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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시인의 시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시는 많고 많지만 요즘은 특히 이제니 시인의 시를 많이 읽고, 읽을 때마다 좋다 좋다 하고 말합니다. 그녀의 시는 천진하고 재미있고 매우 솔직합니다.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이라는 시가 그 솔직한 시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죠. 솔직하면서도 정말 근사한 이별시입니다. “가느다란 입김이라도 새어나오는 겨울이라면 의도한 대로 너는 네 존재의 고독을 타인에게 들킬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구절이 있어요. “의도한 대로” 말입니다. 솔직하지 않나요. “창문 위의 글자는 씌어지는 동시에 지워진다. 안녕 잘 가요. 안녕 잘 가요. 나도 그래요. 우리의 안녕은 이토록 다르거든요”라는 구절은 얼핏 진부할 수 있지만, “나도 그래요”, 이 가벼운 두 어절에 내 마음이 흔들렸답니다.

말했듯 천진하고 재미있는 부분도 많아요. 그건 이제니 시인이 언어가 얼마나 자의적인지에 관심을 갖고 그 자의성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해나가며 드러나죠. 습작기가 길었던 만큼 이러저러한 방향으로 실험도 해보고 시도도 해보고 혼자 많이도 즐거웠을 것 같아요. 이제야 책으로 만난 나 같은 사람은 그 시간들에 질투도 나지만, 그녀의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만 있으면 나 또한 심심하지 않으니 그저 좋습니다. 그래요, 다시 자의성 이야기로. 그녀의 시들에는 여느 시와 같이 처음 들어본 ‘표현’뿐 아니라 처음 들어본 ‘단어’가 많아요. 뵈뵈와 밋딤은 누구인가요. 요롱이와 독일 사탕 개미는 또 어떻구요. 그치만 왠지 알 것 같아요. “나는 정말 요롱이가 되고 싶어요. 요롱요롱한 어투로 요롱요롱하게. 정말 요롱이가 된다면 정말 요롱이가 된 기분이 들 테지.” 응, 나도 요롱이가 뭔지, 요롱하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명사도 형용사도 부사도 모두 같은 요롱이지만 그 각각을 어렴풋 알 것 같아요. 사전에 있는 낱말들로만 둘러싸인 삶을 사는 나 같은 사람들도 짐작할 수 있으니 나보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더 잘 느끼리라 생각해요. “고백을 하고 만다린 주스/ 달콤 달콤 부풀어오른다/ 달콤 달콤 차고 넘친다/ (…)/ 액화되었습니다/ 액화되었습니다” 슬프고 달달하고 시원하고 출렁이는 만다린 주스를 함께 마시며, 우리는 바벨탑의 언어를 천진하게 무너뜨렸지요. 언어 너머를 바라보는 언어를 말하는 언어는 언어인가요, 아닌가요.

시집의 절반 이상을 읽고 만난 문장, “나는 이 생을 두 번 살지 않을 거야/ 완전히 살고 단번에 죽을 거야” 천진함 속에 불쑥 드러난 확고한 표정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꼭 쥐었습니다. “나는 지구의 회전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나의 여백을 믿는다”. 나도 그래요. 알파카의 그 여린 솜털이 바람에 날리고 있군요. 난해할 것 없지요. 꿈꾸고 상상하는 것은 해석이 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애초에 난해할 것이 없습니다.

놀라울 만큼 뜨거운 계절이 있었지만, 구월은 가을에 속하겠지요. 끝물인 여름을 맛봅니다. “구름의 바람은 나무가 되는 것이었다. 나무의 바람은 구름이 되는 것이었다. 바람의 바람은 바람이 되는 것이었다. 나무의 구름이 바람이듯이. 바람의 나무가 구름이듯이. 세계는 너의 마음속에서 작고 넓다. 녹색 그늘 아래에서는 더 작고 더 넓다.” 소리 내어 읽으며 아침저녁 선선해진 바람을 느끼고, 가을을 발음하면 마음이 가만히 부푸는 것을 지켜봅니다. 고개를 들면 어딘가 기가 막힌 하늘이 존재할 거란 확신을 지닌 채, 아마도 아프리카, 나도 그곳으로 갑니다.

인용한 시:
‘후두둑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일 뿐’, ‘요롱이는 말한다’, ‘고백을 하고 만다린 주스’, ‘알파카 마음이 흐를 때’, ‘나무 구름 바람’,
–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아마도 아프리카>
지은이 이제니
출간 정보 창비 / 2010-10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시 <페루>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한 시인 이제니의 <아마도 아프리카>. 거침없는 상상력과 역동적 리듬, 그리고 발랄한 화법으로 2000년대에 문단에 등단한 젊은 시인 중 독보적 개성을 인정받으며 주목과 기대를 모아온 저자의 첫 번째 시집이다. 미끄러지고 비틀어지면서도 거침없이 내달리는 말과 사물 사이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초대한다. 특히 ‘말놀이’에 집중하고 있다. 논리적 의미에 지배당하지 않는 말 자체의 탄력 있는 연쇄로 시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자유로운 상상의 연쇄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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