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혁 “제 작업에서는 저와의 관계와 애정이 제일 중요해요”
‘월간 토크’의 일곱 번째 시간. 이번 달의 주인공은 포토그래퍼 방상혁이다. ‘랑방’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최근 윤종신이 이끄는 아트 에이전시 ‘Monthly A’에 합류했으며, <월간 윤종신> 10월호 ‘기억의 주인’의 앨범 포토를 작업했다. 미술가로만 이루어져 있던 ‘Monthly A’에 합류한 첫 포토그래퍼이기도 하다. 윤종신과 ‘Montly A’의 디렉터 이강훈이 직접 방상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대담은 10월 15일 서울 청담동에서 진행되었다.
“제 작업에서는 저와의 관계와 애정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윤종신_방상혁 작가는 ‘랑방’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활동 중인데요. 이름의 뜻이 뭐예요?
방상혁_뜻은 없어요. ‘랑’자가 예뻐서요. 제가 아이들의 이름을 미리 다 지어놨는데요. 그중 하나가 ‘랑’이에요. 방랑. 방울이도 있고 방글이도 있어요.(웃음)
이강훈_기본 셋은 낳겠다는 거네요.
방상혁_네, 세 명은 낳아야죠.(웃음) 어머니가 제가 사진 찍는 걸 모르셨거든요. 좀 더 인정을 받은 다음에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제 작업에 누드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잖아요. 그래서 다른 이름을 썼어요. 뭐, 어머니가 다 보게 되셨지만요.
윤종신_어떻게요?
방상혁_주변에서 하는 말을 들으신 거죠. 아들이 누드 사진 같은 이상한 걸 찍고 있다. 어머니가 2주 동안 우셨어요. 아무래도 어른이고 보수적이시니까 벗는다는 것 자체를 안 좋게 보시는 거죠. 저랑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마침 그때 제가 갤러리에 사진을 팔았고, 기사가 나왔고, 외국에서도 연락이 오고 해서 인정받고 있다는 걸 보여드렸죠. 이거 정말 이상한 거 아니라고, 저는 제 자신이 안 부끄럽다고 말씀드렸어요.
윤종신_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방상혁_군대 갈 때 사진 세 장을 들고 들어갔어요. 해군이었고, 기초 훈련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때 그 사진들을 보고 정말 큰 힘을 얻었어요.
윤종신_무슨 사진인데요?
방상혁_친구들 사진이었어요. 여자 친구, 여자 친구의 친구, 그리고 남자인 친구. 휴가 나가자마자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사서 사람들 얼굴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찍은 게 1000장도 넘어요. 지금도 집에 다 있어요. 그리고 제대한 다음, 카메라가 생겼어요. 아버지가 쓰던 카메라를 받았거든요. 그때부터 열심히 찍기 시작했죠.
윤종신_그럼 그전에는 하고 싶었던 게 뭐였어요?
방상혁_고등학교 때 미술을 전공했어요. 조소요. 하지만 ‘아, 이거다.’ 하는 느낌은 없었죠.
윤종신_그럼 사진은 ‘아, 이거다.’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방상혁_제대 후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이게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 찍는 거 평생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이후로 계속 제가 좋아하는 것들만 찍었어요.
윤종신_뭘 찍었는데 그런 느낌이 왔어요?
방상혁_여자 친구요.
윤종신_혹시 여자 친구랑 사진 때문에 헤어진 경우는 없었어요?
방상혁_사진 때문은 한 번도 없었어요. 왜냐면 그건 동의 하에 작업한 순수 예술이고, 제가 그걸로 다른 걸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여자 친구가 원치 않을 때는 작업하지 않았고요. 아, 삼 년간 찍었던 걸 나중에 지워달라고 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땐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누드’라고 했을 때의 곱지 않은 시선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해요.
윤종신_누드를 위해 상업적인 모델과 작업해본 적은요? 미술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누드는 대부분 그렇게 작업하잖아요.
