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최유월

“밤이 오지 않습니다”하고 그가 말한다. 기차는 한 방향으로, 주기적으로 멀어진다. 지평선에 태양이 걸쳐 있다. 어스름한 땅거미나 노을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육교 난간에 팔을 기대고 있다. 나는 그의 등에 팔을 기대고 있다. “밤이 오지 않는다니까요.” 하늘이 군청색으로 짙어진다. 우리는 육교에 모인 다른 사람들처럼 약간은 지친 상태로 오랜 시간 서 있었다. 술병이 굴러온다. 굴러 온 곳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없다. 이제 태양이, 완벽하게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리라.

나는 도시 외곽에서, 그는 도시 중심부에서 걸어 나와 건물들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어떤 의도나 상의 없이 그 끝은 항상 육교가 되는데, 아마도 이곳이, 먼저 밤이 도착하는 곳일 거라는 예전 누군가의 말 때문이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저기 플랫폼에서 떠날 때인가요?”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출구 번호가 적힌 표지판이 꺼질 듯 반짝이고 있다. 우리는 이틀 간격으로 만나 서로가 가진 인상을 ― 이를테면 주말로 예정된 지인의 결혼식에서 서로 모른 척 할 수 있는 방법과 도로에 트럭들이 자주 보이는 이유, 지역 신문 1면을 장식한 화가의 어릴 적 사진을 스크랩한 사실, 경매에서 낙찰된 거북이 등껍질로 만들어진 식탁 등 ― 긴 대화로 나누곤 육교에서 헤어졌다. 각자 다른 계단으로 내려갈 때면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여지없이 만나 다시 걸었다. “밤이 오지 않는 이유는 다양한데……” 나는 그가 늘어놓는 궤변이, 종종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기면서, 말을 준비할 때의 그의 습관은 좋아한다. 그는 말한다. “분간이 가질 않아요.” 그는 오른손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뒤진다. 허공에서 뭔가를 찾는 셈이다. 누군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소리에 놀란 비둘기 떼가 날아오른다. 사람들이 서서히 자리를 벗어나고 있다. “해마다 한두 명씩은 꼭 이 자리에서 떨어집니다. 크게 다치지만 죽지는 않아요. 그들은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되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병실을 찾아가겠죠. 늦은 시간에요.” 면으로 된 주머니 부분이 불룩하게 늘어나 있다.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그는 난간에서 몸을 떼고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본다. 주위가 어두워질수록 얼굴이 뚜렷해지는 것 같다.

그는 도시의 여러 가게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꽃집에서 누가 주문을 많이 하는지, 리셀숍에 진열된 상품들은 왜 날마다 가격이 다른지, 서점과 카메라 상점의 임대료, 몇 달 동안 공사 중인 카페까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알고 싶지 않은 사정들에 대해서도 말입니다”하고 말하며 그는 왔던 길을 향해 몸을 돌린다. 걸을 때의 생기는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서서히 멀어지는 그를 바라본다. 그는 퇴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평소보다 어쩐지 서두르는 것 같다. 코트를 벗어 그에게 건넨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한다. 나는 매일 새벽 나를 짓누르는 무기력의 원인과 죽은 이름들, 삶에서의 규칙적이고 반복된 습관, 서류 뭉치, 예정된 이사 날짜에 대해서 쉴 틈 없이 말한다. 그는 반대편으로 천천히 멀어지는 중이다. 가로등이 켜진다. 언젠가 가로등이 없는 시골길을 밤새 걷고 싶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기대하는 투로 말했다. “정확한 순간이 언제일까요? 이런 시간대일까요?”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없다. 제의를 한 일도 없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메뉴를 고르며 낮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밤을 준비하면…… 

이제 육교는 텅 빈 거리가 된다. 기차가 지나는 소리와 안내 방송도 들리지 않는다. 한기가 느껴진다. 어깨와 팔이 떨리고 피로가 몰려온다. “같은 시간에 만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에 대한 개념은 없지만요. 저만 그런 걸까요. 당신도 시간 속에서 불행하다고 느낍니까? 저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바깥이에요.” 그는 반대편 계단에 서서 나를 바라본다.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다른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자리에는 나 혼자, 술병을 발로 차며, 밤을.■

* [24분의 1]은 젊은 소설가 24인이 매월 한 명씩 참여하여 24시간을 채우는 짧은 픽션 코너입니다. 참여 소설가들에게 특정한 ‘시간’이 창작 소재로 주어집니다. 2019년 1월에 시작해 2020년 12월에 완성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