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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페이스트리처럼 넉넉한
지난 과거를 돌이켜볼 때 선명하게 기억되는 순간이 몇 있다. 이를테면 유년 시절과의 영원한 작별을 마주하게 되는 때. 그런 시퀀스가 갑작스레 펼쳐질 땐 유독 강렬한 감정들이 동시에 찾아든다. 수치심과 죄의식 같은,…
스파이 읽기, 스파이 일기
소설 『동조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 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아마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두 마음의 남자이기도 합니다. 만화책이나 공포 영화에 흔히 나오는, 편견에 시달리는 돌연변이…
불가해한 모든 것들로부터
지난해 봄, 내게는 가장 소중한 가족이었던 고양이 밍가를 떠나보냈다. 밍가와 나는 십 년을 함께 살았다. 밍가는 습관적으로 구토를 자주 한다는 것 빼고는 딱히 지병이랄 게 없는 고양이었다. 죽기 몇 달…
아무튼 호텔, 택시, 아파트
“사람이 허기가 지면요, 남의 집 담장을 넘게 돼 있어요” 서로의 육체를 맹렬하게 탐하던 불꽃 같은 연애가 지나고 7년 후, 우진(이솜)과 사무엘(안재홍) 부부에게 남은 건 팔릴 생각도 없이 자꾸만 떨어지는 아파트…
죽음을 마주하는 법
극 중 엠마뉘엘과 파스칼, 두 자매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앙드레를 간병하는 데 자신의 일상을 기꺼이 내어놓는다. 중년의 소설가인 엠마뉘엘은 한창 원고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동생인 파스칼과 번갈아 가며 하루에 꼭…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극중 예순 살 생일을 맞은 나이애드는 돌연 실패했던 도전을 다시 감행하려 한다. 쿠바와 플로리다 사이의 거친 바다를 종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선수로서 가장 정점이었던 젊은 시절에도 중도 포기를 했을 만큼 엄청난 체력과…
시네마! 시네마! 시네마!
환희와 눈 흘김, 어둠 속에서 장롱 안이나 식탁 밑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누군가기 나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두근거림과 아무도 찾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이 뒤섞여 있고 미묘한 전기가 찌르르 통하는 공간의…
직감이 닿는 곳에는 진심이 있다
극 중 찰리 케일은 탐정도 형사도 아니다. 다만 거짓말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상대가 말을 함과 동시에-그것이 거짓이라면-찰리는 본능적으로 ‘개소리!(Bullshi*!)’라고 직감한다. 초능력이라면 초능력일 수 있는 그 슈퍼 파워로 인해,…
잠깐, 용호상박 그게 말이 돼?
쏟아지는 말, 여기저기서 솟구치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웃는 법을 잊어버린 한 야쿠자로부터 시작한다. 신주쿠에서 제일 재미 없는 남자, 눈길 한 번에 방긋 웃는 아이도 엉엉 울릴 수 있는 무서운 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