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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토크’의 네 번째 시간. 이번 달의 주인공은 작가 서원미이다. 서원미 작가는 ’Monthly A’가 소개하는 네 번째 전속 작가로 2013년 12월 <월간 윤종신>의 커버 아트를 담당했으며, 2014년 8월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월간 윤종신>展’에 참여했던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구상과 추상이 한 화면에서 부딪치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대담은 4월 23일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서원미 작가의 작업실에서 진행되었다.

“색깔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축약하는 로스코의 자신감과 배포가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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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_이번 달 주제가 ‘마크 로스코’ 전시회였는데, 다들 어떻게 봤나요?

서원미_저는 추상화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로스코는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어요. 색감 때문에요. 어떻게 이런 색을 같이 쓰는지 신기했거든요. 안 어울릴 것 같은 색을 함께 써서 잘 어울리게 만드니까요. 제 그림에도 색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영감을 주기도 했고요. 이번에 직접 가서 보면서 가장 놀랐던 건 존재감이었어요. 색덩어리들이 무게를 갖고 다가오는 느낌이었달까요. 색이 주는 존재감이죠. 형태가 없어도 존재감이 엄청나더라고요.

윤종신_저도 그 색깔부터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이번 전시에서는 로스코의 초기작도 몇 점 볼 수 있는데, 초기에는 형태가 있었지만 점점 그게 사라지면서 색깔만 남잖아요. 저는 그 점이 충격적이었어요.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더라고요. 색깔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축약해버리는 자신감과 배포가 놀라웠습니다. 복잡한 걸 설명하기 위해서 단순하게 간다는 게 발상 자체가 대단한 거죠.

이강훈_저도 굉장히 감동했는데, 확실히 직접 보니까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저는 뭔가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잘 된 작업이라도 별 감흥 없이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로스코의 몇몇 작품은 심장을 뛰게 했습니다. 이건 아무나 흉내를 낼 수 없는 거죠. 그림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을 굉장히 잘 드러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보니까 도록이나 인터넷으로 보는 거랑은 그 느낌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서원미_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어떠한 설명도 없이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미술이라는 예술만의 매력일텐데, 로스코의 작품은 그 매력이 그대로 담긴 것 같아요.

윤종신_대부분의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뭔가를 느꼈을테지만, 그걸 잘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재주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한테 분명히 어떤 깊은 화학작용이 일어났는데 그게 도대체 뭔지를 모르는 거죠. 저같이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도 대가들의 그림 앞에서 멈칫하게 될 때가 있는데, 아마 그런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건 존재감이 다른 거죠.

서원미_저는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린 사람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작품에서 움찔하게 되는데, 로스코는 그래서 좋았던 것 같아요. 특히 마지막 작품인 ‘레드’에서는 색이 얇게 칠해져서 그런지 작가의 붓질이 보이잖아요.

윤종신_이 작품에서 울었다는 분들이 많은데, 솔직히 저는 감정적으로 동화된 건 아니었어요.(웃음)

서원미_사실 저도 울컥하거나 그렇지는 않았어요.(웃음)

윤종신_저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전시회를 두 번 관람했는데, 두 번째 볼 때는 예술가로서의 마크 로스코의 삶에 대해 관심이 가더라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된 생각들이 어떻게 작품 속에 투영되었는지가 보이니까요.

이강훈_저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에 흥분했어요. 오랜만에 그림다운 그림을 봤달까. 다른 예술로는 표현하기 힘든, 페인팅으로만 가능한 게 보여서 전시를 보자마자 그림을 그리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큐레이팅은 좀 아쉽긴 했어요. (웃음) 배치도 그렇고 캡션도 그렇고, 뭔가 씹어서 떠먹여준 느낌이 났죠.

서원미_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준 감이 없지 않았어요. 아무 설명 없이 봐도 분명히 느껴지는 게 있을 텐데요.

