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삼켜버리는 신비의 거인이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하루하루

카세트테이프를 모은다. 최근 3년 동안 오백여 개를 모은 것 같다. 누군가는 카세트테이프를 모으는 게 무슨 특이한 일이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난 카세트테이프를 모으기 전까지, 평생 카세트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 고작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학창 시절 애용한 음악 재생기기는 CD 플레이어, 그다음은 MP3 플레이어였다. 카세트에 이렇다 할 추억도 없는 내가 카세트테이프를 모으는 것은 유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버지는 고등학생 때 버스 대신 LP판을 선택하셨고, 그렇게 아버지껜 튼튼한 다리와 수백 장의 LP판이 남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동경하기는커녕 이사할 때마다 LP판은 이제 버릴 때가 되지 않았냐며 철없는 소리를 해댔던 내가 이제는 LP판을 모으고, 덩달아 카세트테이프도 모은다는 것이다(이게 유전의 무서움). 하나하나 책장을 빼곡히 채워가는 카세트테이프를 보면서 저절로 배가 부른 경험은 분명 아버지께서 느끼셨던 것과 같은 것이리라(역시 무서움).
카세트테이프를 수집하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의 음악적 취향을 확실하게 알게 됐다는 것. 이 또한 웃긴 게 사실 스포티파이나 멜론과 같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가 더 쉽게 취향에 맞는 음악을 선택하기 위함일 것인데 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때가 아니라 직접 카세트를 수집하고나서야 비로소 내 음악적 취향이 ‘직접적으로’ 눈에 보였다.
다독가인 친구 하나가 전자책 단말기로 읽은 책은 종이책보다 흡인력이 더 떨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 물리적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종이책만이 가지고 있는 두께감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물론 구현할 수는 있지만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 방식이니까). 종이책은 읽으면서 점차 줄어드는 페이지 수를 손으로 느끼면서 읽을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우리는 이 책이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시시각각 파악할 수 있다. 일부 플랫폼에서는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을 바 형태로 표시해 바가 줄어드는 것으로 읽은 양을 표시해주기도 하지만 텍스트에 집중하고 있는데 번거롭게 눈으로 시선을 한 번 더 주는 것과 손에 저절로 느껴지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전자책과 종이책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나에게 스포티파이는 전자책과도 같고, 카세트는 종이책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세트를 모으면서 알게 된 나의 음악적 취향은 신기하게도 나의 직업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그림책을 만든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그림책이라면 으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관, 즉 환상의 나라를 매일 상상한다. 걸어가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새로 작업할 일거리라면서 재밌는 상상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런 내가 유영석의 ‘Dreaming’을 들었을 때 놀란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아,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한 세상을 사는 구나. 하루하루 재밌는 삶을 살고 있겠구나.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신비의 거인이 난데없이 튀어나오고, 하늘 끝에서 이어지는 미끄럼틀을 타고 누군가를 구하러 가는 하루하루.
어떤 노래는 단순히 노래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책보다 더 많은 상상거리를 주기도 한다. 좋은 그림책을 읽고 나면 오랫동안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처럼, 유영석의 ‘Dreaming’도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이 노랫말에 그림을 그려서 그림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나야말로 성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