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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 회사에 연차를 내고 커피숍에 앉아 두꺼운 스릴러 소설을 읽었다. 소설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을 겪던 어느 마을에서 굶다 못해 죽기로 한 여자가 어렵게 돌봐온 고양이를 집 밖으로 풀어주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그때 나는 커피숍 바로 옆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왼쪽 뒷다리의 찢어진 살을 꿰매는 수술과 중성화 수술을 받는 고양이 ‘마디’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마디는 작년 여름이 끝날 무렵 퇴근한 뒤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내게 절룩이며 다가왔다. 덩치는 어른 팔뚝보다 크고 또 굵었고, 새하얀 털에는 노란빛이 도는 갈색 얼룩이 몇 방울 튀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 얼룩을 된장이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카레라고도 했다. 분홍색 코끝에도 갈색 무늬가 조롱박 모양으로 찍혀 있는데, 지금까지도 그 코를 들여다보면서 ‘어쩜 너는 이렇게 특별한 무늬가 있니?’라고 중얼대고 있다. 마디랑 빼닮은 길고양이를 족히 네 마리는 더 봤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유일무이하게 특별하기만 한 고양이 마디. 겁도 많고 애교도 많은 마디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하곤 했다. 전쟁이 터져서 서울이 초토화되면 마디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하지? 몰래 숨어 있어야 하는 긴장 백배의 상황에서 마디가 울어버리면 어쩌지? 스릴러 소설의 그 여자처럼 죽을 것만 같은 굶주림 속에서 과연 마디를 지켜낼 수 있을까?

시답잖은 헛생각이지만, 혼자서는 몹시도 골몰하며 고양이의 먹이와 식수를 계산하는 등 대비 시뮬레이션까지 해봤다. 물론 조금 더 현실적인 생각도 했다. 얼마 전에는 먹이를 주고 화장실 모래를 갈아주고 털을 빗겨주는 나를 마디가 어떤 이름을 붙여 부르는지 상상했다. 트위터에서 인간이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듯이 고양이도 인간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지 않을까, 고양이가 부르는 내 이름이 궁금하다는 트윗을 보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디가 붙여준 내 이름은 아마 ‘야~.’일 것이다. 여전히 시답잖은 생각이라고? 그렇게 고양이에 관한 싱거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마디가 자라는 걸 넘어서 늙게 되는 지점까지 생각하게 된다. 늙다가, 늙다가, 계속 늙다가 결국은 죽게 될 것이다. 나보다 빠르게 말이다. 마디는 언제 죽을까? 어떻게 죽을까? 그때 마디 곁에 있을 수 있을까? 마디를 잘 떠나 보낼 수 있을까? 이건 좀 현실적인 걱정일까?

어떤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일은 그 존재의 부재를 걱정하는 마음을 짝지처럼 데리고 온다.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마주하는 풍경을 다채로운 색감과 코끝을 찡하게 하는 글로 풀어낸 그림책 <춤추는 고양이 차짱>은 마디의 죽음에 관한 내 상상을 어둡고 슬픈 색이 아니라 밝고 따뜻한 색으로 물들였다. 차짱은 눈동자 색깔만 빼고 우리 마디를 쏙 빼닮았는데, 내 친구들이 마디를 보고 된장과 카레를 떠올렸듯이 글 작가 호사카 가즈시는 자기가 키우던 고양이의 갈색 얼룩을 보고 말린 찻잎이 떠올라 차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나는 고양이 차짱, 나는 죽었습니다. 아니, 춤추고 있습니다.” 그림 작가 오자와 사카에가 그린 어두운 밤 풍경 속에서 차짱이 환하게 웃고 있는 표지는 그림책의 첫 문장을 더욱더 강렬하게 전달한다. 육체에서 벗어나 풀처럼 나부끼고, 구름처럼 흘러가고, 물고기처럼 춤을 추는 차짱은 ‘죽었다’와 ‘춤추다’가 어떻게 다른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놀다’와 ‘춤추다’도 차이가 없고, ‘죽다’와 ‘살다’도 마찬가지다. 어찌 됐든, ‘나는 나’니까. 차짱은 죽어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10분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지만, 요 며칠 <춤추는 고양이 차짱>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고, 손으로 더듬어 읽으면서 흩날리는 나뭇잎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는 차짱의 고양이다움에 웃고, 검은 숲을 향해 달려가는 차짱의 작은 등을 보며 외로워하고, 고래와 지렁이와 새와 함께 하늘을 나는 차짱의 춤사위를 보며 행복했다. 아마도 앞으로도 몇 십 번은 더 읽을 것이다. 마디의 뱃살을 주무르다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침울해질 때마다, 또 어떤 소중한 존재의 부재가 두려울 때마다 <춤추는 고양이 차짱>을 펼쳐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 읽으며 마음을 따뜻한 색으로 물들일 것이다.

<춤추는 고양이 차짱>
지은이 호사카 가즈시
옮긴이 박종진
그림 오자와 사카에
출간 정보 한림출판사, 2016-05
<춤추는 고양이 차짱>은 애완동물을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따뜻한 그림책입니다. 고양이와 자연을 표현한 다채로운 색깔과 만져질 듯 생생하게 표현된 종이의 질감이 마음이 사로잡습니다. 연둣빛 풀과 색색의 꽃잎이 바람에 날립니다. 그 속에서 차짱은 뒹굴며 놀고 있습니다. ‘죽었다’와 ‘춤추다’가 다른 건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세상을 떠나 온 뒤에도 춤을 추고 있는 차짱을 보며, 우린 위안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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