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최유월

토요일 오전 진료를 마친 나는 정이 퇴근하길 기다렸다. 같은 병원 동료인 그녀는 4살 어렸지만 비단 내가 아니라 곁에 있는 모두가 사라져도 혼자 지낼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정의 그런 면이 서운하지 않느냐고 주변에서 물을 때마다 나는 웃음으로 무마했는데, 실은 그 점이 좋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였다.
저녁에 만난 우리는 근처의 CGV 아트하우스에서 멕시코영화를 봤다. 눈물을 훔치는 내 뒤통수를 쓰다듬은 정이 “어쩌자고 이런 남자를 만났을까.”라고 웃으며 말하자 나도 웃음이 나왔다. 추위가 꺾인 저녁은 걸을 만했다. 차로 10분 거리의 호수공원에 가서 산책을 한 우리는 그곳에서 오리고기를 먹고 병원 근방의 내 집에 돌아와 사랑을 나눴다. 이따 한 번 더 하자고 웅얼거리던 정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나는 모로 누운 그녀의 마른 등을, 열대에 뿌리내린 활엽수의 잎맥 같은 등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잠에 빠진 내가 해변에 누워있는 한갓진 꿈을 꾼 건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자다 침대 옆 탁자에서 울리는 진동음에 눈을 떴다. 새벽 전화는 대개 응급 콜이라 급히 받았다. 그러나 상대가 “잤냐?”고 끝을 확 올리며 묻기에 나는 귀에서 전화기를 떼 화면을 봤다. 저장되진 않았지만 외우고 있는 번호였다.
백의 번호는 간결했다. 유연한 곡선을 그리는 함수처럼 앞자리를 제곱하면 뒤의 숫자가 나왔다. 그녀와의 만남도 그처럼 서로가 완벽히 맞을 거란 환상에서 비롯됐는데, 그건 우리가 그만큼 어렸다는 뜻이었다.
“내가 말야. 밤에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왔거든. 거기 안내방송 나오잖아? 손잡이 잡으라고. 그래서 잡았어. 근데 손잡이가 느리게 움직이더라고. 그니까 팔이 자꾸 뒤로 밀리는 거야. 몸이 조금씩 뒤틀리고 막 불안해져. 안 넘어질 거 아는데, 손만 떼면 되는데 못 떼겠는 거야. 내가 왜 이리 등신 같나 자학하다 보니 이상한 거야. 그럼 첨부터 손잡이를 잡으라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취했니?”
“그러다 보니 그런 놈 있었지 싶더라고. 그래서 전화했어.”
몇 년 만인지 가늠도 안 되는데 어제 전화한 사람처럼 굴던 백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의기양양하게 “나 결혼해.”라고 말했다. “그렇구나.”라고 내가 심상히 답하자 그녀는 놀랍지 않느냐고 놀라운 듯이 물었다. “놀랐어.”라고 말한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 소파로 가는 동안 백은 뭐가 이렇게 싱겁냐며, 재미없다고 했다.
나는 정말 놀랐다. 물론 예전 사람의 결혼소식을 가끔 듣긴 했는데, 그때마다 할 만한 사람들이 한다고 여겼고, ‘시간이 언제 또 이렇게 흘렀대.’라며 자연의 섭리를 야속해 할 뿐이었다. 하지만 백의 말은 분명 뜻밖이었다. 은연중에 나는 백이 단순한 진심을 원했던 거라 믿어왔으나 어쩌면 내가 의도적으로 착각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각은 교활해 더 나은 걸 경험하면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백은 모든 면에서 나를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수년 전, 예술학 석사 2학기째였던 백과 애호가를 흉내 내던 나는 종종 (무료라는 이유로) 경복궁 인근 갤러리들에서 데이트를 했다. 취향전투가 유난했던 우리는 전시를 보고 나면 작품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논쟁 과정은 곧 취향의 취약성을 깨닫는 과정이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 부분을 솔직히 말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논쟁은 자주 격화됐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무게감을 강조했다. “나는 여기 인생을 걸었고 너는 아닌데 어떻게 같을 수 있니?”라고 물은 그녀는 인생이 만만찮은 건 세상이 비정하기 때문인데 “너한텐 세상이 안 비정하잖아. 그니까 네가 인생을 만만하게 보는 거야.”라는 말을 하곤 했고, 그런 힐난은 내 입에서도 안 좋은 말이 나오게 했다.
비슷한 이유로 가장 심하게 다툰 건 백의 생일이었던 1월 초였다. 만취한 백이 언쟁을 하다말고 내가 준 선물 가방을 허공에 던지자 나도 더는 참지 못했다. 가방에서 튕겨 나온 트렌치코트를 주워 눈을 턴 나는 그것을 백에게 건네며 헤어지자고 했다. 내가 그 말을 꺼낸 건 처음이라 그녀도 당황했는지 “그래 꺼져 새끼야, 나도 너 만나서 팔자 피려했다. 새끼, 눈치 존나 빠르네.”라고 말했는데 그건 백의 위악적 화법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지금이야 그런 지독함을 ‘트루 러브’로 여겨, 연극을 하는지도 모르고 연극을 해왔음을 알지만 그때는 제법 진지해 헤어지자는 고성이 좁은 골목길을 오갔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에 묻힌 편지와 다른 소소한 선물들을 주섬주섬 주워 코트와 함께 종이가방에 넣었다. 백의 원룸으로 갈 때는 어느새 그녀의 손이 내 외투 주머니에 들어와 있었다. 내가 나머지 손으로 백의 정수리에 앉은 싸락눈을 털어내자 그녀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난 말야, 대체불가능성을 원해. 지난주에 봤던 작품 기억나? 피사체를 일부러 흐릿하게 찍은 거. 평범한 풍경을 어떤 걸로도 전치할 수 없는 희미한 장면으로 인화했잖아. 나는 네게 그런 사람이길 원해. 너무 어렵게 말했나? 그래, 그래, 다 알겠지. 내가 실수했다. 여하튼 요는 단순해. 우리 집 땡이는 내가 아니면 안 되거든. 근데 넌 아니잖아.”
나는 멍멍, 개 짖는 소리를 냈다. 백이 피식 웃었다. “나는 맨날 시시한 이야기만 해.”라고 그녀가 시무룩하게 말하기에 “나도 맨날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하잖아.”라고 하니 “시시한 거랑 시시콜콜한 건 다르지, 멍청아.”라며 그녀가 꿀밤을 때렸다. 원체 손맛이 매워 분명 아팠겠지만 그때의 통증을 무디게 기억하는 건, 아마도 백을 이해해보려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부모는 자연재해라며 진절머리 치던 그녀를. 그럼에도 하고 싶은 건 하고 살겠다고 과외를 7개나 뛰며 대학원에 다니던 그녀를. 옷가지와 잡동사니로 헤엄치는 좁은 원룸에서도 LP판과 시집만은 고이 보관해야 한다며 냉동실에 넣어두던 그녀를.
시간이 지나 우리가 헤어질 때까지 백은 공동의 미래를 말하지 않았다. 단지 곁에 있으면서도 외로운 일은 참을 수 없다며,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연애는 그만하고 싶다고만 했다. 그 무렵 나는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음을 알았는데 내 안에도 더는 사랑이 없어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시간에 따라 희미해지던 백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없진 않았다. 그럴 때도 나는 그녀가 어디선가 씩씩하게 지내리라 여겼다. 그래서인지 의기양양했던 그녀의 선언이 조금은 의아했다. 고작 이건가. 하지만 그녀가 찾아낸 대체불가능성의 알리바이가 그것이라면 그 자체로도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주제넘은 생각을 했다.

