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set Rollercoaster, [JINJI KIKKO], 2016
얼마 전, 영화 <동감>을 봤다. 김하늘과 유지태가 주연이었던 2000년에 개봉한 작품이 아닌 2022년에 리메이크로 개봉한 작품을. 몇몇 사람들은 내게 “원작이 있는 영화였어?”라고 물었는데 그들의 질문에서 두 동감 사이 시간의 퇴적을 다시 한번 느꼈다.

<동감>처럼 어떤 매개체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타임워프 장르를 좋아한다. 이러한 장르는 시대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그 지점이 나의 향수를 자극한다. 노스탤지어는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고, 살아온 지난 시간의 미화이기도 하다.

그러한 취향은 노래를 들을 때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를테면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그 시절 어느 장면 속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리고 가는 노래들. 대만에서 활동하는 밴드 Sunset Rollercoaster의 <Burgundy Red>가 그런 곡 중 하나이다. 전주가 시작되면 나는 10년 전, 비가 그친 대만의 밤거리에 당도한다.

Burgundy, like old times passing by, is the color of the tides.
Sweet memories comfort me, and give me the light.

2012년, 어느 날이었다. K는 기타를 배우고 싶다며 기타를 사야겠다고 말했고, 우리는 기꺼이 쇼핑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날은 종일 날씨가 온화했는데 출발하려고 H의 스쿠터 뒷좌석에 앉자마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파는 싸구려 비닐 우비를 입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더 지체할 수 없어 일단 출발했고, 다행히 비는 맞을만한 정도로 잦아들었다. 가로등의 주홍색 불빛이 가득한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군데군데 고여 있는 물이 우리를 향해 잔뜩 튀어도, 길을 잃어서 골목을 헤매도 웃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무사히 기타를 사고 돌아갈 때가 되자 비는 완전히 그친 뒤였다. 하늘은 깨끗했고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젖은 땅 냄새가 산뜻했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안고 시원하게 달리던 중이었는데 뒤쫓아 오던 K와 Q가 보이지 않아 잠시 멈춰서 그들을 기다렸다. 때마침 K한테 전화가 왔다. “Q의 스쿠터 바퀴에 대못이 박혀서 펑크 났어. 사고는 안 났고, 일단 경찰 불러서 기다리는 중이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와 H는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고, 마주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도로 한복판에서 폭소했다. 우여곡절의 밤을 넘기고 가까스로 기숙사에 도착해서 누우니 새벽 3시였다. 졸린 눈을 부여잡고 부족한 중국어로 짧은 일기를 남겼다. ‘오늘 일은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 없어. 이런 에피소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거야.’ 겨우 스물셋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꼭 그날의 날씨처럼 변덕스러웠다.

Alright, let’s surf on the time, only we own the ride tonight.

노래가 끝날 무렵 후렴구의 가사가 다시 들려오면 현실로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 어느덧 10년이 흘렀고, 밀물과 썰물의 반복으로 과거의 모양과 다른 삶에 굴곡이 생겼다.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활발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고이 담아두었다가 가끔 삶이 퍽퍽하게 느껴질 때 야금야금 꺼내어 들여다본다. 그때보다 조금은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눈앞에 있는 파도에 유연하게 몸을 싣고 살아갈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