그에 못지않게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리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원히 살겠다’라는 메시지를 낸 이 곡이 내게도 말을 걸어왔다. 나도 참사를 뒤로하고 영원히 잘 살고 싶었던 걸까. 이 곡을 리암이 혹시 라이브로 불러 주진 않을까 기대했지만, 끝내는 들을 수 없었고 아쉬웠다. 호텔로 돌아와 오아시스 공연을 유튜브로 무한 재생하며 스스로를 달래던 찰나, ‘don’t look back in anger’ 공연을 보고 얼음이 되었다. 아리아나 그란데 공연장의 폭발물 사건으로 인명피해 사고를 추모하는 자리에 울려 퍼지던 노래였으니까. 노엘이 작곡했고 노엘이 싱어로서 처음으로 등장했던 명곡이자, 영국의 두 번째 국가로 불릴 정도로 메가히트친 곡.
화내면서 돌아보지 않을게, 지나간 일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게, 고통은 나를 해칠 수 없어 라고 외치는 이 노래가 무언가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이기도 하면서 나를 포근히 감싸는 처방약 같기도 했다. 위로와 감동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그때 깨달았다. 내가 나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래서 오아시스 노래를 찾아 그 먼 길을 떠났다. 그들의 노래가 내게 희망을 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책의 첫 문장 수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고통을 드러내리라,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책을 출간한 지금, 나는 나의 고통으로부터 멀어지는 자유를 조금씩 선물 받고 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의 인생 노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것은 없지만 그래도 상황마다 늘 내 곁을 맴돌며 힘을 주는 노래는 있다고 대답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노래는, 작년 여름 이후 ‘don’t look back in anger’에서 변한 적이 없다. 노엘의 한국 내한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결정되었다. 당연히 내한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러주겠지만, 이 노래를 노엘의 노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게는 오아시스의 노래다. 이쯤 되니 노엘이고 리암이고 따로 구분되는 것도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당신들의 오아시스 시절 노래로 위로받았고 평화를 찾았다는데. 그리고 나만 그런가. 전 세계 모든 팬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아시스의 재결합을 외치는 것일 테지. 그러니까 제발 완전체 무대로 보는 것이 소원이다.
‘don’t look back in anger’ 노엘에게 외려 전달하고 싶다. 지난 일은 뒤로 했으면 좋겠다. 당신의 노래로 나를 포함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난 일과 고통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니, 당신도 그러했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제발, 노엘 리암 화해해. 그리고 완전체로 한국에 와.
사실, 리암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재결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 노엘이 꿈쩍을 않는다.
노엘, 마음 좀 풀어줘. 동생 좀 봐줘.
noel, don’t look back in a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