백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도 하다 보니 점점 졸음이 몰려왔다. 그녀의 취기도 계속 올라 벽지 무늬가 꼬물거린다는 둥, 드림캐처가 날아다닌다는 둥 이해 못할 말을 했다. 잠에 취한 나도 벽지는 울면 안 된다는 둥, 드림캐처는 발리가 싸다는 둥 헛소리를 하자 그녀가 벌컥 “왜 말을 못 알아 처먹어! 외국인이야?”라고 소리쳤다. 그 말이 왠지 웃겨 킥킥대다가 내가 이제 자자고 했다. 그녀도 킥킥대며 그러자고 했다. 거짓말처럼 전화가 뚝 끊겼고 웃음도 뚝 끊겼다.
헛헛한 기분에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침실로 돌아갔다. 탁자에 전화기를 놓고 정의 옆에 누웠다. 아침 일찍 속초여행을 가기로 했기에 자야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끔뻑이며 어두운 천장을 보다 보니 그때 물어봤으면 더 좋았을까, 싶은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가정법은 이미 정해둔 대답만 하게 할 뿐이었지만 한 가지 의문은 가시지 않아, 희미한 장면으로 인화했다는 그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당시에 나는 그 작품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게 뭐냐고 묻지 않았다. 나의 무지가 ‘진짜’가 아니라는 단서가 될까봐. 다만 개처럼 짖었다. 멍멍. 그러면 모든 게 괜찮아진다는 듯이. 결국 어떤 작품인지 떠올리지 못한 나는 정의 등을 힐끗 쳐다봤다. 어쩐지 그녀의 등이 침대 사이에 놓인 벽처럼 느껴졌다. 나도 정을 등진 채 모로 누워 잠을 청하는데, 문득 방금 전의 일이 꿈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엎어둔 전화기를 집어 통화내역을 봤다.
백의 번호는 선명했다.
우리는 42분을 통화했고, 시각은 새벽 3시를 지나있었다.

* 제목은 2016 <월간 윤종신> 11월호 ‘널 사랑한 너(With 민서)’의 가사에서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