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최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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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맛있게 드세요.

최효정 드림.

효정은 모니터를 노려봤다. 정확히는 자신이 작성한 메일 속 한 문장을. 그것이 잘못되어서는 아니었다. 효정의 메일은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가기에 적절하고 적당했다. 다만 한 문장이, 아무리 업무상 주고받는 상투적인 표현들이라고는 해도, 진심이라고는 전혀 담기지 않은 문장이라는 것이 효정이 발송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월요일 아침 열한 시 오십 분, 사무실은 오전 업무를 어서 마무리하고 열두 시부터 시작될 한 시간 동안의 점심시간을 온전히 누리려는 분주한 키보드 소리로 가득했다. 효정은 방금 보낸 메일을 끝으로 오전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다 끝난 참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예를 들어 거래처 담당자가 효정의 메일 끝인사인 ‘점심 맛있게 드세요.’가 ‘혹시 문의하거나 상의하거나 항의할 내용이 있더라도 각자 밥은 좀 챙겨 먹고 점심시간 지난 후에 다시 이야기 합시다.’라는 뜻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일 같은.
예전이었다면 이런 때에는 간식보관함으로 쓰는 두 번째 서랍에서 쿠키를 꺼내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분이 뇌를 두드리는 짜릿한 감각에 오전 업무의 피로가 가시는 기분을 느끼며 “역시 식전에는 단 것을 좀 먹어서 식도와 위장을 워밍업 시켜줘야 해.”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그러니까, 일주일 전이었다면.

일주일 전, 문제의 그날 점심시간을 효정은 똑똑히 기억했다. 출근하자마자 독촉 전화와 클레임 메일에 시달렸다. 상사는 이유 없이 짜증을 내고, 같은 팀의 동료 한 명이 무단결근을 했다. 커피 한 잔 마실 틈은 꿈도 꿀 수 없이, 화장실도 못 가고 정신없이 오전을 보냈다. 구내식당 메이트 미현이 점심은 먹을 수 있겠느냐고, 빵이 있는데 나눠줄까 물어왔을 때에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아니! 빵은 무슨, 밥을 먹어야지!”
모니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얼마나 홀가분했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까지 비상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며 미현과 나누었던 사소한 잡담들은 또 얼마나 즐거웠나. 그날부터 시작된 자율배식 덕분에 반찬을 넉넉히 식판 위로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은 효정을 들뜨게 했다. 그리고 드디어 효정의 젓가락이 처음으로 향했던, 선택 받은 반찬의 식욕을 돋우는 붉은 양념과 은은히 풍겨오던 달착지근한 냄새. 효정은 흐뭇하게 그 반찬을 입에 넣었다.
“이게 뭐야?”
정말로, 순수한 의문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미현도 효정과 똑같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효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쪽 벽에 붙은 게시판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오늘의 메뉴’를 보고도 도무지 자신에게 일어난 이 끔찍한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게 뭐래?”
“오징어볼이래.”
“볼…?”
미현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왼쪽 볼을 엄지와 검지로 둥글게 감싸 원을 그려보였다. 충분히 귀엽고 유머러스한 동작이었지만, 효정은 차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방금 씹어 삼킨 스펀지 같은 것이 ‘오징어볼’이라는 이름의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구내식당은 효정이 회사생활을 버티는 몇 안 되는 이유 중 꽤 중요한 하나였다. 매일 새로 버무리는 겉절이 김치, 바삭하게 지져진 감자전, 뜨끈한 쇠고기 미역국과 고슬고슬하게 지은 수수밥을 먹으며 느끼는 소박한 풍요. 퇴식구 옆에 놓인 디저트 코너의 요구르트에서 얻는 찰나의 달콤함. 주변에 마땅한 식당은커녕 배달음식 주문조차 거절당할 정도로 외진 곳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격이 저렴하고 맛이 좋은 구내식당의 존재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때문에 효정은 ‘오징어볼’의 등장이 몹시 위험한 신호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그날 이후 일주일은 참혹했다. 함박스테이크, 떡갈비, 포크커틀릿은 이름만 다르고 맛은 같은 가공육이었다. 백김치는 소금에 절여진 배추에 급하게 식초를 뿌린 것 같았다. 심지어 설탕 알갱이가 씹혔다. 밥은 너무 질거나 너무 되거나 혹은 타거나 설익었다. 국은 한번도 간이 맞지 않았다. 그런 음식들일뿐더러 양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지 조금만 늦게 구내식당에 가면 빈 반찬통을 마주해야 했다. 사태가 벌어진 지 사흘째에 미현은 구내식당을 포기하고 도시락을 싸는 것으로 전향했다. 하지만 효정은 소중한 퇴근 후의 시간을 도시락을 싸는 데에 단 1초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외로운 싸움이었다. 효정은 꿋꿋하게 구내식당으로 향했고, 기대는 늘 배반 당했다.

열한 시 오십오 분. 효정은 다짐했다. 더 이상 이 모든 걸 감내하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정당한 항의로 자신의 권리를 되찾겠노라고. 그간 구내식당 게시판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구내식당을 관리하는 사내 담당자에게 항의를 해보았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이젠 정면돌파뿐이었다. 효정은 사무실을 빠져나와 은밀하고 신속한 발걸음으로 비상계단을 내려갔다. 열한 시 오십육 분. 오십칠 분. 오십팔 분. 구내식당의 반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효정은 달려가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저기요!”
하얀 위생복을 입은 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효정은 멈추지 않고 그를 따랐다.
“잠시만요!”
“여기는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
조리실에 들어선 효정은 깜짝 놀랐다. 조리실에는 사방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는 거대한 조리기구들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제야 자신의 앞에 선 사람의 지친 얼굴이 보였다.
열두 시, 구내식당으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효정은 이제 진짜 뭔가를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24분의 1]은 젊은 소설가 24인이 매월 한 명씩 참여하여 24시간을 채우는 짧은 픽션 코너입니다. 참여 소설가들에게 특정한 ‘시간’이 창작 소재로 주어집니다. 2019년 1월에 시작해 2020년 12월에 완성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