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을 찾아서

사건은 다가와 Ah Oh Ay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가는 길은 거대한 굿판이다. 작품 속 초대 헌터는 용기와 희망을 노래하고 어둠을 몰아내는 무당 3인조로, 이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로 모아 세상을 지킬 방패 ‘혼문’을 만들어냈다. 세대를 거듭해 지금은 글로벌 슈퍼스타 헌트릭스(HUNTR/X) 멤버 루미, 미라, 조이가 악령과 귀마를 몰아내고 황금 혼문을 완성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저잣거리에서 초대형 돔에 이르기까지 3인조 걸 그룹이 무대에서 펼치는 해원의 노래와 춤은 사랑의 최면을 건다. (유치하고 황당한 이야기라고? 시작부터 의심에 빠진 이 있다면 삑— 당신은 혈중 오타쿠 농도 0%… 뒤로 가기를 누르기 바란다…)
헌트릭스의 활약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저승의 통치자 귀마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지상의 영혼을 지하로 하나둘 끌어당겨 압제를 영속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을 깨뜨려야 한다. 그렇게 헌트릭스 팬들의 혼을 빼앗는 5인조 보이 그룹 사자 보이즈(SAjA BOYS)가 탄생한다. 어느새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는 경쟁 관계에 놓이고 둘은 대립한다. 사실 루미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헌터이면서 악령인, 지상과 지하가 뒤섞인 존재라는 것. 사자 보이즈 멤버 진우는 루미의 콤플렉스를 알아채고 둘은 조심스럽게 가까워지지만 절대 본연의 모습을 내보일 수 없다. 절친한 멤버에게도, 팬들에게는 더욱더. 루미와 진우의 성장통은 온 세상에 구멍을 낼 만큼 커다랗게 진동한다. 남은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흑화…

하지만 두 존재가 비로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세계는 화합한다. 이 과정에서 얻은 생채기와 슬픔은 다음 신곡 무대에 진정성과 감성을 더한다. 케이팝은 뭐다? 여럿이 동시에 체험하는 환각이자 다가올 미래를 갈망케 하는 중독, 다시 말해 뽕이다.
2025년 6월 20일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줄여 말하면 케데헌이 공개되자마자 초신성 폭발을 닮은 거대한 사건이 파바박 다가왔다. Su su su Supernova… 쾌감을 부르는 속도, 높은 완성도와 세밀한 디테일, 귀에 꽂히는 음악으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와중, 누군가는 당연히 이 애니메이션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이들은 이야기의 빈틈을 메워 줄 해석과 연성을 쏟아내며 살을 보태고 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전통 논쟁에 불붙여 검증이란 말로 싸움을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케이팝 씬에서는 맥락을 넘어 멋진 요소를 빌려 와 뒤섞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서 뿌리 없음이나 모호함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시비 거는 일 또한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물론 팬들은 어떤 위기에도 흔쾌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케이팝의 언어에 애정, 찬양, 경도, 배제, 통제 함유량이 넘쳐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케데헌에도 그새 오해와 냉소의 목소리가 한바탕 지나갔다. 매분 매초 카오스 상태인 판 케이팝 말고 또 있을까? 허 참, 케이팝 도대체 몰까?

해피 팬즈! 해피 혼문!
이 글을 케이팝-해 본 사람이 읽고 있다면 어렴풋하게 짐작하지 않을까. 뭘까, 아니고 몰까라고 적은 이유 말이다. 진짜로 진심으로 무언지 모르겠으니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타동사 ‘모르다’에는 총 9가지 뜻이 있다. 케이팝에 한해서라면 3번째 “(사람이 무엇을) 논리적으로 해명하지 못하다”와 4번째 “(사람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상하거나 짐작하지 못하다”가 상통하는 의미인 것 같다. 접두어 ‘K-’가 일상에 침투한 이후, 모두들 하나의 장르이자 현상인 케이팝을 설명하고 분석하고 정의 내리려 한다. 그럴수록 케이팝의 정체는 희미해져만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경계가 무뎌질수록 세를 확장해 나간다. 케데헌이 쓰고 있는 또렷한 성과를 보시라. 케이팝의 형태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오늘도 케이팝은 게으른 사람은 도통 당해낼 수 없는 날카롭고 분주한 사랑을 담보로 성장하고 있다.
나도 한때는 순덕이었으나 사랑을 상실한 다음부터는(탈덕…) 정착할 곳을 잃은 채 애수를 찾아 떠도는 유목민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이 판에 사건 사고가 너무 잦은 탓에, 미움과 낭비가 쓰레기 산을 쌓아 올려 진심을 잃어버린 모양새라고 한탄하며 눈 흘기고도 있다. 매일이 언쟁이라니 징글징글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우리 사는 곳, 이 쓰레기 산에도 어김없이 홀씨가 날아와 새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더라. 지고지순함과 독기가 공존하는 세계, 극진하고 집착적인 사랑이 넘치는 세계. 케이팝은 그대=당신=너 없인 아무것도 될 수 없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 애상 어린 슬픔을 토해내기 위해 케이팝 아티스트는 외계인도 되고 늑대인간도 되고 뱀파이어도 되고 안드로이드 로봇도 되고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도 되더니 급기야는 무당도 되고 저승사자도 되어 버렸다.

