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자이자 문화비평가 수전 J. 더글러스의 저서 <배드 걸 굿 걸>의 부제는 ‘성차별주의의 진화: 유능하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주술’이다. 드라마, 예능, 시사교양, 뉴스, 영화, 음악, 광고 등 온갖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투영된 ‘여성’은 언뜻 당당하고 독립적인 것처럼 비춰진다. 미디어는 여성이 힘을 갖게 되었으며,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주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은 마르고 아름답고 여성스러워야 한다. 오늘도 여전히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사건은 ‘ㅇㅇ녀 사건’이라 불리고, 몰래카메라로 강간 장면을 촬영한 영상은 ‘야동’으로 탈바꿈해 떠도는 데다 여전히 예능에서는 섹시 댄스와 애교를 미덕처럼 요구하며, 모성과 집밥에 대한 판타지가 매일같이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여성혐오’에 대한 외면과 오해, 왜곡 역시 이 지점에서 교묘하게 일어난다. 여성혐오는 단순히 ‘여자를 싫어한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Misogyny’를 번역한 말로,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주체로 보지 않고 사고와 선택과 발언과 거부가 자유롭지 않은 대상, 성적인 대상, 보호와 통제가 필요한 대상으로 타자화하는 것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음습하게 침범하는 ‘도덕’의 굴레,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요는 ‘페미니즘’을 철 지난 것으로,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반하는 것으로 배척하고 만다. <배드 걸 굿 걸>은 이처럼 가혹하고 모순적인 잣대로 강요된 여성성에 근거해 이 시대의 진화한 성차별주의를 분석한다. 저자는 누구나 대중매체가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는 있지만,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는 것과 효과를 분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지적한다. ‘묵인’과 ‘내면화’, 그 사이의 절충점으로 스며 산화되고 조롱당하는 페미니즘을 다시 부활시켜 당장의 성과보다는 우리 자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을 변화시키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 5월의 강남역. 수없이 쏟아지는 초점 잃은 보도들, 농담이라는 거짓말, 저속한 음해, 그런데도 온 마음을 담아 팔랑이는 포스트잇.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보편적인 일상이 되어버린 한국에서 이제 더는 무뎌지지 않겠다는 수많은 다짐, 외침들. 이중잣대에 대한 공격과 반박, 타자화를 거부하고 바꿔서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 언젠가는 가 닿을 희망. 그러므로 #GoWildSpeakLoudThinkHard

배드 걸 굿 걸
지은이 수전 J.더글라스
옮긴이 이은경
출간 정보 글항아리 /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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