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on & Garfunkel, [The Sound of Silence], 1964
내가 처음으로 기타를 가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내 기타가 아니다. 나보다 두 살 위인 형이 중학교 입학 선물로 부모님께 받은 선물이었다.

언제나 밥 딜런이 자기 우상이라고 하던 형의 계획은 이랬다.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오락부장을 도맡아 했던 형은 그 기세를 몰아 중학교 첫 소풍 때 통기타를 둘러메고 친구들 앞에 서서 노래자랑 대회를 하겠다는 거다. 반면에 나는 조용한 성격에 고학년이 된 이후 줄곧 도서부 활동만 했으니 형의 이런 말을 거의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쨌든 형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밥 딜런은 고사하고 아기공룡 둘리 만화에 나오는 마이콜 흉내라도 내려면 일단은 기타 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완전히 간과했던 게 문제였다. 결국, 형은 한 일주일 정도 기타를 만지작거리다가 방구석에 처박아두었다. 그렇게 기타는 내 것이 됐다.

어머니는 동네 대학생 형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고 그 형은 기타를 배우려면 무슨 노래를 연주하고 싶은지 정해서 악보를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그길로 시장 골목에 있는 헌책방으로 가서 악보에 기타 코드가 적힌 노래책을 찾았다. 헌책방 아저씨는 내게 ‘영화음악 팝송 대백과’라는 책을 추천했다. 나는 거기서 운명적으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Sound of Silence’를 발견했다. 친절하게도 제목과 가사를 모두 우리말로 번역해놓았기에 그 시적인 노랫말에 홀딱 반해버렸다. ‘침묵의 소리’라니. 그리고 그 첫 소절은 ‘내 오랜 친구, 어둠이여/ 자네랑 이야기하려고 또 왔다네’였다. 나는 그 노래를 전혀 몰랐지만, 한글 가사만 보고 거금 천 오백 원인가를 내고 사버렸다.

이게 나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첫 만남이었다. 기타 선생님은 아무래도 처음엔 신나는 노래로 연습하자며 같은 가수의 ‘The Boxer’를 알려줬다. 그 곡 역시 가사가 멋있었다. 신나는 리듬이었지만 가사는 슬픈 내용이었다. 나는 열심히 배웠고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대여섯 곡과 존 덴버의 히트곡 서너 개를 연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당시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마이클 잭슨이나 MC 해머, 잘나간다는 애들은 유로 댄스 음악을 주로 들었다. 내가 ‘Sound of Silence’와 ‘The Boxer’를 연주할 줄 안다고 하니까 한 녀석이 “아, 그 컨츄리 뮤지션?” 하면서 키득거렸다. 나는 “컨츄리 아니고 쓰리 핑거 주법이거든! 그리고 컨츄리는 존 덴버지…….”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랬더니 또 다른 녀석이 “존 덴버? 그 수염 덥수룩한 할아버지?”라면서 또 자기들끼리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역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수염 덥수룩이라면 케니 로저스인데.”라고 했다. 녀석들은 “너 왜 그리 컨츄리를 잘 아냐? 텍사스 출신이냐?” 하면서 나를 놀렸다. 이 대화는 삽시간에 다른 반에까지 퍼졌고 나는 한동안 ‘컨츄리 보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야 했다.

그런 모욕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을 버리지 않았다. ‘뭐? 엠씨 해머라고? 유 캔 터치 디스, 워우워우워, 이게 가사냐?’라면서 혼자 침묵의 소리로 마구 욕을 퍼부어줬다. 저들 중 누군가는 아직도 유로 댄스를 듣고 있을까? 모르긴 해도 1980년대에 방방 뛰는 춤을 따라 하며 MC 해머를 즐겼던 사람 중에 아직도 그 음악을 자주 듣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하지만 어릴 적 사이먼 앤 가펑클을 들었던 사람에게 물으면 열에 아홉은 여전히 그 음악을 들을 거다. 노래 제목처럼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있지는 못할지라도 “침묵의 소리”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그때의 애틋한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재산일 테니까.

나는 중학생 때 용돈을 모아 산 사이먼 앤 가펑클 LP를 지금껏 갖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내내 오랜 친구로 곁을 지켜준 침묵의 소리, ‘Sound of Silence’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