이 글의 제목 “뽕을 찾아서”는 2017년부터 시작된 프로듀서 250의 [뽕] 앨범 작업기이자 다큐멘터리 제목에서 빌려 왔다. 몇몇 이들 헌트릭스 매니저 바비의 벨 소리가 이박사 노래 ‘신라의 달밤’이란 걸 용케 찾아냈더라. 아 역시, 케이팝의 정수는 뭐다? 뽕이다. 뽕의 정수는 뭐다? 애수다. 애수란 뭐다? god ‘애수’를 흥얼거려 보자. 발매된 지 26년이나 지났는데 메시지는 여전하다. 난 아직도 그댈 잊지 못해. 오늘도 그댈 찾아 이 거리를 헤매. 난 아직까지 그대만을 원해. 다른 사랑을 하지 못해… 애수 어린 세계는 중상모략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짜가가 판치는 세상에서도 있는 그대로 기꺼이 속아주기로 약속하는, 사랑 딱 그거 하나 때문에 바보 같은 맹세를 거듭하는 곳이다. 이제 작품으로 돌아가 사자 보이즈를 바라보는 수만 개의 눈빛을 떠올려 보자. 상큼 톡톡 ‘Soda Pop’으로 데뷔해 놓고선 상처받은 시뻘건 눈빛으로 ‘Your Idol’을 불러도 영혼을 홀리잖냐. 콘셉트라는 마법의 단어로 하늘을 날아… 시커먼 도포 자락 휘날리며 섹시미 발산… 마침내 객석은 환희… 고로 케이팝-한다는 것은 무어냐. 자기 꼬리를 먹는 뱀 우로보로스처럼 자가당착을 품은 채로 무한히 사랑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이 유난한 사랑이 일방통행만은 아니라는 게. 팬과 아티스트, 아티스트와 팬이 온전히 자신인 상태로 마주할 때 비로소 “Gonna be, gonna be golden”
그런 의미에서 2023년 12월 26일, 성탄절 다음 날 르세라핌 멤버 허윤진이 위버스에 남긴 글을 참 좋아한다. “지금은 여러분이 있어야 할 곳에 맞게 와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트고 따갑다는 것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에요. 저도 트고 따갑습니다. 다만 이번 겨울에는 따뜻함도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그 따뜻함이 저라면, 저를 품고 가주세요. 저의 가장 쌀쌀한 밤들에 여러분들이 제게 따뜻한 이불을 가져다주셨듯이. 이번 겨울, 가만히 서 있고 싶으시다면, 가만히 서 있으셔도 됩니다. 저도 옆에 서 있을게요.” 그렇다. 황금빛 혼문을 완성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함께 존재하기, 있는 그대로.
원제 KPop Demon Hunters
OTT Netflix
감독 매기 강, 크리스 애플한스
출연 아든 조, 안효섭, 켄 정, 이병헌 외
각본 대니아 히메네스, 해나 맥메컨, 매기 강, 크리스 애플한스
시놉시스
비밀스러운 초능력을 지닌 슈퍼스타 헌트렉스 멤버 루미, 미라, 조이는 매진을 기록하는 대형 스타디움 공연이 없을 때면 또 다른 활동에 나선다. 숨겨진 능력을 이용해 팬들을 초자연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어느 날, 치명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악령 보이 밴드가 등장하는데… 팬들을 위협에 빠뜨리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목소리를 높여 반격에 나서야 한다. 혼문을 지키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