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_201703_bookshelf

어려서부터 정상과는 미묘하게 어긋난 삶을 살았다. 내가 비정상인 이유는 시기마다 조금씩 달랐다. 유년기에는 친구가 없어서, 20대에는 여성스럽지 않아서, 지금은 ‘인간의 순리’를 거스르고 있어서, 내가 살아온 모든 날이 비정상이었다. 이대로 사회부적응자가 되려나 싶은 순간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며 잘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습관처럼 “나는 정상”이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안타깝게도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18년째 편의점에서 일하는 후루쿠라는 어떨까? 36세의 여성인 그는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 없는 모태솔로에 제대로 된 직장 경험도 없는 프리터 족이다. 후루쿠라는 자라면서 줄곧 이상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지만 편의점에서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되었다고 안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후루쿠라는 자신과 비슷한 시라하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래서, 과연 그녀는 ‘정상’이 되었을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고민 없이 너무나 간단하게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 그 기준은 기성세대와 기득권에 의해 이미 오래전부터 재단되고 다듬어졌다. 자의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따르거나 버림받거나. 후루쿠라의 말처럼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되고 비정상으로 낙인 찍힌다.

그렇다고 해서 정상 세계가 대단히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하다. 처음 보는 아내의 친구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묻는가 하면 길가에 죽은 새를 애도한다는 명목으로 주위의 꽃줄기를 억지로 잡아 뜯어 죽이기도 한다. 정상이라는 덫에 갇힌 이들은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삶을 “간단히 강간”해버린다. 혀끝은 칼이 되어 무수한 생채기를 만들어낸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은 완성된 세계의 표준을 거부하는 젊은 세대를 대표한다.

그렇지만 이제 세상은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의 20~30대는 규격화된 사회와 피를 흘리며 싸우는 대신 선택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갈음한다. 가임지도를 만드는 정부를 비웃으며 고양이를 키우고, 연애지상주의를 비꼬며 홀로 사는 즐거움을 예찬한다. 예전에 당연했던 일들은 이제 조금도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먹고살아도, 애인이 없어도,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가 없어도, 무엇이든 어떤 것도 다 괜찮다. 어차피 세상은 불합리하고 모두들 존재하지 않는 보통 인간을 연기하고 있으니까.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은 한 흑인 남성의 삶을 담담하게 그린 <문라이트>에게 돌아갔다. ‘화이트 오스카’라는 비아냥을 듣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예외적인 일이다. 한때 이 세계에서 흑인은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었다. 동성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달라졌다. 아니 달라지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간극은 좁아지고 경계는 모호해졌다. 틀리다고 믿었던 일들은 이제 다름으로 받아들여진다. 여전히 다른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입을 다물라는 암묵이 유령처럼 괴괴하게 떠돌지만, 전세는 완전히 기울어졌다. 그러니 조금은 여유를 갖고 ‘비정상인 나’를 즐겨보면 어떨까.

<편의점 인간 >
지은이 무라타 사야카
옮긴이 김석희
출간 정보 살림 / 2016-11-01
원제 コンビニ人間
18년째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의 이야기를 그리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고민한 소설. 규격화된 현대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타인을 향한 폭력성을 날카로우면서도 풍자적으로 묘사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2016년,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주인공 후루쿠라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본 적도, 연애를 해본 경험도 없다. 결혼도 출산도 그녀의 삶에는 없다. 가족과 친구들이 애써 그대로 받아들여준 덕분에 지금껏 아르바이트로 살아오고 있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그녀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루쿠라 앞에 시라하라는 이상한 남자가 나타난다. 비정상이라는 손가락질이 불편해진 후루쿠라는 ‘정상적인 삶’이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시라하에게 동거를 제안하지만, 그때부터 후루쿠라를 둘러싼 환경은 기묘하게 바뀌어간다.
소설을 쓴 무라타 사야카는 주인공 후루쿠라와 마찬가지로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녀는 출간 직후 편의점에서 사인회를 여는 등 기묘한 행보를 보이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저자는 지금도 주 3회 편의점에 출근하며 “일반적인 세상 이야기에 묘한 것을 집어넣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