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오랜만에(1993)

어떤 노래는 시간을 마음대로 휘젓는다. 노래는 재생되는 순간 시간과 함께 앞으로 앞으로 흘러가지만, 기억과 상상은 자꾸만 뒤로, 더 뒤로, 혹은 더 앞으로, 가닿을 수 없는 시간의 거리만큼 훌쩍 오고 가니까. 이 노래를 처음 알았던 때에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노래는 딱 5분만큼 어른의 기분을 맛보게 해주었다. 드디어 이 노래가 어울리는 때를 맞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촌스럽게 ‘나이’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하나, 오직 3평의 세계

껌전지는 도대체 왜 그렇게 빨리 닳는지, 새기는 또 왜 그렇게 잘 새는지. 파나소닉 워크맨을 쓰던 중학생의 나는 아주 자주 시간을 원망했다. 사실 그건 기계 탓이라기보다는 내 나이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때의 나는 중2병답게 오만방자해서,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래 친구들보다 몹시 조숙하다고 믿었던 터라 나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 유치해서 도저히 못 견딜 지경이었다. 자연스레 신화나 동방신기라든가 SS501 같은 아이돌 그룹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고, 느리고 척척한 노래들에 무섭게 몰입했다. 다들 새롭고 파격적인 멜로디와 때깔 좋은 비주얼에 열광할 때에 내 시계는 자꾸만 거꾸로 갔다.

나와 친구들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 과거의 것들을 많이 아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때, 하나음악과 푸른곰팡이의 싱어송라이터들이 만든 포크 음악과 윤상과 김현철이 만든 발라드를 디깅하는데에 나는 열과 성을 다해 미쳐 있었고, 당연히 내 롤모델은 양파라거나, 이소은 같은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깡마른 소녀 가수들이었다. 그땐 어른이 되면 다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나는 이소라의 노래처럼 어둡고 그윽한 청소년이 되어 3평 남짓 되는 방에 틀어박혀 이어폰으로 귀를 꽉 막고, 온갖 헛소리를 쪼끄만 자물쇠가 달린 비밀일기와 교환일기에 중지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쉴 새 없이 끄적였다. 그렇게 김현철 1집은 재생 버튼만 누르면 중학생 유정미를 서른 너머의 유정미로 옮겨다 놓았다.

그런데 사실 그때의 나는 김현철 1집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언제나 답답했다. 1번 트랙 ‘오랜만에’부터 아주 큰 장벽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노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결핍이기도 했다. 노래가 그려내는 고층 빌딩과 네온사인 반짝임, 내 주위를 빠르게 지나쳐가는 차와 사람들, 도시를 차갑게 밝히는 “나를 비웃는 가로등의 고독한 미소”, 이 모든 배경 사이를 걷는 내가 느끼는 상쾌하지만 그리운 모순된 감정. 그런 것들을 그때의 나는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김현철 같은 세련된 목소리를 가진 어른을 만난 적도 없었다. 서울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게 언제나 나를 붙잡았다. 정말 지겹기 그지없는 나날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시골 사람은 아닌데. 나는 평생 도시에서만 자랐고, 심지어 지방의 1차 신도시 키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동네는 시내에서 1시간 떨어진 살기 좋은 베드타운이어서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아파트뿐이었다. 크고 작은 공원이 아파트 모퉁이만 돌면 무려 다섯 개나 있는, 스펙터클이 없는 우리 동네에서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기분”을 느낄 새가 없었다. 몹시 느리고 좁고 평화로웠다. 그래서 나는 진짜 도시에 가고 싶었다. 이 노래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만 했다. 그때부터 학창 시절의 내 꿈은 오직 하나, 진짜 도시 서울로 탈출하기.

둘, 학림에서

학림(學林)은 1956년 문을 열었다. 다방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파리의 살롱 같은 곳이긴 하지만 흔히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학림을 레트로 다방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크나큰 오산이다. 이름에 붙은 그놈의 ‘다방’ 덕에 종종 커피 배달되냐는 징글맞은 전화를 받은 적도 몇 차례 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가씨”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지방 탈출에 결국 성공한 나는 대학생이 되어 학림에서 1년 반 넘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만 해도 인스타그램 인증샷이 지금처럼 전 세계를 뒤흔들지 않아서 학림은 언제나 클래식이 선율이 흐르는,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문인과 학자가 매일같이 드나드는 나름대로 고요하고, 운치 있는 곳이었다.

그때의 나는 2PM도, 인피니트도, 원더걸스도, 소녀시대도 골고루 들었지만 여전히 김현철을 좋아했다. 그래서 학림을 좋아했고, 학림에서 일하는 나를 좋아했다. 가게 오픈 전, 클래식 음반으로 판을 갈아 끼우기 전에 오래된 한국 대중음악 LP를 찾아 틀고 청소와 드립 필터 접기 같은 소일거리를 하던 나날은 아직도 내 인생의 호시절이기도 하다. 오래된 진공관 스피커로 사장님이 잔뜩 모은 HE6라든가 김민기, 유재하, 노영심 음반을 두루 들으며, 잘 가꾼 변함없는 공간에서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풀나풀 흔들리는 한여름 플라타너스, 눅눅한 가을비 냄새, 창밖으로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목격하는 일이 즐거웠다. 대학로를 내려다보면서 핸드드립 커피를 홀짝이며 김현철 1집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도 중학생 때 나와 비슷하게 늘 어딘가 어색해서 스스로 학림이라는 공간과 이질적이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입고 있는 옷이나 경험한 것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살이도 내 상상과는 사뭇 달라서 김현철이 노래하는 도시의 밤, 아름다운 불빛 아래 스며드는 그리움 같은 것을 느낄 새가 없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자꾸 ‘오랜만에’를 들었다. 그 노래는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주니까. 그럼 조금은 학림을 오가는 내가 너무 어리게만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셋, 디깅클럽서울

김현철이 ‘복면가왕 아저씨’로만 남을까 봐 두려웠던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역시 남 탓은 내 전문이라서 한국 최고 뮤지션 김현철을 빼앗아간 프로그램 <복면가왕>을 한때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김현철은 작년 11월 정규 10집 [돛]을 발매했다. 김현철은 ‘디깅클럽서울’ 프로젝트의 첫 곡, 죠지가 리메이크한 ‘오랜만에’가 시티팝 열풍과 함께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아서라고, 그래서 다시 무대에 서고 음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나도 이 노래가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이젠 서울이 너무 일상이 되어서, 그 누구보다 간절히 여행자라든가 이방인의 기분을 느끼고 싶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가끔 새벽의 광화문과 청와대 언저리를 배회하며 나도 모르게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되짚어본다. ‘오랜만에’는 산책을 촉진하는 노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며 이 노래를 같이 들었을 때도 있었고, 창문을 활짝 열고 침대에 홀로 누워 밤바람을 맞으며 추억에 잔뜩 젖어 이 노래를 들을 때도 있다. 이제 이 노래는 나를 미래로 옮겨다 놓지 않고, 과거를 여행하게 한다.

그리고 오늘은 ‘오랜만에’가 잘 어울리는 여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