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Shop Boys, [Bilingual], 1996

공감 받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음악 ‘덕후’란 크게든 적게든 반사회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배경음악에 만족하지 않고, 음악을 들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말이다. 악행을 저지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피부를 건드리고는 다음 순간으로 넘어가는, 그래서 지나간 찰나의 감각에 기초해 이 허상 같은 움직임을 머릿속에서 구체화하는 매체에 매달려서야 연명할 수 있는 인간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대로 선 사람’이기는 어렵다. 음악에 빠진 사람은 세상과 온전히 화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때로, 그것을 긍정하기는 어렵지만, 십 대에 느낀 어떤 강렬한 감각에 집착하며 성장을 거부하는 꼴이 되기도 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인생의 노래’를 꼽아보라고 하면 펫숍보이스 같은 것을 고르고, 그 수많은 히트곡을 다 제치고 굳이 구석에 틀어박힌 수록곡 같은 걸 꺼내 오기도 하는 것이다.

펫숍보이스의 ‘The Survivors’는 1996년 발매된 <Bilingual> 앨범에 수록돼 있다. 앨범은 클럽 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묘사한다. 화려하고, 비장하고, 난폭하고, 달콤하고, 섹슈얼하고, 냉소적인 여덟 곡이 지나 ‘The Survivors’는 어느 때보다도 아늑하고 너그럽게 흐른다. 클럽을 나서서 다리를 건너는 겨울밤,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생존자들’이라 말한다.

곡이 말하는 인간상은 썩 대단하지만은 않다. 선생님이나 아티스트도 있지만, 토요일 밤을 즐기는 여자들이기도 하고, 가게를 둘러보며 트렌드를 좇으려 해보며, 너무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어색해지기도 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앨범이 그리는 군상은 더 그렇다. 그들은 고된 한 주의 끝을 불태우기 위해, 삶을 축제로 삼기 위해, 또는 삶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클럽을 떠도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데이트 상대를 찾기 위해 내거는 말이 겨우 ‘저는 솔로이고 바이링궐입니다’ 정도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간혹 클럽 씬을 ‘진짜 음악을 즐기기 위한 클럽’과 ‘방탕한 밤놀이를 위한 클럽’으로 구분하려 할 때도 있지만, 이 앨범은 굳이 그러지 않는다. 이 곡에서 자주 들리는 아주 감동적인 프레이즈 중 ‘Face the music’ 같은 것은 댄스 음악에서 가장 흔해 빠진 싸구려 관용구의 차트가 있다면 (특히 90년대에는) 상당히 상위권에서 발견되었을 말에 불과하다. 펫숍보이스는 경박한 것들에 가장 우아한 찬사를 보낼 줄 아는 아티스트다.

노래는 비애와 낙관, 격정과 회고를 뒤섞어 끌어안은 채, 그들에게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이것만은 직설적으로 말해줘야겠다는 듯이. 그때, 삶을 경쟁으로 여기고 달리더라도, 그것은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너 때문에 다같이 힘들다’는 남탓도, 제로섬 게임 논리도 필요 없다. 수많은 각자의 길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 같은 ‘생존자’라는 것이다. 그런 개인주의자의 동료애는 우리가 ‘어찌어찌(somehow)’ 도달할 것, ‘어찌어찌’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천착하는 메시지가 ‘그럼에도 살아라’라고 한다면, ‘The Survivors’는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다는 노래라고 해야 할까. 다만 이 노래는 음악에 (어찌어찌) 매달려 있는 이들을 향하고 있고, 그래서 음악에 기댄다면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펫숍보이스는 두 멤버 모두 오픈리 게이고, 퀴어 커뮤니티에 직결된 노래를 자주 발표했다. 많은 이가 사랑해 마지않는 1990년 작 ‘Being Boring’과 마찬가지로, ‘The Survivors’ 역시 퀴어 커뮤니티의 생존 문제와 무관하지 않게 들린다. 그럼에도, 음악에 대한 애정이나 집착을 공유하고 있는 이라면 이 노래의 힘을 빌리는 게 무례한 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어른들에게 막연하게 화가 나 있던 스무 살 무렵에도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생존자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세 살 딸에게 도저히 겪게 하고 싶지 않은 일들에 매일 같이 스치고 부딪히는 지금도. 그리고, 기후 재앙을 제외하고도 갈수록 나빠질 것만 같은 세상을 보며 눈앞이 캄캄해지는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도. 우리생존자들 (음악을 들으며) 어찌어찌 도달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