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와 찌르레기>(2021)

지난해 봄, 내게는 가장 소중한 가족이었던 고양이 밍가를 떠나보냈다. 밍가와 나는 십 년을 함께 살았다. 밍가는 습관적으로 구토를 자주 한다는 것 빼고는 딱히 지병이랄 게 없는 고양이었다. 죽기 몇 달 전에는 더 오래 함께 할 작정으로 미루던 치과 치료도 받았고, 앓던 이를 뺀 덕에 먹기도 훨씬 잘 먹었다. 앞으로 십 년은 더 살아야 한다며 영양제도 챙겨 먹이고, 이전보다 활동량을 늘리기 위해 시간을 정해 열심히 놀아주기도 했다. 그때쯤 나는 서울에서 양양으로 이주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려면 믿을 만한 동물병원을 찾는 것 또한 관건이었다. 나의 이주 계획에는 그런 것들이 중요했다. 아무리 근사한 집이어도 반려묘를 키울 수 있는 집이어야 했고, 3차 진료까지 가능한 대형 동물병원과의 접근성도 따져봐야 했다. 족히 세 시간은 넘는 이동 시간을 잘 버텨내줄 수 있을까. 치아 적출 후 한동안 넥카라를 한 채 생활하던 밍가의 잠든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나는 과연 양양으로 이주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여러 날을 고민했다. 밍가는 살면서 다섯 번의 이사를 경험했으니 조금 멀더라도 한 번 더 괜찮을 거야, 그치? 나는 자는 밍가에게 주문을 외듯 내가 계획한 우리의 미래를 속삭여주었다. 그러니 건강해야 한다고, 딱 십 년만 더 살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밍가는 이상 증세를 보인 지 이틀 만에, 확실하게는 만 24시간도 안 되어 죽었다. 원인 불명의 급성 신부전이었다. 밍가가 담긴 박스를 두 팔로 안은 채 병원을 나와 집까지 일 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걸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였던 걸까. 그날부터 나는 밍가의 죽음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일말의 근거를 찾아내는 데 꽤 오랜 시간을 들였다. 눈을 뜨고 일어나 움직이고 일을 하다가 밥을 먹고 다시 잠에 들 때까지 나는 종일 그 무렵의 타임라인을 분 단위로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내가 못 본 사이에 벌어진 일들, 혹은 내가 인지하고도 까먹은 일들이 있는 건지. 이틀 전 새벽, 나를 따라 현관문 밖으로 뛰쳐나가던 밍가의 발을 내가 닦아주었던가. 건물 계단 청소를 언제 했더라. 그때 화장실 하수구에서 계속 락스 냄새가 올라왔던 것 같았는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보고, 그것이 원인으로써 말이 되는지를 수없이 곱씹었다. 밍가의 마지막을 함께 해준 수의사를 한 번 더 찾아가 내가 추측해 낸 여러 죽음의 가능성을 늘어놓다가는 엉엉 울기도 했다. 답을 알고 싶었다. 명확한 이유가 있었으면 했다. 차라리 나의 부주의함이 원인이 되었다고 확실하게 말해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수의사는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고, 그걸 이제와 따지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건 보호자 님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내게 자책은 가장 간편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

<릴리와 찌르레기>(2021)

<릴리와 찌르레기>의 릴리와 잭 부부는 자식인 케이티를 잃은 지 일 년이 지나도록 그 사건으로부터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케이티는 수면 중 갑작스레 사망하게 되는 영아 돌연사 증후군으로 숨을 거두었다. 초등학교 미술 교사였던 잭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는 것이 어려워져 일을 관두었고, 얼마 후 자살 시도를 했다가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매주 가족 방문의 날마다 아내인 릴리가 찾아오지만 어쩐지 잭은 그녀를 불편해한다. 릴리가 생각보다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잭은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면 케이티의 우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그렇게 눈을 뜨고 나면 마치 그날로 되돌아간 것만 같다. 잭의 시간은 아직도 그날에 머물러 있다. 잠이 든 아이를 흔들어 깨우기라고 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무언가를 되돌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은 정신을 차리고 나면 곧장 참혹한 절망으로 바뀌어 잭을 괴롭힌다. 잭은 가슴 찢어지게 괴로운 그 순간을 계속 복기하면서 늦잠을 잔 자신을 책망하는 것만이 딸의 죽음을 해석해내는 유일한 방법인 양 군다.

