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rkness, [Permission To Land], 2003
유명 음반 레이블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임인 만큼 모두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제어하는 누군가의 휴대전화를 차지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1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계속 다른 노래가 나오자 참다못한 모 과장님이 ‘각자 인생의 노래’를 틀자고 제안했다. 20세기 고전 로큰롤부터 1990년대 알앤비, 2000년대 힙합 등 다양한 음악이 등장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과격한 일렉기타 전주가 흐르고, 잔뜩 힘이 들어간 팔세토 보컬의 노래가 공간을 폭격했다. 웃음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정적이 흘렀다. 정말로?

내가 고른 노래는 영국의 4인조 밴드 다크니스(The Darkness)의 2003년 곡 ‘I Believe In A Thing Called Love’였다. 낯선 밴드의 낯선 곡이다. 한국에서는 철저히 무명 밴드고 지금은 해외에서도 추억의 팀이다. 그런데 한때 이들은 영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그룹이었다. 2003년 발표한 첫 정규 앨범 [Permission To Land]는 평단과 대중의 일관된 지지를 얻으며 2004년 브릿 어워즈 3관왕과 머큐리 상 노미네이트, 영국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특히 브릿 어워즈 최고의 앨범상은 뮤즈, 스테레오포닉스, 라디오헤드를 제치고 거머쥔 성과였다. 그 짧은 전성기가 있었기에 머나먼 한국의 나도 그들의 음악을 인생의 노래로 주저 없이 고를 수 있었으리라.

다크니스의 음악은 세련된 맛이 없다.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에 매료된 저스틴 호킨스는 정직하게 블루지한 로큰롤에 3분 30초 동안 단순한 버블검 팝과 극적인 보컬, 무작정 들이대고 보는 저급한 가사를 더해 쾌락의 송가를 만들었다. 번쩍번쩍한 1970년대 글램 록 밴드들과 보스턴, AC/DC 등 밴드들의 잔향도 너무 짙었다. 저명한 음악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레트로 마니아’에서 기괴한 복고의 전형으로 짧게 소개한 팀이 바로 다크니스였다. 멋있지도 않았다. 민망한 쫄쫄이 옷을 입고 긴 머리 휘날리며 무대를 누비던 저스틴 호킨스, 얌전히 티셔츠 한 장 입고 형의 뒤를 받치던 댄 호킨스, 폭탄 머리 콧수염 베이시스트 프랭키 포울레인, 평범 그 자체의 드러머 에드 그레이엄은 멋진 록스타라기보다 개그 밴드처럼 보였다. 밴드는 황당한 저예산 뮤직비디오 속에서 악당 외계인을 물리치며 우주를 여행했다.

그렇지만 나는 학창 시절 다크니스를 사랑했다.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블러, 펄프 등 멋진 영국 밴드들과 어두운 미국의 그런지 얼터너티브, 1960년대 고전 음악을 공부하듯 듣던 내게 이들의 방탕한 로큰롤은 거창한 고민이나 사명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오아시스였다. 그 중심에 영국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른 그들의 최고 히트곡 ‘I Believe In A Thing Called Love’가 있었다. 대단한 내용은 없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밤새 뜨겁게 즐겨보자는 막가파의 세레나데다. 멜로디는 쉽고 기타 솔로는 근사하며 후렴은 웃긴다. 그게 다다. 하지만 반항과 사랑으로 가득했던 사춘기 소년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다크니스는 이 앨범만 내놓고 망했다. 저스틴 호킨스가 알콜과 마약 중독에 빠져 재활원을 드나드는 바람에 활동 적기를 놓쳤다. 음악도 시원찮았다. 대중은 촌스러운 로큰롤에 잠깐 관심을 가졌을 뿐, 이내 원조 맛집과 새로운 취향을 찾아 떠났다. 나도 다크니스를 오래 잊고 지냈다. 그러나 ‘I Believe In A Thing Called Love’만은 남았다. 원초적 본능에 가까운 이 노래는 아주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감정을 자극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사랑은 근사하고 멋지다기보다 구질구질하고 지질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힘들 때, 울 것 같을 때, 기운도 이제 나지 않을 때, 나는 깔끔하고 근사한 음악 대신 화끈한 다크니스의 노래를 찾는다. 혼자 에어 기타를 치고 점프하며 소리를 지른다. 바보 같지만 나는 아직도 사랑이라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