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훈 “아이덴티티와 아이덴티티가 충돌하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어요”
‘월간 토크’의 여섯 번째 시간. 이번 달의 주인공은 작가 이강훈이다. ‘Andy KHUN’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올해 초 출범한 ‘Monthly A’의 디렉터이기도 하다. ‘Monthly A’는 윤종신이 참여하고 있는 또 다른 아트 프로젝트이자 아티스트 에이전시로 연말에 열릴 첫 전시회를 통해 공식적인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인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이제 막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개성 넘치는 미술가, 그리고 신생 아티스트 에이전시의 디렉터까지. 이 세 가지 역할을 모두 소화해내고 있는 작가 이강훈을 윤종신이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었다. 이번 대담은 7월 17일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이강훈 작가의 작업실에서 진행되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평생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이 남은 것 같아요.”
윤종신_이강훈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어떤 인터뷰를 보니 300권이 넘는 책 표지 작업을 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이강훈_대충 추산한 거예요. 정확히는 저도 몰라요. 세지는 않았거든요. 책 표지 작업은 2004년부터 했으니까 10년이 넘었는데, 1년에 평균 30권 정도 했다고 계산하니까 그 정도 될 것 같더라고요. 많이 할 때는 더 많이 했고, 안 할 때는 요즘처럼 잘 안 하고요.
윤종신_첫 일러스트 작업이 뭐였어요?
이강훈_‘씨네21’이요.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린 첫 작업이었어요. 99년이었어요.
윤종신_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이었는지 기억해요?
이강훈_그럼요. 특집 기사에 들어가는 그림이었는데, 영사기가 사람 모양으로 그려진 그림이었어요. 그때 그림은 이상해요.(웃음) 그 전에도 일러스트 작업은 했어요. 친구들이 만든 무가지에 들어가는 그림을 무료로 그렸죠.
윤종신_커리어의 시작이 좋은 매체였네요. 일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이강훈_알음알음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 같은 과 출신의 사람들이 그쪽에서 많이 일했거든요. ‘씨네21’은 처음엔 단발성으로 시작한 거였는데, 나중에 고정이 되었죠.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라는 코너였어요. 원래 하시던 분이 임신과 육아 문제로 저한테 넘겨주신 거죠. 그다음엔 한 다리 건너 ‘한겨레 21’에서 그림을 그렸고요. 제가 잘해서 시작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주변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저한테 기회가 온 것 같아요.(웃음)
윤종신_일을 잘했으니까 계속 의뢰가 들어온 거 아닐까요?
이강훈_그렇겠죠. 일이 계속 이어졌던 건 저에게 장점이 있다는 얘기일테니까요.
윤종신_일러스트레이터로서 본인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이강훈_편집자들이 이야기하는 제 장점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마감을 잘 지킨다는 거예요. 마감 30분 전에 원고 던져주어도 열심히 맞춰서 해줬거든요.(웃음) 그리고 두 번째는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그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예쁘게 그리는 게 아니라 기사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림으로 잘 풀어낸다는 게 편집자들의 평가였고, 그래서 소문이 좀 났던 것 같아요.
윤종신_얘기를 들어보니 일을 얼떨결에 하게 된 것 같네요.
이강훈_솔직히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직후니까 스물 여덟이었는데, 그냥 먹고 살 만큼만 아르바이트하면서 살고 있었거든요. 일러스트에 특별히 뜻을 두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시작하고 몇 년 동안은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일러스트레이터라고도 안 했어요.
윤종신_그럼 따로 하고 싶은 게 있었던 건가요?
이강훈_그때는 정말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윤종신_그림도요?
