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박자 인생, 비트를 쪼개다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다’ (네 박자/ 송대관)
겁 없이 인생을 달리던 20대의 어느 날 무릎을 치며 깨달았다.
그래, 인생은 트롯이구나.
작가실에는 각 기획사의 매니저들이 갖다 주는 새로운 트롯 CD들이 매일 쌓여갔다. 지금의 트롯 열풍을 짐작할 수 없던 시절, 당시 출연진은 대부분 중년의 가수들이었다. 쌓여있는 음반 가운데에서 그동안 들어왔던 곡들과 전혀 다른 패턴의 노래를 듣게 됐다. 앨범 자켓을 보니 트롯 가수라 하기엔 너무나 어린 여자 가수였다. 통통 튀는 가사와 리듬에 마음을 뺏겨 가수를 얼른 만나보고 싶었다. 격주로 프로그램 연출을 맡는 PD 두 분께 노래를 들려드렸다. 한 PD는 첫 소절을 듣자마자 그냥 꺼버렸고, 다른 PD는 이 가수가 대체 누구냐며 나와 비슷한 열광을 했다. 그 노래가 바로 장윤정의 <어머나>였다. 지금은 대형가수가 된 장윤정의 명곡 ‘어머나’의 첫 방송을 그렇게 함께했다.
어릴 때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에서 보아왔던, 부모님이 흥얼거리던 노래의 가수와의 만남이 참 신기했는데 가수 현숙은 처음 만난 나를 유달리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지갑 속 흑백사진을 꺼내며 자신이 어릴 때와 내가 너무 똑같이 생겼다고 했다. 함께 모여 있는 가수들에게 내 얼굴과 사진을 바짝 붙인 채 똑같지, 똑같지? 를 연발했다. 얼굴의 주근깨마저도 똑같다며 나를 깨딱지라고 불렀다. 그날 녹화를 마치고 뒷풀이로 간 노래방에서 현숙 언니와 어깨동무를 하고 ‘춤추는 탬버린’을 열창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방송 섭외와 가사체크 업무를 위해 틈나는 대로 트롯을 들어야 했는데, 업무를 마쳤음에도, 계속 듣게 되는 노래가 있었다. 지나치게 반복을 해서 음악 감독님께 진행용 CD를 다시 한번 부탁드렸던 노래가 있었다. 바로 가수 김도향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였다. 이 노래는 트롯이라기 보다는 쿠바 음악과 닮아있었다.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나오는 한 클럽에서 한국인 가수를 만났다면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았을까. 녹화날 만난 무대의 감동은 물론 더할 나위 없었다. 당시 방송작가들의 로망 프로였던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었다. 지금도 마음이 힘들 때면 이따금 찾아 듣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노래는 내게 여전한 위로의 노래다.
요즘은 TV를 켜기만 하면 트롯이 나오는 열풍을 넘어선 트롯 전성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는 한번도 제대로 트롯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다. ‘임영웅이 누군데?’ 했다가 친구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제 40대이고, 엄마가 된 나는 해마다 ‘쇼미더머니’에 열광하고 있다. 몇달 전 끝난 시즌 9에 출연한 원슈타인의 유니크한 랩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요즘 내가 유일하게 온전히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차 안이다. 코드쿤스트의 비트를 즐겨 듣고, 기리보이와 지코의 음악으로 한 번씩 환기를 시킨다. 래퍼들의 솔직한 삶의 이야기가 세련된 비트 위에 흘러나오는 그 소리와 모습이 한 편의 예술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인생은 끝없는 싸움의 연속 / 그때마다 난 독기를 품고 쿵치딱 흐르는 비트 위로 부딪친다 / 삶의 가르침과 고통을 쓰고 난 행복을 훔친다’ (독기/ 리쌍)
30대에 인생의 파도 위에 올라 아직 아직 항해를 마치지 못한 마흔에 다시 무릎을 친다.
그래, 인생은 힙합이구나.
엄마 차로 등 하원을 하는 여덟 살 딸의 꿈은 래퍼이다. 주제를 던져주면 바로 가사를 만들어내서 랩 자판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실 랩이라 말하기에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래퍼의 모습을 흉내 내는 아이의 모습이 참 재미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놀이터에서 철봉 놀이를 하는 딸에게 철봉을 주제로 랩을 한번 해보라고 하면 바로 몸을 흔들며 가사를 뱉는다.
‘철봉에 잘 매달리려면 이걸 주의해. 물을 주의해. 손에 물이 묻으면 미끄러져 코가 깨져. 그럼 엄마한테 깨져. 손을 닦고 이쪽 저쪽 자유롭게 매달려. 나는 자유로운 타잔. 아아아아’
그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 인생 위에 음악이, 힙합이 물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