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끝낼까 해>(2020)

“모든 게 허깨비였잖아!”

두 연인을 태운 차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도로를 달린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건조한 목소리의 긴 대화가 이어진다. 대화는 계속해서 미묘하게 어긋난다. 루시는 만난 지 고작 6주 밖에 되지 않은 남자친구 제이크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지만 달리는 차는 멈출 줄을 모르고 제이크의 고향 털시 타운에 다다른다. 얼어붙은 땅, 한겨울 시골 농장 풍경은 음산하다. 죽은 양들의 시체와 구더기에게 산채로 잡아먹힌 돼지 사체들. 이런 살풍경과 대조되는 한껏 들뜬 얼굴을 한 제이크의 부모님이 이들을 반긴다.

그러나 제이크의 부모님은 조금만 발을 헛딛으면 살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져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은 불안한 눈빛에 잠겨 있다. 제이크의 학창 시절 얘기를 꺼내어 연신 입이 마르게 칭찬하면서도 단어를 오용하거나 혼용하면서 제이크의 눈치를 살핀다. 혼란스러운 짜증이, 몽롱하고 위태로운 공포가 루시에게 밀려든다. 잇따라 발생하는 불길한 징조들. 제이크는 돌아볼 때마다 자꾸만 사라지고,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제이크의 부모님은 중년과 노인과 청년을 오가며 루시를 지하실로 몰아넣는다. 루시는 거듭 제이크와 자신이,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뒤섞이고 중첩되는 혼란을 겪는다.

가까스로 인사를 나누고 집을 나선 이후에도 이 로드무비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의문 끝에는 의혹마저 남는데, 죄다 얼어버린 세계에서 과당으로 절여진 아이스크림을 사는 이유는 무엇이고, 아이스크림 가게 직원이 건네는 뜻 모를 경고는 무엇이며, 끈적이는 아이스크림을 버리기 위해 굳이 고등학교로 향하는 목적은 또 무엇인지… 이제 그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과연 가능하긴 한 것일까.

<이제 그만 끝낼까 해>(2020)

“오늘 밤에 있었던 많은 일이 불분명하다. 마치 모든 게 약간…”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여러 면에서 정체불명의 기이한 영화다. 눈보라를 뚫고 달리는 차 안의 대화가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지긋지긋해질 정도로 호흡이 느리고 더없이 우울하고, 찰나의 현실과 다수의 망상이 개입해 혼동이 지속된다. 루시의 정체도 분명치 않다. 양자물리학자였다가, 화가였다가, 웨이트리스였다가, 영화평론가였다가, 시인이기도 한 사람. 게다가 각종 물리 법칙들,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에세이, 존 카사베츠의 영화 <영향 아래 있는 여자>, 기 드보르의 책 『스펙터클의 사회』, 크리스마스 캐롤 <Baby It’s Cold Outside>,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들쑥날쑥한 인용들이 끊임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어떤 사람에게도 스스로의 행위보다 귀한 건 없다고 에머슨은 말했다. 옳은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그들의 생각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고 그들의 삶은 모방이고 그들의 열정은 인용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진짜가 아니면서 진짜인, 그 자체로 남의 것이자 남의 것 말하기를 즐기는 루시는 생각한다.

2021년 12월 31일. 나는 내일이면 사라질 극장에서 그 해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대도시에선 밀려드는 스펙터클에 순응하며 사라짐을 당연하게 여길 줄 알아야 행복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언제나 내가 곁을 둔 것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휘발되어 내 것 하나 없다는 생각에 못내 쓸쓸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만약에’로 시작하는 끝없은 상상을 펼치고는 한다. 만약 속의 나는 사뭇 다르다. 때때로 나는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시공에서, 동경하는 이름들과 함께 있다. 그래서인지 모니터 블랙 화면이나 거울에 현실의 내가 비쳐 상상에서 깨어날 때마다 고독하다. ‘이게 끝일까 봐, 혹은 이게 끝은 아니겠지’ 두려워서. 혹은 이렇게도 생각한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이 영화의 인물들 마냥 내 것 없이 인용을 거듭해대는 삶이라든가, 과거에 갇혀 환상을 만들어내는 상상뿐인 삶은 이제 그만. 싫은 것들에 하도 얼굴을 찌푸리다 보니 미간 주름이 깊어진 채로 대체로.

한편으로 나는 대도시가 쉴 새 없이 공급하는 스펙터클에 중독되어 고밀도의 자극을 찾아 매일을 심드렁한 얼굴로 보내는 모순된 인간이다. 꽤나 퍼석한 얼굴로, 욕망하는 얼굴도 정의로운 얼굴도 야심 있는 얼굴도 다 잊은 채로, 지나가는 삶의 속도를 조금 멀찍이서 바라보고 싶은 분리된 인간이 되어. 나의, 아마도 우리의 이러한 표정이 제시 버클리가 연기한 루시와 닮아있다. 경악스러운 상황에서도 내 눈 앞의 삶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멀찍이서 보는 얼굴을 하는 사람. 세간의 평가와 풍파에 흔들리면서도 흔들리고 싶지 않은 사람. 복잡하고 이상한 빈틈으로 가득한 사람. 매사가 성가신 자신이 당혹스러운 사람. 못난 누군가가 만들어낸 사람. 그렇게 결국 나인 사람.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루시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시간을 통과한다고 생각하려 하지만 난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우린 정지해 있고 시간이 우리를 통과한다. 찬바람처럼 불어와 우리의 열기를 훔친 후 트고 얼어붙게 한다.’ 제이크가 끼어든다. “무슨 생각 해?” 다시, 루시는 생각한다. ‘그러다 죽겠지. 오늘 밤엔 내가 그 바람 같았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2020)
OTT 넷플릭스(Netflix)
원제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감독 찰리 카우프만
출연 제시 플레먼스, 제시 버클리
시놉시스
우리는 언제 만난 걸까. 언제까지 만나게 될까.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여행을 떠나는 여자. 그의 부모님이 사는 외딴 농장에 가는 길.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흔들린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찰리 카우프만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영화. 고독과 회한을 담은 이언 리드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