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은 어디인가 Flee>(2021)

세계 시민의 이면

줄곧 나를 괴롭히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세계 시민인가요?” 근사한 벽난로가 있는 글로벌한(실제로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여럿이 살고 있다) 셰어 하우스의 집주인이 물었다. 이 공간에는 ‘세계 시민’만이 입장할 수 있다며 덧붙인 이 질문에 당시의 나는 그렇다고 답하고 말았지만, 실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서울에서는 코스모폴리탄의 감각을 느끼기 어려우니까. 게다가 전염병과 전쟁과 자연재해와 총기 난사… 지구의 멸망이 가속화되는 와중에 자기 계발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를 내다보지 않으면 자리를 잃고 말 것이라는 긴박한 경고가 넘쳐나는 지금, 나는 꼭 이 부박한 세계의 시민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수없이 많은 집 잃은 사람들이 있다. 망망대해 위에서 보트 한 채에 실린 채로, 땅에 발을 내디딜 수 있기만을 바라며 ‘자비로운’ 1세계 국가의 구조 혹은 구원을 기다리는. 그렇다면 이들은 세계 시민이 될 수 있을까? 몇 년 전 광주비엔날레에서 “지구상에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국가가 전무하다면, 오히려 이들을 화성으로 보내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우주 난민(Space Refugee)>이라는 모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진짜 우주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그것도 ‘10분짜리 여행’을 목적으로. 이들만큼은 분명 세계 시민일 것이다.

소년은 자란다, 피난길에서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거칠고 투박한 선이 점점 사람들의 형체로 바뀐다. 코펜하겐. 한 남자가 누워 있다. 카메라 바깥에서 감독은 그에게 묻는다. “네 이야기를 남한테 해본 적 있어?” 이 남자의 이름 ‘아민’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가명이다. 그 이름 뒤에서 그동안 자신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고백을, 카메라는 정적인 호흡과 함께 담아낸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주목받는 게 좋아서 누나의 원피스를 빌려 입고 A-Ha의 ‘Take On Me’의 리듬에 몸을 맡기곤 했던 이 경쾌한 어린이의 삶은 탈레반과 무자헤딘의 내전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죽고, 흩어지고, 걷고, 뛰고, 피하고, 숨고, 참고, 외치고, 멸시를 견디고, 수치를 품고, 거짓말을 꾸려 러시아를 거쳐 여러 번의 탈출 실패 끝에 도착한 덴마크에서 학자가 되기까지의 25년간의 회상이 이어진다. 동시에, 피난과 은신의 나날에서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아민의 성장이 그려진다.

윤리적 문제를 위해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법을 택하고, 직접적인 폭력 묘사 대신 환상이나 환영 같은 추상적인 그림과 푸티지를 통해 묘사하는 이 영화에서 나는 여러 눈동자들을 발견했다. 표류하는 난민을 내려다보는 크루즈 위의 눈동자, 배제와 추방을 집행하려는 사법 권력의 눈동자, 생사 앞에서 애원하는 눈동자, 그리고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낙담하려는 눈동자.

<나의 집은 어디인가 Flee>(2021)

이름들

그저께 본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에는 이런 대사가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등장했다.

“암전. 이게 그렇게 좋았다.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다 지워진 상태”

극장은 암흑 속에 있다. 이내 빛이 도달한다. 시선이 닿는 곳에 고백이 있다. 장면이 말하려는 것. 무지. 외면. 무관심. 부끄러움. 부채감. 상처. 공포. 혼란. 고민. 회한. 정체성. 책임감… 사각형 틀 안에서, 더는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한 고백이 거듭 변주된다. 그러나 관객은 고해성사를 위한 사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나와 당신들은 무대(스크린)를 향해 숨죽이고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다. 곧 이야기가 시작될 그 어둠이 마냥 좋아서.

얼마 전의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배우이자 감독 조현철은 투병 중인 아버지를 향해 이런 수상소감을 남겼다.

“죽음이라는 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작년 한 해 동안 내 첫 장편 영화였던 <너와 나>라는 작품을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거를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에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 김용균 군, 변희수 하사, 이경택 군…(중략)…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중략)… 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 있다고 믿어”

나는 조현철이 젊은 시인을 연기한 단편 영화 <이름들>을 좋아한다. 영화 속 시인이 썼다는 시의 일부를 옮겨 본다.

“하지만 나는/ 성의도 없는 거짓말로 내일 먹을 밥과 태어나지도 않은 강아지들의 이름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잖아/ 누나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지내야 할 시간이 아직 많다는 게 언제나 무서웠다고/ 누나에게 말하고 싶었어/ 누나/ 나는 무서워”

어떤 날 마주한 고백은 평면 바깥으로 뛰쳐나와 삼차원으로 향한다. 이윽고 점점 스며들어 자꾸만 입술을 달싹거리게 한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무언가를 보는 건 아니지. 무언가를 많이 본다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하지만 극장 밖에서, 나와 당신은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만난 고백과 이름들을 자주 꺼내어 부르는 일을. ‘호명하기’라는 두렵고 멋쩍은 일의 반복에서 어쩌면 변화가 태어날지도 모른다. 세계의 틈이 점점 좁혀질지도 모른다. 앞으로 마주할 또 다른 암전의 순간을 기다리는 사이에.

* 제목은 김소월의 시 「초혼」의 한 구절을 빌렸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2021)
OTT 왓챠
원제 Flee
감독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시놉시스
진정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직면해야 했던 한 남자의 실화를 다룬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해 홀로 덴마크에 정착한 아민이 오랜 시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진정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기 시작한 한 사람의 고백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