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최유월

하루는 시작되자마자 가장 짙은 어둠을 만난다. 출발과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풍경이다. 하루가 왜 어둠 속에서 시작되는지, 시작되자마자 하루 중 가장 짙은 어둠을 만나는지, 그 어둠이 어떻게 찬란하게 물드는지, 그 찬란함이 어떻게 사위는지 나는 안다. 알면서도 어리둥절할 뿐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잠들어 있어도 깨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 교하 씨와 나는 산을 올랐다. 침묵을 무심하다 느끼지 않은 건 틈틈이 나를 살피는 눈길 때문이었다. 힘들다고 투정 부려도 도와주지 않을 거예요. 산 아래서 교하 씨는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산행이라고 하기에도 멋쩍은 동네 뒷산이었다. 그러나 밤은 얕은 오르막길을 낭떠러지로 변모시켰고, 우리는 부실한 핸드폰 조명에 의지해 한 치 앞만 내다보며 발을 디뎠다. 어둠을 헤치면서도 교하 씨는 내가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그 시선을 받는 동안은 무사한 기분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굽은 등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이렇게나 오래 본 적이 있던가. 매일 보던 얼굴이 뒷모습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쪽이에요?”
비슷해 보이는 갈림길을 두고 교하 씨는 걸음을 멈췄다. 스무 살 무렵에 나는 친구와 술에 취해 이 산을 올랐다. 취기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올라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으나 정상에서 본 것만은 선명했다. 폐쇄된 상태로 방치된 관측소는 높이가 3미터밖에 되지 않아 과연 무엇을 관측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시설이었다. 친구와 나는 가볍게 자물쇠와 경고문을 넘어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원통형 건물의 꼭대기에 서자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둘레길 너머가 보였다. 고작 시점이 조금 올라갔을 뿐인데 시야를 가로막는 나무들이 사라지자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상기된 채로 내려오다 구르는 바람에 나는 생애 처음 깁스를 했다.
“어느 쪽으론 가든 정상에 닿지 않을까요?”
나는 등산객들의 자취가 적은 쪽을 가리켰다. 어떤 선택이 안전한지 모르지 않았다. 다만 안전은 선택의 기준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생과 불편을 겪을 때가 많았고 후회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다시금 다른 선택을 했다. 친구들이 생각하듯 낙관이나 긍정은 아니었다.
그날도 교하 씨와 나는 끊어진 길을 맞닥트렸다. 왔던 길로 돌아가 선행자들을 따랐다면 정상에 도달했겠지만, 그대로 평평한 바위와 나무 밑동에 눌러앉았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어요.”
교하 씨는 보라색 배낭에서 보온병과 초콜릿을 꺼내며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온기가 남은 커피를 머금으며 열네 살 이후 정상을 꿈꿔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삶을 상상했다. 럼과 오렌지 제스트가 들어간 초콜릿은 시큼하고 씁쓸했다.
그즈음 교하 씨와 나는 각자 가장 힘들었던 경험을 같이한 뒤에 연인이 될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다고 우리가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었지만. 앞으로 닥칠 일들에 각오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내가 자정의 산행을 고집한 건 그러한 이유였다. 그보다 힘든 경험이 여럿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건 그게 유일했으므로.
“나는 그걸 노주라고 불러요.”
나는 교하 씨에게 정상에서 본 관측소를 설명했다. 겉으로 드러난 기둥이라는 의미의 ‘노주’(露柱)는 수학여행으로 간 금산사에서 본 보물의 이름이었다. 지붕 없이 덩그러니 놓인 기둥에는 용도를 알 수 없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고심 끝에 그렇게 적을 수밖에 없었을 해설사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그 솔직함이 사랑스러웠다. “정말이지 곤란했겠어요.” 드물게 소리 내어 웃는 교하 씨의 모습은 보다 좋았다.
“춥네요.”
“더 추워질 거예요. 동틀 무렵이 제일 춥다잖아요.”
산을 오르는 내내 들었던 정체 모를 기척과 바람 소리, 경고처럼 들리는 산새들의 울음은 곧 도래할 결과를 예언하듯 불길했다. 예언대로 우리는 가고자 했던 곳에 이르지 못했고 아직 서막에 불과하다는 듯 그 소리는 여전히 주위를 맴돌았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으나 불행하진 않았다. 목적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함께 있는데. 교하 씨와 나는 소박한 이들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언제부턴가 노주를 떠올리면 기분이 조금 묘해진 까닭은 ‘이슬 노’(露)의 다른 의미를 알게 되면서였다. 진액, 좋은 술, 젖다… 사전에 나온 열두 개의 의미 중 마지막은 ‘허물어지다’였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우려했던 일 때문이 아니었다. 연인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많은 일을 하며 많은 날을 지나는 동안 인파에 떠밀리듯 곁에 있던 사람을 놓쳐버렸다.
이년 간 수없이 본 얼굴보다 그날 밤 교하 씨의 뒷모습이 선명한 건 왜일까. 그날을 회상하며 발견한 건 당시에는 있는지 몰랐던 빛이었다. 눈을 멀게 혹은 찌푸리게 만드는 한낮과 달리 미미해서 붙잡고 싶은 빛, 빛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 어스름한 기운. 그 빛을 따라 나는 가쁜 숨을 뱉으며 산길을 올랐다. 미미해서 붙잡고 싶은 빛이었다. 어느새 교하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빛에 정신이 팔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더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더욱 선명히 보기 위해서. 그 빛을 보고 있으면 꿈속에서도 깨어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침.
단지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매일 암흑 같은 시간을 통과한 세상이 무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