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민 “분노를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표현해요”
‘월간 토크’의 다섯 번째 시간. 이번 달의 주인공은 작가 이홍민이다. 이홍민 작가는 ‘Monthly A’가 소개하는 다섯 번째 전속 작가로 2014년 11월 한 달간 Cafe LOB에서 전시를 진행하며 <월간 윤종신>의 구독자와 만난 적이 있다. ‘분노’라는 감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자신만의 과장된 스타일로 표현해내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 대담은 5월 20일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서 진행되었다.
“제 안에 어떤 분노가 있었는데, 그걸 끄집어내서 바라보고 싶었어요.”
윤종신_오늘의 주인공인 이홍민 작가는 최근에 개인전을 열기도 했는데요. 저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습니다. 전시가 언제 끝났죠?
이강훈_4월 5일이요.
윤종신_언제 그린 작품들이 전시된 건가요?
이홍민_올 초에 그린 작품들이었어요. 전시 제목은 ‘결혼(結婚)’이었고요.
윤종신_결혼?
이홍민_한자가 좀 달라요. ‘혼’자는 그대로인데, ‘결’자가 이지러질 ‘결’자거든요. ‘결근하다’할 때 그 ‘결’자예요.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냈던 거죠.
윤종신_혹시 뭐… 이혼 경력이 있으시거나… (웃음)
이홍민_아니요,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웃음)
윤종신_어떻게 정해진 테마인지 궁금하네요.
이홍민_저는 계속 분노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해오고 있는데요. 그걸 잘 드러낼 수 있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했어요. 결혼에 대해 두려운 지점이 있거든요. 요즘 ‘3포 세대’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라고요. 윗세대에서는 이런 상황을 보고 젊은이들이 의지가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어요. 그분들은 단칸방에 살면서도 결혼하셨으니까요. 근데 대부분이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상황상 힘들어서 유예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그 안에서 느끼는 부담과 힘겨움과 고통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윤종신_누가 결혼에 부담을 주었나요? (웃음)
이홍민_그런 건 아니에요.(웃음) 아무래도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말하기 힘든 주제일 것 같단 생각에 시작한 거였어요. 결혼하면 또 쉽게 말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마침 요즘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이 없어서 작업이 가능하기도 했어요. 주변에서 결혼하는데 이런 주제로 작품을 선보이면, 자칫 그 결혼을 축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웃음)
윤종신_언제부터 분노와 고통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홍민_2011년부터요. 그전에도 파편적으로 그린 적은 있었지만, 집중한 건 2011년이죠. 막 제대했을 때였어요. 그때가 제일 힘들었거든요. 막막했어요. 제가 군입대가 되게 늦기도 했고, 군대에서 여자친구랑 헤어지기도 했고요.(웃음) 제 안에 어떤 분노가 있었는데, 그걸 끄집어내어서 바라보고 싶었어요. ‘난 왜 이렇게 화가 나지? 화가 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작품으로 찾아보고 싶었죠. 그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리고 그렇게 작업을 하다가 평생 이 주제로 얘기를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이게 저만의 감정이 아니라 제 세대가 공감하고, 세대를 넘어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작품으로 표현하다 보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있어요. 제 안의 분노가 곪지 않고 배출되는 거죠.
윤종신_항상 분노한 상태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홍민_물론이에요. 항상 그릴 때마다 분노하진 않아요.(웃음) 화가 나는 순간에 그린 그림은 확실히 다르긴 해요. 분노가 확연히 드러나거든요. 근데 그런 작품은 망치기 쉬워요. 감정과 어느 정도 거리가 생겼을 때 작품으로 옮기죠. 분노라는 감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강훈_효율적이네요. 마음 속의 화를 끄집어내면 심신에도 도움이 될 테고, 잘 표현하면 작품으로도 남는 거잖아요. 지혜롭다. (웃음)
윤종신_보통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요?
이홍민_대중없어요.(웃음) 인터넷으로 보는 이미지가 많은 듯해요. 사진이나 패션 같은 저와 직접 상관없는 분야에서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훌륭한 것들이 정말 많잖아요.
“더 유치하고 노골적이어도 좋으니 제가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윤종신_이홍민 작가의 작품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게 등장하는 인물들이 비슷해 보여요. 그게 실제로 같은 인물이든 다른 인물이든, 표피를 걷어낸 상태의 근육을 부각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홍민_우리가 부끄럽거나 화가 나면 근육이 움직이잖아요. 피부에 감춰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요. 저는 그걸 더 드러내고 싶었어요. 눈에는 안 보이지만 의식으로는 알고 있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인물을 그린다는 게 그 사람의 시각과 생각을 드러내는 것인데, 저는 과장된 근육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지요.
