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머니, 그리고 이오공감
칠순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30대 중반의 나이였을 무렵으로 기억된다.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올 때마다 어머니는 늘 내 손을 잡고 버스 종점 옆의 작은 레코드 가게에 들르셨다. 그곳에서는 <독수리 오형제>, <마루치 아라치>, <태권브이> 등의 만화 주제곡과 성우 더빙이 함께 수록된 카세트테이프를 시리즈별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눈으로 보는 것보다 귀로 듣는 만화영화가 항상 더 재미있었다. 이런 내 취향을 잘 아시는 어머니는 매번 ‘문제집 다 풀기’를 조건으로 ‘만화영화 테이프’를 사주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레코드 가게 사장님은 만화영화 테이프 외에 한두 장의 가요 LP나 CD를 어머니께 추천해주시곤 하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당연히 새로 산 만화영화 테이프를 A면부터 꼼꼼하게 듣는 것. 만족할 만큼 테이프를 듣고 난 후에야 나는 어머니께 전축의 자리를 내어드렸다. 어머니는 마치 어떠한 종류의 의식이라도 치르 듯, 늘 향이 좋은 커피를 한잔 내리신 후에 LP나 CD를 전축에 올려놓으시고는 방석 위에 다소곳이 앉아 한 곡 한 곡 음악을 들으셨다. 느린 음악을 들으실 때면 잠깐씩 눈을 감으시기도 하고, 빠른 음악을 들으실 때면 고개를 까닥거리시기도 하고, 한참을 가사지에서 눈을 떼지 않으시기도 하면서. 그런 어머니 옆에 엎드린 나 역시 문제집을 푸는 둥 마는 둥 함께 음악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가 찾아왔다. 당연하게도 <독수리 오형제>나 <태권브이>는 순식간에 잊혔다. 괜스레 우울한 기분이 들었고. 부쩍 커버린 키만큼이나 마음도 커버린 느낌이 들어서 왠지 어른들이 듣는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당시 함께 사춘기 비슷한 시절을 보내던 친구들은 강수지, 신승훈, 변진섭, 이상우 등의 음악을 들었지만, 왠지 나는 어머니 옆에 엎드려 함께 듣던 조동진, 김광석, 김성호, 박준하 등의 음악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굳이 친구들과 접점을 찾는다면 신해철과 윤상 정도랄까.
비록 나의 만화영화 테이프 구입은 사춘기를 기점으로 막을 내렸지만, 레코드 가게에 들르는 일은 습관처럼 계속되었다. 쇼팽과 베토벤을 연주하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꾸던 나는 만화영화 테이프 대신 노란색 피스의 가요 악보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레코드 가게에 놓인 음악잡지를 뒤적거리다 보니 예전엔 관심도 없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던 아티스트들의 이름과 목소리, 얼굴도 나름대로 매치가 되기 시작했다.
1992년 6월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피스 악보를 사러 방문한 레코드 가게 안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가슴을 쿵 하고 울리는 노랫말. 이오공감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멍하니 음악을 듣던 사춘기 꼬마의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우스웠을까. 사장님은 아무 말씀 없이 테이프를 꺼내어 손에 쥐여주시고는 “이거 새로 나온 이오공감이라는 음악인데, 선물이니까 집에 가서 듣고, 연습 많이 해서 나중에 피아노로 꼭 쳐줘!”라고 말씀하셨다. 머뭇거리는 내게 몇 번이나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시던 사장님의 목소리. 그리고 레코드 가게를 나서며 이마 위로 쏟아지던 눈부시던 햇살과 플라타너스의 푸른 잎사귀, 뜨거운 공기, 이오공감의 음악이 거짓말처럼 하나하나 기억난다.
‘인생의 노래’를 이야기하기까지 도입이 너무 길었지만. 이승환, 오태호의 이오공감이 1992년 발표한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내가 난생처음으로 듣자마자 온전하게 마음을 빼앗긴 노래이자, 누군가로부터 처음 ‘음악’을 선물 받았다는 의미에서 완벽하게 나의 ‘인생의 노래’로 자리 잡고 있다. 사춘기의 꼬마는 이오공감을 만난 이후 곧바로 공일오비,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더 클래식, 전람회 등 비슷한 음악의 결을 따라 자기만의 라이브러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으며, 피아니스트의 꿈은 접었지만 이른 나이에 오태호, 박용준의 연주를 따라 하며 작/편곡의 꿈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라디오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이라는 지금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뿌리 같은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쨌거나,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 낡은 전축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음악을 듣는 일은 계속되었다. 다만 음악을 고르는 주체가 어머니에서 아들로 바뀌었을 뿐. 그리고 25년 정도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 어머니가 아들이 고른 음악들을 라디오를 통해 듣고 계신다. 아마도 25년 전 30대의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인디 감성’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레코드 가게 사장님의 추천이 어머니의 음악 취향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셨겠지만, 정동 체육관에서 열렸던 동물원, 조동진 사단 등의 콘서트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갔던 기억으로 미루어볼 때 분명 지금 나의 감성의 8할 이상은 어머니의 취향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신 어머니와 레코드 가게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오랜만에 오늘은 이오공감의 곡을 라디오에서 틀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