윤종신_저도 그런 건 아쉽긴 했어요.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으로도 보여서 그 의도는 좋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저처럼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일반 관람객들은 아무래도 논리적인 설명을 바랄 텐데, 최선을 다해 관객과 함께 감상하려는 시도가 보이더라고요. 물론 그 방법이 조금 더 세련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기는 했습니다.(웃음)

이강훈_로스코의 원화를 이렇게 한 자리에 모으는 건 정말 힘든 일이죠.

윤종신_많은 분들이 꼭 직접 가셔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관계자분도 로스코의 작품을 국내에서 이렇게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마도 한동안은 없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전까지 로스코란 사람을 잘 몰랐던 저로써는 이번 관람 기회가 정말 뜻 깊었고, 앞으로 한 번 더 볼 생각입니다.

“구상과 추상을 하나의 화면을 충돌시켜서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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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_서원미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서원미 작가는 어떻게 그림을 시작했나요? 이제까지 소개된 ‘Monthly A’ 소속 작가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시작했겠죠?(웃음)

서원미_네, 그림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그려왔어요. 내가 이걸 왜 하나 싶은 물음도 없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했던 것 같아요.

윤종신_본격적으로 내가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언제부터였나요?

서원미_확 빠져서 하게 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어요. 미술 고등학교에 들어간 다음부터 열정이 커졌어요.

윤종신_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서원미_미술부 선생님들이 화집을 많이 보여주셨는데요. 그때 거의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을 알게 되었어요. 눈을 뜨게 된 거였죠. (웃음) 이제까지 봤던 게 전부가 아니었던 거예요. 제가 드 쿠닝 그림을 좋아하는데, 중학교 때 미술책에서 봤을 때는 ‘추상표현주의는 나도 하겠네.’ 하고 넘어갔었거든요.(웃음) 근데 고등학교 들어와서 선생님들의 소개로 드 쿠닝 작품을 다시 접하니까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르게 다가오는 거예요. 초콜릿만 계속 좋다고 먹다가 신선한 굴을 처음 먹어보고 새로운 맛을 알게 되는 것처럼 뻥 뚫리는 부분이 생겼던 거죠. 그때부터 열정이 생겼던 것 같아요.

윤종신_우리나라의 공교육의 수혜자군요. 선생님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작가입니다.(웃음) 그럼 대학에서도 미술을 전공했겠군요?

서원미_네, 서양화요. 근데 대학에 와서는 오히려 좀 더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보려고 했어요. 일부러 설치 작업도 더 많이 해보고,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작업도 더 벌려보고 했어요. 어쨌든 제 그림에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이거든요. 지금도 다양한 걸 계속 해보고 싶어서 시도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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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_저는 서원미 작가를 2013년 12월 <월간 윤종신> 커버 아트 작업 때부터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눈여겨보고 있는 팬이기도 한데요. 계속 유화 작업을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여러 작업 도구 중에서 기름 물감을 쓰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원미_예전에는 아크릴을 더 많이 썼어요. 그런데 기름으로 작품을 해보고 마르는 시간이 있다는 게 마음에 들더라고요. 내가 시간을 컨트롤하면서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더 많은 표현을 할 수 있더라고요. 사실 저는 재료적인 측면보다는 형식적인 측면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어요.

윤종신_형식에 대한 측면이라면, 뭉개져 있는 듯한 스타일을 말하는 건가요?

서원미_네, 맞아요. 구상과 추상을 하나의 화면을 충돌시켜서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작업인데요.

윤종신_그런 형식은 언제부터 시도했던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서원미_고등학교 때는 확실히 사실적으로 그렸고요. 대학에 들어간 다음부터 형식이 달라졌어요.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게 좀 재미없어지더라고요. 부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근데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그리고 그 위에다가 뭉개는 걸 좋아했어요. 약간 파괴적인 건가. (웃음)

이강훈_반달리스트야.(웃음)

“쌓고 부수고를 반복하는 게 제가 요즘 하는 작업인 것 같아요.”

윤종신_이번 달의 주제가 ‘마크 로스코’ 전시회라는 걸 알고 어땠어요? 서원미 작가는 그림을 그려야 했잖아요?

