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밤
“별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었어.”
나는 말하며 고개를 돌려 도시의 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앞 동 건물은 집마다 불을 밝혔다.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작은방들의 빛과 거실 등 큰 빛이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처럼 한데 어우러진다.
“별? ‘하늘의 별’할 때 그 별?”
나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까만 어둠을 향해 턱을 괸다.
“응. 들어봐. 가벼운 별이 무거운 별보다 더 오래 산대. 2배 무거우면 밝기는 8배나 밝아서 자기 몸을 더 많이 태워 밝기를 유지한대. 짧고 굵게 사느냐 길고 가늘게 사느냐, 그게 문제인 거지.”
“몸을 태우며 살아야 한다니 불쌍하네.”
“인간도 에너지를 쓰며 살잖아. 노화도 하고.”
그는 동의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넌 어떤데?”
“뭐가?”
“짧고 굵게 사는 거랑 길고 가늘게 사는 거 중에 어느 쪽이 더 낫겠어?”
생각지 못한 질문에 나는 잠깐 멍해진다. 말없이 내 답변을 기다리는 그의 얼굴은 정지 화면처럼 멈춰있다. 송곳처럼 날 선 갓난아이 우는 소리가 중간층 어디선가 흘러나와 어두운 밤 허공에 뭉치다 퍼지기를 반복한다.
10시. 나는 종일 이 시간을 기다렸다. 땅의 온기가 천천히 내려앉고 나를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반발 물러나는 시간. 익숙한 곳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책을 읽거나 티브이를 보는 평온과 쉼의 순간들. 무엇보다 마음 편히 그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나를 둘러싼 어둠과 그를 둘러싼 빛이 끝내 이질적인 경계의 시간.
휴대폰을 손에 쥐어 들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작은 네모 상자 안에서 그는 커피를 마시고 서류를 뒤적이고 컴퓨터 키보드로 무언가를 찾기도 한다. 나는 네모 안에 갇힌 그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부쩍 푸석해진 그의 볼을 어루만질 때 감촉이 어땠더라.
우리가 먼 곳에서 서로 다른 일상을 꾸리면서 내 삶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와 생활의 속도가 다른 그를 보며 속앓이할 일도 없고 서로 미묘한 감정 다툼에 아웅다웅할 일도 없다. 거리가 멀어졌으니 마음도 멀어질 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사람 사이 어떤 식으로든 다 변하는걸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들이 뱉은 말이 모여 진짜 내 미래가 되어 버릴까 두렵다.
내 표정을 살피며 그가 묻는다.
“오늘은 별일 없이 잘 지냈어?”
사무실에서는 소장님 눈치를 보며 취업 사이트를 오갔고 집으로 들어오라는 아버지와 또 한 번 크게 싸웠고 목이 잠기고 콧물이 나는 걸 보니 감기에 걸린 것 같지만 병원에는 못 갔고 밥은 편의점 샌드위치와 라면으로 해결했어. 라고 말하면 괜히 걱정할까봐, 나는 살짝 웃고 되묻는다.
“너야말로 잘 지냈어?”
우리는 다른 시간에 산다. 내게는 밤, 그에게는 낮. 나에게는 지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그에게는 아직 살아내야 할 시간이 더 많은, 볕이 뜨거운 한낮. 언제쯤 서로가 서로의 일상이 될지 알 수 없는 우리는 답답할 때마다 켜켜이 밀려오는 침묵을 버티며 몇 번이나 고비를 넘겨왔다. 서로의 손이 아니라 작은 기계를 각자 손에 쥐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과 기약 없는 날들을 겨우 쌓아 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 노트북, 비행기 같은 문명의 잔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우리는 계속 사랑할 수 있을지 끝내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반짝이던 별이 회색 구름에 스치듯 사라졌다가 곧 다시 나타난다. 찬 바람에 책장이 사르륵 소리를 내며 넘어간다. 줄 쳐둔 문장에 내 시선이 머문다.
“나 생각났다.”
“뭐가?”
“나는 어떤 별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답.”
“말해봐.”
“별은 태어나는 순간 질량과 온도로 죽을 날을 계산할 수 있대. 그런데 나는 그런 거 따위 알 수 없는 인간이잖아. 사고로 내일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앞으로 의료 기술이 발달해서 한 백 년쯤 더 살 수도 있어.”
“그래서?”
호기심 어린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내 눈은 다시 밤의 하늘을 향한다. 마르고 차가운 대기를 지나 광활한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는 먼지에 붙은 먼지보다 작고, 보잘것없는 나의 더 보잘 것 없는 하루는 오늘도 소리 없이 지나간다. 그와 나 역시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며칠 후든 몇 십 년 후든 모든 관계의 끝은 결국 이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살 힘을 마련할 때이므로,
“어차피 모를 바에야 나는 그냥 살래. 오늘이건 내일이건 그냥, 생각 없이.”
그는 내 말에 긍정하듯 입술을 끌어올려 웃으며 말한다.
“그래. 같이 있어 줄게. 별에게 친구가 있듯이.”
“친구?”
“별도 무리를 이루잖아. 온몸을 불살라 빛을 뿜어내는데, 암흑에서 혼자 죽어 가면 외로우니까.”
나는 검은 우주에서 죽을 때까지 몸을 태워 빛을 뿜는 별들을 상상한다. 끊임없이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우주에 떠다니는 하나의 별, 그 옆에 또 하나의 별. 그리고 수많은 별.
“좋아.”
우리는 함께 고개를 들어 서로 다른 하늘을 바라본다. 내게는 밤, 그에게는 낮인 하늘. 먼 우주에서 우리의 다른 시간 따위 티끌보다 중요하지 않을 테고, 우리는 당장 내일 우리에게 일어날 일도 모르면서 서로의 앞에 펼쳐진 하늘을 그저 함께 바라보기로 한다. 나는 길을 잃고 지구로 내려온 밤의 별처럼 고요하고 무한한 어둠 속을 유영하며 천천히 나를 태운다.
* [24분의 1]은 젊은 소설가 24인이 매월 한 명씩 참여하여 24시간을 채우는 짧은 픽션 코너입니다. 참여 소설가들에게 특정한 ‘시간’이 창작 소재로 주어집니다. 2019년 1월에 시작해 2020년 12월에 완성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