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최유월

커다란 개가 낑낑거리는 소리 때문에 그는 잠에서 깬다. 그도 알고 있다. 커다란 개도 참을만큼 참았다는 걸. 커다란 개는 지난 이틀 동안 밖으로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그래선 안되었다. 그런 식으로 취급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하지만…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선풍기를 켠 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커튼을 걷는다. 갑자기 여름의 햇살이 집-겸 사무실-안으로 쏟아진다. 개가 벌떡 일어나서 월!월! 하고 짖는다. 그는 개를 한번 바라본다. 개는 앞발만 세우고 서서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혀를 내밀고 있다. 그는 생각한다. 나는 저 개의 이름도 모르는 걸. 삼년 전에 한 여자가 그에게 자신의 커다란 개를 맡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주저없이 알았다고 했었다. 당신의 개를 데리러 올 때, 그 때, 개의 이름을 알려주세요. 이게 그때 그가 한 말이었다. 여자는 그 후로 한번도 그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가끔 아무런 내용도, 수신인도 적히지 않은 엽서가 그의 편지함에 꽃혀 있을 때가 있긴 있었다. 그의 주소와 이름만 덩그라니 적혀 있는. 그는 그걸 그 여자가 보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는 고개를 흔들면서도 그 엽서들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책상 가장 아랫칸에 그것들을 넣어두고 열쇠로 잠가두었다. 마지막 엽서가 온 건 팔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개를 보며 생각한다. 저 개는 내 개가 아니잖아. 그는 커튼을 치고 침대로 기어들어간다. 주위는 다시 어두워지고, 개는 잠시 동안 낑낑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누워버린다.
어둠 속에서 그는 이틀 전에 왔던 의뢰인에 대해 생각한다. 의뢰인은 삼심대 후반의 여자였다. 여름인데도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단발 머리에 입술에는 붉은 루즈를 바르고 있었다.
“당신이 분실물 찾기의 대가라면서요.”
의뢰인은 커다란 개를 봤지만 사무실을 방문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과는 달리 개의 이름을 물어 보지는 않았다.
“나는 아침 7시를 잃어버렸어요.”
의뢰인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별로 댱황스럽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는 온갖 분실물이 있으니까. 그는 그저 자세하게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갑자기 깨닫게 된 거예요. 어느날 정신을 차렸을 때, 아, 내가 아침 7시를 잃어버렸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는 의뢰인이 덥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의 사무실(겸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고물 선풍기만 털털털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아침이었죠. 문득 잠에서 깨서 시계를 보니까 6시 45분이었어요. 나는 시계를 보며 내 자신에게 약속을 했어요. 일곱시 정각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자고요. 그러고 나서 나는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시계는 7시 1분이더군요. 아니요. 정신을 딴 곳에 둔 게 아니에요. 그건 맹세할 수가 있어요. 어쨌든 그날 나는 하루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고, 결국 출근을 할 수도 없었어요. 왜냐고요? 일곱시 정각에 일어나려고 했는데, 난 일곱시 정각을 잃어버렸으니까요.”
그는 그런 일이 또 있었느냐고 물었다.
“네, 거의 매일 매일 그런 일이 일어나요. 나는 아침 6시 45분에 눈을 뜨고 그리고 일곱시에는 꼭 침대에서 나가자고 생각하죠. 그리고 계속 시계를 바라보고 있어요. 분명히 6시 59분까지 시간을 확인했다고 생각하는데, 어쩐지 정신을 차려보면 7시 1분이거나, 7시 2분이거나 최악일 때는 7시 15분일 때도 있어요. 물론 첫날처럼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지는 않아요. 회사를 나가야 하니까요.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회사에 거의 매일 지각을 해요. 언제나 정신도 멍하죠. 다음날 아침에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고 생각하면…”
“끔찍한가요?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이?”
그는 자신이 던진 질문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는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아니요. 끔찍한 게 아니에요. 그냥…나는 마음이 아픈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침 7시가 내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걸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그게 내게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져요. 미칠 것 같이 마음이 아파요.”
그 날, 의뢰인은 한 시간 정도 더 머물다가 돌아갔다. 그 한 시간 동안 그는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의뢰인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의뢰인은 말을 하다가 가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고, 붉은 루즈가 이에 보기 싫게 번져버렸다. 그는 의뢰인이 나가기 전에 거울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침대 옆 러그 위에 누워 있는 커다란 개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몇시일까? 시계는 보지 않는다. 낮 두 시일수도 있고, 오전 열한 시일수도, 어쩌면 겨우 아침 일곱 시밖에 안 되었을 수도 있다. 여름의 해는 빨리 뜨고 빨리 뜨거워지니까. 시간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나는 아침 일곱시를 잃어버렸어요. 그는 자신이 그런 것을 잃어버릴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내가 낮 두시를, 오전 열한시를, 아침 일곱시를 잃어버릴 수 있을까? 그는 어쩌면 자기 자신이 이미 새벽 3시 9분-혹은 4시 15분 혹은 21시 13분 등등-을 이미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자신이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라고. 만약 그걸 깨닫게 된다면 나도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게 될까? 어쩐지 그는 자신의 책상 서랍 마지막 칸에 넣어두고 열쇠로 잠궈버린 내용없는 엽서들을 떠올린다. 그게 떠오르니까 그는 당장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봐요, 때로는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으로 놔둬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잃어버린 것은 그저 잃어버린 것으로. 마음이 아프면 아픈대로…슬프면 슬픈대로…
하지만 그는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지는 않는다. 나중에 전화를 걸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지금 당장은 할일이 따로 있다. 그는 일어나서 커튼을 활짝 걷고, 커다란 개에게 다가가 머리를 몇 번 쓰다듬는다. 커다란 개는 벌떡 일어나 그의 얼굴을 핥는다.
“밥을 먹고 함께 산책을 나가자.”
그렇게 말은 한 후, 그는 한동안 커다란 개의 등의 얼굴을 묻은 채 가만히 머문다.

* [24분의 1]은 젊은 소설가 24인이 매월 한 명씩 참여하여 24시간을 채우는 짧은 픽션 코너입니다. 참여 소설가들에게 특정한 ‘시간’이 창작 소재로 주어집니다. 2019년 1월에 시작해 2020년 12월에 완성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