麥浚龍 & 謝安琪, [廢話], 2019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다른 사람과 함께 듣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불편하다. 특히 달리는 차 안에서는 더더욱. 내 음악 취향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평가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분명 혼자 들을 땐 한음 한음 주옥같던 노래들이 스피커로 크게 나오면 왠지 모르게 심심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마치 핸드폰 사진첩이 온통 애인 사진으로 가득 차 있지만 누가 애인 사진 좀 보여달라고 하면 잘 나온 사진을 찾기 위해 백 년 동안 폭풍 스크롤 하는 사람처럼, 누군가 좋아하는 노래를 물어보면 우물쭈물하게 된다. 내 눈(귀)에는 멋진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니까요. 특히나 이 노래들이 낯선 언어로 되어 있다면 더더욱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나는 평소 음악을 애플 뮤직으로 듣는데 사용자로서 꼽는 이 앱의 가장 멋진 점은, 오늘의 TOP 100을 국가별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최애 국가는 단연 홍콩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홍콩 TOP 100을 들을 때면 나는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외롭지 않다. 놀랍게도 이 나라 사람들은 나와 음악 취향이 쌍둥이 같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음악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한 나라가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 아니겠는가(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한 번쯤은 오늘의 TOP 100을 둘러보길 추천한다. 본인과 잘 맞는 나라를 찾을지도 모르니!).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아직 홍콩에서는 발라드가 강세다. 다른 나라에는 글로벌한 팝이나 아이돌 음악이 대세인 와중에 늘 홍콩 차트에는 자국의 발라드곡이 가득하다. 심지어 홍콩 발라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가수들의 목소리가 대체로 맑은 미성이라는 점(내 취향), 피아노를 베이스로 하는 반주에(내 스타일), 멜로디가 청순하고 예쁘다(취향 저격). 그러면서도 뻔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진행이 아주 매력적이다. 음과 음 사이에 뜻밖의 도약이 많은 편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심금을 울리는 포인트가 있다. 게다가 광둥어 발음은 또 어떠한가. 이응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듣다 보면 동글동글 이슬이 풀잎에 굴러가는 것 같다. 그러다 시옷 발음으로 중간중간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처럼 끊어지는 부분도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돌아보면, 광둥어는 나에게 늘 동경의 언어였다. 초등학생 때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홍콩 영화를 볼 때부터 나는 카세트테이프로 홍콩 가요를 들었다. 종종 가던 서울역 음반 가게에서 나는 장국영이나 곽부성의 앨범, 홍콩영화 OST 모음집(<천장지구>나 <패왕별희>의 주제곡 같은 게 들어 있었다)을 사서 닳고 닳도록 들었다. 조기교육의 무서움일까. 그때부터 나는 북경어와 광둥어 버전의 노래를 비교해서 들으며 광둥어가 더 좋다, 언젠가 광둥어를 배워야겠단 꿈을 품게 되었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이 전부가 아니라 아주 넓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어릴 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그래서일까, 나는 외국어를 좋아한다. 학구적인 목표 없이 순수하게 재미로. 요즘도 내가 좋아하는 소일거리 중 하나는 듀오링고로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다. 이탈리아어, 아랍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덴마크어, 독일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일본어, 핀란드어, 힌디어 등 열 몇 개 언어를 등록해 놓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몇 개씩 돌려가면서 게임하듯이 문제를 푼다. 이런 나지만 왠지 광둥어를 배우는 일만은 최대한 미뤄두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을 마지막에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간절하게 이해하고 발음하고 싶은 언어를 배우는 기쁨을 유예하는 것. 갈증을 더해두는 것.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은 마음. 미래의 나를 위한 나의 배려.

사실, 나에게는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는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거기에는 광둥어로 된 노래들이 들어있고 이 노래를 나와 함께 들은 사람은 아직까진 단 한 사람뿐이다. 몇 년 전 유럽에서 예능 촬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다. 나는 당시 선발대로 가서 이런저런 문제로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현지 코디님과 단둘이 차를 타고 차가운 스위스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석의 코디님은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나에게 듣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물었고 나는 처음으로 예외적으로 내 플레이리스트를 오픈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낯선 언어의 노래가 흘러나왔고나는 가장 실험적인 노래를 틀었다코디님은 의외로 노래를 모두 끝까지 잘 들어주었고, 나는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로 된 노래를 들으며 처음으로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다. 주노 막(麥浚龍)& 사안기(謝安琪)의 <廢話>.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는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방금 한 곡이 전국적으로 공개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