방상혁_저 같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어요. 꼭 누드가 아니더라도 제 작업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대부분 저와 가까워요. 여자 친구도 있었고, 뭔가 썸을 타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같이 친한 친구들도 있고요. 찍히고 싶다고 자청하신 분들도 몇 분 있었는데, 그런 경우는 작업하면서 친해졌죠. 제가 그런 분들이랑 잘 맞더라고요.(웃음) 제가 보기보다 부끄럼도 많이 타고 낯도 가리고 해서 처음 본 사람이랑은 작업을 잘 못해요. 잘 모르는 사람도 잘 못 찍고요. 잘 알게 되고 나서 작업해요. 제 작업에서는 저와의 관계와 애정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특히 누드는 그런 저의 신념을 잘 보여주고요.
윤종신_보통 누드 작업하는 분들은 육체 그 자체에 관심이 크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방상혁 작가는 그보다 감정적 교류가 중요한 거군요.
방상혁_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작품이 좋을 수 없어요. 예전에 지나가다가 모델로 마음에 드는 분이 있어서 말을 걸고 찍어본 적이 있는데, 잘 안 나오더라고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단순히 작가와 모델로 만나는 경우는 한 번 이상 작업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윤종신_요즘에도 계속 누드 작업을 하고 있나요?
방상혁_요즘이 제 관심사가 좀 변하는 시기예요. 이전까지는 여성을 중심적으로 담았다면, 요즘에는 다른 것들로 눈을 돌리고 있거든요. 이전까지가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작업이라면, 이후는 조금 반대쪽으로 가보려고 해요.
“저는 제 사진을 다 보여주고 싶어요. 모두 다 봐야 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윤종신_전시회를 열었던 경험이 있나요?
방상혁_아니요, 개인전도 없고 단체전도 없어요. 사진집은 아주 소규모로 개인적으로 낸 적이 있고요. 전시 제안은 몇 번 있었는데 다 거절했어요. 특히 작년에는 한 번쯤 해볼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이다 보니까 흐지부지되더라고요.
윤종신_왜 안 했어요?
방상혁_전시라는 게 그냥 별로더라고요. 처음 본 전시에 대한 기억이 별로 안 좋은 게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강훈_어떤 전시였는데요?
방상혁_그냥 별로인 전시였어요.(웃음) ‘아, 전시회가 이런 건가? 나도 하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죠. 멋지지 않더라고요. 다른 전시도 많이 봤는데,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저는 전시회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 같아요. 연예인이 TV에 나온다든가, 가수가 콘서트를 한다든가 그런 것이잖아요. 근데 기대가 커서 그런지 실망도 컸던 거죠.
이강훈_안일하게 준비하면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방상혁_전시라는 게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작품을 추려야 하잖아요. 근데 저는 제 사진을 다 보여주고 싶거든요. 몇 장만 보는 게 아니라 모두 다 봐야 지금까지의 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이강훈_그건 어떻게 전시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가능하기도 해요. 모니터로 보여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윤종신_이건 저에게는 어떤 문제 제기처럼 들려요. 기존의 전시 방법이 획일적이라는 얘기니까요. 자기를 보여주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틀과 같을 필요는 없어요.
방상혁_저는 홈페이지에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기존의 전시처럼 할 바에는요. 보통 전시하면 아는 사람들이 오고, 친목을 쌓잖아요. 그런 게 너무 싫더라고요. 돈도 없는데 그런 데 돈 쓰고 싶지 않았어요.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하는 게 아니면 하지 말자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아는 곳이 거기 뿐이었을 때는요.(웃음)
이강훈_작년에 ‘스기모토 히로시’의 전시를 보고 팬이 되었거든요. 사진전도 이렇게 멋지게 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달까요. 조명 하나하나를 제대로 쓰더라고요. 사진 자체도 좋았지만, 작가의 의도를 살리면서 작품과 어우러지는 환경을 구현해낸 큐레이팅도 훌륭했거든요. 그 전시를 봤다면 전시에 대한 생각이 또 달라졌을 것 같아요.