윤종신_자기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느낌이 강한 작가이기도 해요.
이홍민_작품에는 그린 사람이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강훈_그림을 그린다는 게 자기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으로 찾는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눈이 필요하고요.
윤종신_과장된 느낌에서 만화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해요.
이홍민_맞아요, 만화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장 큰 자극을 준 건 만화였어요. 전혀 없는 걸 만들어내니까요. 일상에서 탈피할 수 있는 상상이 가능하니까요. 대학에서 전공도 애니메이션이었어요.
윤종신_특히 어떤 작품에 영향을 받았어요?
이홍민_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고. 야마다 요시히로의 <극한의 별>과 <데카슬론>에서도 영향을 받았어요. 그 작가의 작품은 과장이 너무 심하거든요. 아, <드래곤볼>도요. 인물들이 날아다니는 무공술을 하는데, 그게 바닥을 스치면서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표현되어 있거든요. 충격적이었어요. 보통 만화 그림체라는 게 과장적이잖아요. 70년대에 만들어진 어떤 테니스 소재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라켓에서 막 땀이 흘러요. 땀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면서 빛나죠.(웃음) 정말 매력적이에요.
윤종신_지금의 스타일처럼 과장되게 그린 건 언제부터예요?
이홍민_2년 정도 되었어요. 예전에는 사실적으로 그렸어요. 하지만 나한테 가장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이런 스타일을 찾게 된 거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은 거예요. 물론 지금의 스타일이 자리를 잡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언젠가 한 번은 제가 고급스러워 보이기 위해 스스로 검열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이것저것 따지면서 제하다 보니, 그냥 유치하고 촌스러운 만화 이미지가 나온 적도 있고요. 더 유치하고 노골적이어도 좋으니 제가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윤종신_스스로 검열을 했다는 말이 인상적인데, 혹시 누가 이렇게 그리면 안 된다고 한 적이 있어요?
이홍민_주변에 작업하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아무래도 서로 치열하게 냉정하게 크리틱을 하죠. ‘그거 네꺼 아니야. 어디서 가져온 거 같아.’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어요. 멘탈이 약할 때는 그런 얘기에 기가 눌려서 손을 놓아버리기도 했죠. 실제로 베꼈다고 볼 수 있었을 때도 있었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쓴 적도 있었고, 다 피해가려다 보니까 작품이 앙상해진 적도 있었어요. 저는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부정적이게 보지 않아요. 그게 작품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니까요.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이강훈_누구나 영향을 받죠. 누구에게도 영향 받지 않는 작품을 만드는 건 창작자로서의 판타지 같은 거죠.
이홍민_지금은 아주 편하게 그려요.(웃음)
윤종신_주변 사람들의 코멘트가 덜 중요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할까요?
이홍민_아녜요, 지금도 중요해요. 지금도 피드백 받을 때는 긴장하죠. 하지만 이제는 ‘네꺼 아니야’라는 평은 없어요. 그 시기는 지난 거 같아요.(웃음) 지금은 얼마나 잘 표현했느냐를 이야기하고, 감상자 개인의 호불호를 이야기하죠. 오히려 요즘에는 ‘넌 이렇게 해야 돼!’라는 충고가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작업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죠. 그런 이야기들이 또 제게 영향을 끼치고요. 최근에 어떤 작가님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빛과 대상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실적인 작품을 그리시는 분이라 제 작품 세계와는 큰 연결고리가 없지만, 새삼 관찰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죠.
윤종신_귀가 열려 있는 작가였군요. 그림만 보면 엄청 고집스러워 보이는데.(웃음)
이홍민_열심히 들으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걸러요. 20퍼센트만 반영하는 것 같아요. 공감하는 것과 내 작업에 반영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요.
윤종신_정말 남한테 충고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결국엔 그것도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저는 그런 얘기를 줄여야지, 하고 의식하고 있어요. 애정과 충심에서 나와도 충고라는 게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으니까요.
이강훈_어떤 얘기를 듣던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으면 되죠.
“내 작업이 최고라는 정신승리가 필요해요! 창작자에게는 자기애가 있어야 해요.”
윤종신_‘구포브라더스(Gooforbrothers)’라는 팀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죠?