이강훈_그림 그리는 건 원래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학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대를 갔고요. 근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까 그림 그리는 것보다 재밌는 게 많은 거예요. 영화도 재미있고, 연극도 재미있고. 그래서 이것저것 다해봤어요. 대학 다닐 때는 연극을 가장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미대 연극 동아리였어요. 연기보다는 연출에 관심 있는 쪽이었는데, 어쨌든 연출도 했고, 배우도 했죠. 몇 번 오디션도 보러 다녔어요.(웃음)
윤종신_오디션도 봤다고요?(웃음)
이강훈_연기는 정말 못했어요.(웃음) 하지만 정말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 큰 매력을 느낀 거였죠. 그때도 몸치고, 지금도 몸치인데, 잘하는 걸 떠나서 무대에서 몸으로 표현한다는 게 굉장한 희열이 있었어요. 아마 지금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맥락은 닿아있다고 생각해요. 방식은 다르지만 내가 움직여서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나한테 없는 무형의 뭔가를 만드는 게 흥미로웠어요. 다 지나간 얘기니까 하는 거예요. 졸업할 때쯤 접었으니까요.(웃음)
윤종신_왜 접었어요?
이강훈_음,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내 성격이랑 안 맞는다는 걸 알았어요.
윤종신_이강훈 작가는 사람도 좋아하고 발도 넓잖아요. 얼핏 생각해보면 여럿이 하는 작업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이강훈_사람을 좋아하지만, 작업하는 건 또 다르니까요. 그 당시에는 함께 뭔가를 한다는 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고요. 졸업할 때쯤에도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무작정 나는 혼자서 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보다도 평생 할 수 있는 것,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이 남게 되었고요.”
“당장 쓸모는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아서 영향을 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은 거죠.”
윤종신_지금은 일러스트 작업을 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이강훈_‘한겨레 21’만 하고 있어요. 매체에 대한 신뢰와 정 때문에요. 오퍼가 오지만 잘 안 해요.
윤종신_이유가 있나요?
이강훈_돈을 벌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저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데에 집중하기 위해서죠. 정말 돈 안 되는 그림만 그리고 있어요.(웃음) 한때는 하루하루가 마감이었어요. 고정으로 하는 작업이 9개일 때도 있었죠.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다 해서요. 항상 초치기로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너무 지쳤고, 일이 재미없어졌어요. 열심히 한 덕분에 나름 잘 먹고 살았는데, 그 생활의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느낌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했어요. 아마 그때가 여행 중이었을 거예요. ‘어렸을 때는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좋아서 그림을 그렸는데, 왜 지금은 돈을 받지 않으면 그리지 않는 걸까? 그림이 나한테 무엇일까?’ 저는 시작부터 돈을 벌기 위한 그림을 그렸고, 그게 내 안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거예요.
윤종신_처음부터 프로였구나.(웃음)
이강훈_그때 제가 처음 그렸던, 아마도 네다섯 살 때쯤 그렸던 그 그림이 기억나면서 그때처럼 그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돈 버는 것과 상관없이 하루에 낙서 한 장이라도 좋으니까 나를 위한 그림을 그려보자고 결심했어요. 그게 2013년 2월부터 시작된 데일리 드로잉 프로젝트이고요.
윤종신_벌써 2년이 넘도록 지속하고 있죠? 이강훈 작가가 SNS에 업로드하는 데일리 드로잉을 보면 참 자연스럽다는 느낌입니다. 일부러 힘을 빼고 그리는 건지 되게 쉽게 그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왜 보통의 작가들은 잘 보이겠다는 생각으로 공개하는 작품에 일부러 힘을 주지 않습니까?
이강훈_철저하게 나를 위해 그린 그림들이어서 그런 거 같아요. 처음부터 누가 어떻게 봐줄까 하는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고 계속 포스팅했어요. 보는 사람들의 눈치는 보지 않겠다고 못 박아놓고 진행하는 거죠. 덕분에 예전에 예쁜 그림을 그릴 때 저를 좋아해 줬던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어요. 지금 그림은 불편하다는 코멘트도 받은 적 있고요.(웃음)
윤종신_어떻게 보면 <월간 윤종신>과 작업 태도나 모토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보는 이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다가는 망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대중의 반응을 애써 외면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것이겠지만, 그것에 연연하기보다는 묵묵히 제 갈길을 가다 보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믿는 게 중요한 거죠. 쌓아가는 게 중요한 작업인데, 단기간에 결과가 나올 리 없잖아요. 정말 외롭고 힘든, 갈등이 많은 프로젝트라는 걸 요즘 더 느껴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가승은 산에 있고, 진승은 현세에 있다’라는 말이 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부딪히고 갈등하는 사람들이 발전한다는 얘기거든요. 답이 보이지 않아도 해야 해요.
