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g, [Apartment #635](1998)
싸이월드가 폐업했다. 어떤 방법을 써봐도 미니홈피는 열리지 않았고 에러 메시지만 자꾸 떴다. 몇 년의 기록이 이토록 허망하게 사라져버릴 줄은 몰랐다. 진작 백업을 안 하고 무얼 했느냐고 핀잔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겐 변명거리가 있다. 올해 초까지도 종종 싸이월드에 접속해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떠난 SNS는 시간이 멎은 유령 도시 같았다. 투데이는 0. 열려 있지만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는 곳. 나는 이제 유물이 된 사진을 넘겨보며 그리움을 증폭시키곤 했다. 향수에 젖는 이유는 대개 비슷할 것이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미래가 기대되지 않거나. 나는 서너 달에 한 번꼴로 오늘의 자잘한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싸이월드에 들어갔다. 살아 있는 SNS에 하지 못할, 갈등- 부채감- 상사병- 옹졸함- 따위를 두서없이 쏟아내기 위해서였다. 글은 싸이월드가 건재했던 과거로 발신되는 것 같았다.
한바탕 적고 나선 BGM을 열었다. 그 시절 용돈을 아껴 쟁여둔 리스트는 제법 건실했다. 마음이 가는 몇 곡을 골라 틀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걸 처음 들었던 무렵이 떠올랐다. 다이어리를 쓰는 것과 정반대로, 옛 음악을 듣는 건 과거의 무언가가 새삼스레 지금으로 당도하는 일인 모양이었다.

기억력이 형편없는 탓에 그 시절은 아주 파편적이다. 노천극장에서 마피아 게임을 하다가 기숙사 통금 시간이 지나 받은 벌점, 뜨끈한 동아리방에서 정수기 물통에 말아 마신 소백산맥 폭탄주, 꽁꽁 언 저수지 위를 가로질러 친구 자취방에 간 한겨울 밤처럼, 아주 하찮지만 강렬하게 즐거웠던 감정이 떠오른다.
물론 좀 더 눅진한 조각도 있다. 처음으로 가본 대학로 지하 소극장과 연극 <밑바닥에서> 주인공의 붉은 드레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모든 관객들이 일어나지 않는 경험을 처음으로 해본 압구정 스폰지하우스. 정동 스타식스에서 처음으로 봤던 밤샘 영화. 그중 한 편은 너무 형편없어서 (제목을 밝히진 않겠다.) 새드 엔딩임에도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더랬다. 그렇게 밤을 새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영화 매표원을 거듭 마주쳐 서로 책을 추천해주었고, 집에 돌아오는 기차에서 『깊이에의 강요』를 읽었지.

Dag를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엔가, 친구의 미니홈피 BGM이 Dag의 <If You Ever Need A Heart>였던 것이다. 나는 본 목적대로 방명록을 클릭하는 대신 가수와 제목을 확인했고, 끝까지 들은 후엔 검색창을 켰다. Dag는 이미 1999년에 해체한 밴드였고,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발매된 앨범은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 앨범, Dag 2집 [Apartment #635]의 첫 트랙이 바로 <Our Love Would Be Much Better (If I Gave A Damn About You)>다. 싸이월드 BGM이었는지 벅스뮤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딱 받은 느낌은 기억난다. 내가 ‘이런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몇 초 후 베이스와 드럼이 합류했다. 나는 알았다. 다른 여러 처음과 마찬가지로, 이런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당시 원주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음반점 소리모으기에는 그 음반이 없어서, 몇 주 후 서울에 올라가서야 구했던 기억이 난다. 신촌 향뮤직에서였다. 지금 [Apartment #635]를 갖고 있지는 않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잘되지 못하고 연락이 끊겼으므로 그의 취향이 어땠는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참 괴롭고 슬펐지만, 역시 지난 일이다.

아무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기한 민원은 한국인터넷진흥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쳤음에도 뾰족한 수가 나오진 않았다. 그러는 몇 달 사이 포기할 준비도 된 것 같다. 다이어리와 사진, BGM 리스트. 나의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모양이다.

세상엔 돌아오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