서원미_처음에는 좋았어요. 좋아하는 작가니까요. 그런데 막상 구상을 시작하니까 어렵더라고요. 로스코와 저는 비슷한 구석은 없거든요. 형식도 다르고 소재도 다르고요. 저와는 정반대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그냥 내 식대로 하자고 마음 먹었어요.(웃음)

윤종신_그게 중요한 거야, 내 식대로.

서원미_대신 내 방식대로 하되, 밑바탕에는 로스코의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앞에서도 잠깐 말씀 드렸듯이 유작인 ‘레드’를 보면 로스코의 행위와 힘이 느껴지는데, 밑바탕 작업을 할 때는 형식적으로 유사하게 칠해봤거든요. 과연 그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을지 상상해보면서 작업했죠. 막연하게 그냥 쉬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냥 막 휘두르면 될 것 같아서요.(웃음) 근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윤종신_그 사람이 그냥 휘두르는 게 아니라니까.(웃음)

서원미_‘레드’를 봤을 때의 느꼈던 에너지를 그리되, 그게 설명적이기보다는 각자 해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길 원했어요. 사실적으로 그린 다음에 직관적으로 뭉개는 거죠. 그 안에서 우연적인 효과가 벌어져서 또 다른 형상이 나올 수 있도록 했어요.

윤종신_보통은 내가 완성한 사실적인 형상에 만족하지 않나요? 그걸 다시 부순다는 게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초에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그냥 뭉갤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서원미_구축하는 작업 없이 그냥 해체만도 해봤는데, 저는 재미없더라고요. 탈옥하려면 감옥이 필요한 것과 같은 논리랄까요. 탈출하려고 일부러 스스로를 갇히게 만드는 작업이 저는 재밌어요. 쌓고 부수고를 반복하는 게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인 것 같아요.

윤종신_부수기 위해 쌓는 거군요. 레고 같네요.(웃음)

서원미_그림 그리기 전에 많은 고민을 해요. 구상 단계에 공을 많이 들여요. 하지만 실제로 붓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절대로 계획대로 안 되거든요. 한 번의 터치가 그 다음 터치로 이어지고, 그게 또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가니까 제가 컨트롤할 수가 없어요. 제가 전적으로 지배하는 건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점이 매력적이에요. 오히려 그림이 처음의 구상에서 멀어지면서 망가져버리면,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효과들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내가 만들어냈지만, 내 의도를 벗어나서 완전히 새로운 게 나오는 거죠. 부수고 만들고, 또 부수고 또 만들어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거예요.

윤종신_작업은 언제 많이해요?

서원미_원래는 밤이나 새벽에 많이 했었는데, 작업실이 생긴 다음에는 좀 규칙적으로 작업하려고 하고 있어요.

이강훈_맞아요, 오래하려면 그런 게 필요해요.

윤종신_그래, 그게 좋아. 월간 윤종신도 그렇게 규칙적으로 하거든. (웃음)

오염된 시선, 2015, Oil on canvas, 45.5 x 37.9 cm
오염된 시선, 2015, Oil on canvas, 45.5 x 37.9 cm
Anatomy lesson, 2015, Oil on canvas, 130.3 x 193.9 cm
Anatomy lesson, 2015, Oil on canvas, 130.3 x 193.9 cm
Meet the body, 2015, Oil on canvas, 130.3 x 162.2 cm
Meet the body, 2015, Oil on canvas, 130.3 x 162.2 cm
Unmarked people, 2014, Oil on linen, 130.3 x 193.9 cm
Unmarked people, 2014, Oil on linen, 130.3 x 193.9 cm
Unmarked, 2014, Oil on canvas, 130.3 x 162.2 cm
Unmarked, 2014, Oil on canvas, 130.3 x 162.2 cm

 

 

서원미
성균관대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주로 인물 위주의 페인팅을 하며 팀 작업으로 설치와 영상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부학을 소재로 한 회화적 회화의 형식 실험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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