이강훈_어렸을 때 좋아했던 동화책 하나가 떠오르는데요. ‘프레드릭’이라는 제목의 작품인데, 어떤 생쥐가 주인공이거든요. 이 생쥐는 다른 생쥐들이 겨울철을 나기 위해 열심히 식량을 준비하는 순간에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우두커니 햇빛을 모으고 있거나, 들판의 꽃에서 색깔을 모으고 있는 거죠. 겨울이 되고 모아둔 식량이 모두 바닥나버리자, 다른 생쥐들이 주인공 생쥐한테 네가 여름 내내 열심히 모은 걸 보여달라고 해요. 그때 주인공 생쥐가 여름의 햇살에 대한 시를 읊고, 꽃밭의 색깔에 대한 시를 읊어요. 그러자 모두가 눈을 감고 그 시를 감상한 다음, 넌 정말 대단한 걸 모았다면서 고마워하죠. 그때 어린 마음이었는데도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나는 이런 삶을 원했던 사람인 거였어요. 당장 쓸모는 없어 보일지 몰라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아서 영향을 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은 거죠.
윤종신_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이강훈_캔버스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좀 재미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다른 매체가 뭐가 있을까 생각 중이에요. 처음엔 탁자나 의자에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싶었는데, 그냥 거기에 그림을 그리는 건 또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여러 사물들로 눈을 돌리고 있어요. 사물의 성격을 초상화처럼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이번 <월간 윤종신> 앨범 커버 작업도 그것 중 하나인데, 맥주 캔에다가 로얄 살루트 로고를 넣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아이덴티티와는 전혀 다른, 아이덴티티와 아이덴티티가 서로 충돌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윤종신_그동안 보여줬던 동물적이면서도 원시적인 느낌의 스타일과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네요.
이강훈_그동안 사람의 신체에 포커스를 맞춰서 작업했는데, 생각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떤 매체를 이용하든 신체로 표현해 이야기하는 것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기존의 작업들도 계속 한 축으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고 싶은 작업을 계속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죠.”
윤종신_‘Monthly A’를 시작한 지 이제 반년이 되었습니다. 올 초 ‘Monthly A’라는 걸 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아직 이것이 어떤 조직인지 정의내릴 수 없다고 이야기했고, 시간을 들여서 함께 만들어가자고 했었죠. 어떻습니까? 반년 동안 뭔가 달라진 게 있을까요?
이강훈_글쎄요. 변화라면 조금 더 조직화가 되었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아직도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겉으로 드러난 게 없는 상태라서. 11월에 첫 전시 겸 파티를 열 예정인데, 거기서 보여주는 것에서 아마도 우리의 정체성이 드러나겠죠. 구체적인 건 아직도 없어요. 심지어 이름도 바뀔 수 있고요.(웃음)
윤종신_이강훈 작가가 ‘Monthly A’를 통해서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요?
이강훈_하고 싶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까 함께 하고 싶은 것이고요. 회사 쪽에서는 우리의 작업물로 비지니스를 하고, 작가들은 그걸 기반으로 다시 자기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런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인 거죠.
윤종신_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는 후배들을 위해 먼저 길을 닦는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웃음)
이강훈_그런 건 아닙니다.(웃음) 환경을 만들어야 나도 그 안에 잘 살 수 있으니까요. 살아보니까 나만 잘되는 방법은 없더라고요.(웃음) 일러스트 작업도 하고 파인아트 작업도 하는 친구들, 그러니까 제도권 미술판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고 싶지도 않은, 굉장히 멋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설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윤종신_제도권 미술이 아닌 미술은 조명받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인가요?