이홍민_딱 2년 되었네요. ‘구포브라더스’로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그전까지는 작품 내적인 접근만 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보여줄지, 또 어떻게 움직일지도 생각하죠. 그런 태도가 다시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윤종신_팀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홍민_‘구포브라더스’가 저까지 포함해서 3명인데요. 제가 막내예요. 제가 침체되어 있을 때, 형들이 같이 해보자면서 제안해주셨어요. 사람 살린다는 느낌으로 끄집어내 준 거죠.(웃음)
이강훈_그럼 여자 친구를 소개해줘야지.(웃음)
이홍민_뭐, 그것도 여러 번 해주셨지만……(웃음)
윤종신_‘구포브라더스’로 여러 상업적인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에도 많이 참여한 것 같아요.
이홍민_네, 저는 상업적인 프로젝트에 큰 거부감은 없어요. 재밌는 작업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많거든요. 사실 저는 팀 내에서 태클을 거는 역할이에요. 제가 급류에 휩쓸리듯 작업을 못 하는 성격이어서 제안이 들어오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반문하죠. 다른 두 분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하고 싶은 것도 더 많아요. 작업 얘기를 할 때면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요.
윤종신_그런 거엔 나이가 없어.(웃음) 오히려 나이가 있으니까 더 대담해지기도 해요. 경험치가 쌓였잖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이익이라는 걸 아는 거죠. 젊었을 때 조심스러워서 못했던 걸 후회하면서 더 열심히 하는 거죠. 저도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기도 하고요.(웃음) 이번 <월간 윤종신> 커버 아트 작업은 어땠어요?
이홍민_처음에 아트 디렉터이신 이강훈 작가님께 혹시 제한 사항 같은 게 있는지 여쭤봤어요. 근데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 마음껏 작업하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이강훈_근데 중간에 한번 방향 조정을 했죠. 난 내 역할을 한 거야.(웃음)
이홍민_지금 버전이 저도 좋아요. 이번에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넉넉한 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한 장을 그리기 위해서 스케치를 많이 했어요. 영화를 보고 키워드도 정리해봤고요. 그림을 직접 그리는 시간만큼이나 생각할 수 있는 잉여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기는 편이라서 정말 좋았어요.
윤종신_본인의 작업에 만족하나요? 최근 본인의 작업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점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이홍민_저는 보통은 제 작업이 너무 좋아요.(웃음) 스케치를 할 때도 좋고, 완성된 다음에도 좋아요. 내 작업이 최고라고 정신승리를 하는 거죠. 저한테 최근에 가장 중요한 말이 ‘정신승리’예요. 그런 마음가짐이 없으면 힘들 거든요. 물론 작업 도중에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부족한 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걸 마냥 들여다보면 에너지가 깎여요. 힘이 빠지면서 그림을 망치거든요. 전시하기 직전에,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직전에는 괴롭죠. 아쉬운 게 다 보이기 시작하니까요.(웃음) 현실을 직시하면, 내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힘들어지기 때문에 작품만 바라보려고 노력해요.
윤종신_나도 그래요. 나도 마이클 잭슨보다 내가 곡을 못 쓴다고 생각 안 해요.(웃음) 인기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내 곡은 내가 제일 잘 쓰는 거잖아요. 이홍민 작가 그림은 이홍민 작가가 제일 잘 그리고.
이강훈_정신승리!
이홍민_맞아요, 그게 정말 필요해요. 창작자는 자기애가 있어야 해요!(웃음)
‘GOOFOR BROTHERS’라는 아트팀에서 활동 중인 이홍민은 고통과 분노를 주제로 삼아 그것을 반복적으로 파헤치는, 에너지 넘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과 힘줄을 두드러지게 표현하여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긴 막연한 공포와 불안을 전한다.
Exhibitions
– FIFTYFIFTY Goo For Brothers X Rukkit Exhibition ‘GOORU’ 2014
– Seoul Museum of Art 2014 “Lunch box” project. 50 monsters. 2014
– TKO. Thailand THAI / KOREA – HOF ART Gallery in Bangkok. 2014
– Everyday mooonday ‘triangle YETI’ GooForBrothers. 2014
– i SPACE GALLERY – Solo Exhibitions 2015
project
– GOOGOR BROTHERS X SEOULMONZ 2013. Wood Toy Collaboration
– Ashcroft X GooFor Brothers: ROGAN Collaboration
– Goo For Brothers custom Behemoth Illustrations
– GOOGOR BROTHERS x Tanin Tumth (KRUZZILLA)Collaboration
– Goo For Brothers X TOINZ Ceramic Bowl Set Collaboration
– GooForBrothers x Playmonster Jacket Collaboration
– GooForBrothers x MOMOT ART PaperToy Collabo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