방상혁_저도 좋았던 전시 있었어요. 몇 년 전에 ‘카쉬’전은 정말 좋게 봤거든요. 작품이 대단해서 그냥 압도됐죠.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인 거 같아요.(웃음)
이강훈_저는 방상혁 작가가 이전까지의 작업을 모아서 한 번 보여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처럼 관심사가 변하고 있을 때는요. 어떻게 정리해서 아카이빙하고 보여줄지 고민해야죠.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중요해요.
“모자에 깃털이 달려 있건 먼지가 붙어 있건 그건 저한테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건 어떤 느낌이죠.”
윤종신_이번 월간 윤종신 커버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죠. 남자를 모델로 사진을 찍은 건 이번이 처음인가요?
방상혁_처음은 아닌데, 많지는 않아요.
윤종신_홈페이지에도 남자는 본인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남자도 잘 찍던데요.
방상혁_아니에요.(웃음)
윤종신_저는 일단 달라서 좋았어요. 제가 수많은 포토그래퍼들이랑 작업을 해봤는데, 정말 달랐어요. 제가 분명히 제 얼굴각을 알 거든요. 근데 이건 진짜 못 본 각이더라고요.
방상혁_사실 걱정이 많았어요. 남자분들 작업을 거의 안 해봐서 자신도 없었고요.
이강훈_남잔데 옷도 입었고 모자까지 썼잖아요.(웃음)
방상혁_준비도 많이 못 해서 보다 직관적으로 작업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윤종신_그래서 더 좋았어요. 그 직관에서 아티스트의 스타일이 나오니까요.
방상혁_저는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도 모자에 깃털이 달려 있건 먼지가 붙어 있건 그건 저한테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원했던 전체적인 느낌을 내는 게 중요했죠.
이강훈_저는 방상혁 작가가 디테일을 잘 살린다고 봐요. 그 디테일이라는 게 단순히 꼼꼼하고 세밀하게 보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의도한 느낌을 낼 수 있도록 잘 컨트롤하는 걸 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림을 러프하게 그리는 편이지만, 디테일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내가 의도한 것을 해낼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죠.
방상혁_아, 그럼 저도 디테일 한 거네요.(웃음) 그렇다면 기술보다는 감정을 더 증요하게 생각한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게 주가 되는 건 원치 않으니까요.
윤종신_작업에 있어 디테일이라는 게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챙기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아요. 방상혁 작가도 작업하는 도중 뭔가 직관적으로 거슬리는 게 있다면 셔터를 누르지 않았을 거란 말이에요.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렇고 곡을 쓰는 것도 그래요. 자신의 감각 안에서 뭔가 잘못된 게 회로에 걸리면 잘 움직여지지 않죠. 그걸 감지하고 움직이는 게 그 사람만의 디테일인 거죠. 작업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방상혁_잘 정리해주셨네요.(웃음)
윤종신_저는 방상혁 작가의 작업에서 배짱이 느껴져서 좋아요.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뭔가에 꽂혀서 그걸 깊게 파보는 거요. 저희는 어렸을 때 그런 걸 못 해본 거 같아요.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할 때 쓸데없이 눈치만 보면서 시간을 보냈죠. 배짱이 없었어. 내가 그때부터 기타를 배웠으면 우리나라 음악판을 바꿨을 텐데!(웃음)
이강훈_저도 방상혁 작가가 직접 부딪히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에 좋은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런 느낌이 좋아요.
윤종신_앞으로도 앨범 포토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면 할 생각이 있어요?
방상혁_그럼요. 상업적인 작업도 하고 싶어요. 일은 안 가리고 다 해요. 근데 원칙은 있어요. 하고 싶을 때만 해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운이 좋게도 그렇게 했어요.
윤종신_개인 작품으로 돈을 많이 벌면 안 할 거죠?
방상혁_네!(웃음) 개인 작업은 얽매이지 않고 하는 거니까 행복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