이강훈_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친한 화가 분이 저를 다른 분한테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처음 뵙는 분이 저에게 “작가세요?”라고 묻자, 저와 친한 화가 분이 “아, 얘는 작가 아니야. 일러스트레이터야.”라고 하더라고요.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요. 그게 사실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분위기인 거죠. 저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닌 파인 아트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굳이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냥 난 일러스트도 하고, 내 작업도 하는 사람인 거죠. 일러스트레이터냐 파인 아트 작가냐 하는 고루한 분류법에 왜 당연한 것처럼 끼어야 하나 싶은 거예요. 물론 일러스트보다 파인 아트가 취향적으로 우월하다는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고요. 그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고 나 자신으로서 나를 표현하는 작가들이 이 땅에는 분명히 존재하고, 저는 그들이 주목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윤종신_그 시스템을 만드는 데 왜 저와 함께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강훈_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저희의 작업과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인프라가 만났을 때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는 게 그중 하나입니다. 현재 한국의 엔터테인먼트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루트를 따라 미술도 얼마든지 진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제도권 미술의 경우는 오히려 국적이 한계로 작용할 때도 있는 데 반해, 제도권 밖의 미술은 더 자유롭고 유연하므로 재미있는 형태로의 발전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가능성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먼저 본 것이고. 저희의 작업도 외국의 대중들과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겁니다. 개인으로는 불가능한 일인데, ‘Monthly A’로는 가능해지는 것이죠.
윤종신_현재 ‘Monthly A’에 소속된 작가는 올 상반기 <월간 윤종신>의 앨범 아트 작업을 했고, 이 코너를 통해 한 사람씩 소개가 된 바 있습니다. 소속 작가는 이강훈 작가가 직접 선발한 것인데, 어떤 기준이 있었나요?
이강훈_일단은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은 것이죠. 사실 굉장히 주관적으로 모은 것인데, 제도권의 물이 들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강렬한 작업을 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제안했어요. 에너지가 있는 친구들이요. 이 친구들이 곧 ‘Monthly A’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윤종신_‘Monthly A’의 일원이 되면 뭐가 좋은가요?
이강훈_아직 모르겠어요. 전시를 해보고 결과가 나와야 명확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형태로는 막막한 상황에서 약간 가능성을 보는 수준이라서.(웃음)
윤종신_지금 ‘Monthly A’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강훈_가장 필요한 건 좋은 작품이겠죠. 아무리 시스템을 만들어놓아도 내용물이 부실하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어디에도 내놓지 못하겠죠. 우리가 좋은 작품은 선보여야 다른 좋은 작가들도 관심을 가질 테고, 대중들도 관심을 가지겠죠. 그래야 우리와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수 있을 거고요. 제가 디렉터로서 말발이 먹히려면 일단 저부터 좋은 작품을 완성해야 해요.(웃음) 아직은 모든 게 계획뿐이어서, 너무 많은 얘기를 하는 게 의미가 없게 느껴지겠다 싶기도 한데요. 일단은 11월로 계획되어 있는 저희의 첫 전시회를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1973년생.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했다. 페인터,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이며 본명 외에 Andy KHUN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 중이다. 책과 잡지, 온라인 등 다양한 매체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틈틈이 이야기를 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청춘의 독서>, <대책없이 해피엔딩>, <독신남 이야기>, <열외인종잔혹사>, <라틴소울>, <1리터의 눈물>, <고령화가족>,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등 300여 권의 단행본에 그림을 그렸고, 온라인 서점 yes24에 천명관 작가와 함께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매거진 BRUT에 <도시생물도감>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 <도쿄펄프픽션>, <나의 지중해식 인사>, <반칙의 제국> 등이 있다.
2013년부터 <월간 윤종신> 아트콜라보 프로젝트의 총괄 기획자 및 작가로 촬동 중이며, 2015년부터는 ‘Monthly A’의 디렉터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