그에 반해 릴리는 잭의 표현대로라면 버티는 사람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똑같이 그녀는 매일 마트로 출근해 물품을 정리하고 캐셔 일을 한다. 입원 중인 잭을 대신해 집을 지키며 매주 잭이 좋아하는 스낵을 사 들고 면회를 간다. 잭의 주치의는 릴리에게도 상담을 받아보라 권하며 의사를 추천하지만 그녀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이미 역할 분담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릴리는 아픈 사람을 잭으로 두고, 자신을 상대적으로 덜 아픈 사람으로 위치시킨다. 그러나 그녀 역시 무기력하고 의욕 없는 나날을 보내는 건 마찬가지다. 업무를 하면서도 종종 넋이 나가는 탓에 상품 가격을 잘못 태그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어느 날 충동적으로 케이티의 방을 싹 정리했다는 릴리의 말에 잭은 크게 화를 내고 면회를 거부한다. 하지만 그간 잭이 없는 집을 지키며 케이티가 잠들던 침대와 두 사람이 같이 꾸민 벽화를 일 년 넘게 매일 매 순간 마주한 사람은 잭이 아닌 릴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면밀하게 들여다볼 새가 없었다. 언제나 보호자의 입장이었으니까.

<릴리와 찌르레기>(2021)

언젠가부터 릴리는 집 마당에 있는 나무 위에 새 한 마리가 유독 거슬린다. 자신의 영토를 지키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는 찌르레기였다. 찌르레기는 마당 텃밭을 가꾸는 릴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공격을 일삼는다. 참을 수가 없어진 릴리는 나무 밑에 독극물이 든 덫을 놓았으나, 찌르레기가 아닌 애먼 다른 새가 죽게 되고 릴리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잭의 주치의로부터 소개받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릴리는 문득 자신의 현 상태를 새삼 직면하게 된다. 의사는 사람들은 이유 없이 일어나는 비극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한다. 감정을 제대로 분출하지 않으면 잘못된 방식으로 감정이 터져 나오게 될 것이라고. 릴리에게는 그것이 분노로 작용한 셈이었다. 그 이후로 릴리는 그동안 자신이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을 조금씩 토해내기 시작한다. 딸의 죽음도 그러하지만, 자신을 두고 떠나려 했던 잭을 향한 다소 복합적인 감정들 역시.

밍가가 떠난 지도 일 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나는 영화 속 잭처럼 굴기도, 또 릴리처럼 굴기도 했다. 무척 슬프고 힘들었지만 밍가의 죽음이 변명 삼아 내 생활을 게을리하거나 그르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한없이 생각에 잠긴다. 그때 내가 좀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혹은 내가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그러나 시곗바늘을 아무리 돌린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영화 속 의사의 말처럼 이유 없이 일어나는 비극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도저히 풀 수 없는 암호로 굳게 잠겨버린 일들은 뜻하지 않게 찾아들고, 한동안 그것을 해석해내려고 부단히 애를 먹겠지. 그 애씀의 시간을 애도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너지고 화가 나고 흔들리며 무력해지는 각각의 순간들 전부를. 슬프고 분노하고 나빠지다가도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움직여가는 그 지난한 시간들 전부를. 네 번의 계절이 지나 나는 양양으로의 이주를 앞두고 있다. 밍가가 잠든 해변을 이제 매일 산책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계획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지만, 그럼에도 같은 곳에 있을 수 있어 좋다. 봄이 되었다. 이맘때면 더 바라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각각 찾아든 모든 불가해한 비극으로부터 치유와 회복을, 그리고 안녕을 빕니다.

 <릴리와 찌르레기>(2021)
The Starling
OTT Netflix
연출 시어도어 멜피
출연 멜리사 매카시, 크리스 오다우드, 케빈 클라인
시놉시스 직장에선 멍하니 넋 놓기 일쑤, 남편은 정신 병원에 입원. 아기를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여자. 어느 날, 정원에 둥지를 튼 찌르레기와 사투를 벌이며 치유의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