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tag
이승한
응답 받지 못한 기도
* 영화 <어스>와 <카포티>의 결정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피해주십시오. 지하세계 복도에서 펼쳐지는 애들레이드(루피타 니옹고)와 레드(루피타 니옹고)의 마지막 사투는 이상하게 서글프다. 지친 몸을 이끌고 사력을 다해 레드를…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이 바톤을 이어받으시오
관객이 해피엔딩을 의심치 않던 순간, 스파이크 리의 영화 <블랙클랜스맨>(2018)은 관객의 목덜미를 잡아당긴다. 론(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KKK의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부를 끝장냈지만, 여전히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기면 일단 권총을 꺼내 들고 대비해야 하는…
가로막혀야 타오르는 마음이여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막으면 막을수록 거세게 흐른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때론 장애물이 사랑을 완성하기도 한다. 냉전과 전체주의 체제의 감시가 없었더라도 줄라(요안나 쿨릭)와 빅토르(토파츠 코트) 사이의 감정이 그토록 절절하게 타올랐을까? 막상 아무것도…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거창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우리를 질식시키기 전에
<툴리>(2018)는 축복과 숭고함이라는 수사 뒤에 감춰진 고통을 혼자 감당하는 여성, 마를로(샤를리즈 테론)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마를로의 삶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의심되는 둘째 조나(애셔 마일즈 팔리카)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 마를로는 조나를…
비아냥의 힘으로 노려보다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 소속 레지스탕스 요원들이 영국의 지원을 받아 나치 독일의 SS 보안방첩부 수장이자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의 총독대리였던 라인하르트 하인리히를 암살한 실제 작전 ‘오퍼레이션 안트로포이드’는 반복해서 영화의 소재가 된 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사에서…
친애하는 괴물 여러분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를 보다 보면 정말로 무서운 건 좀비가 아니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비의 출현처럼 사방팔방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는 바람에 배우와 스태프들은 모두 패닉하지만,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감독…
그 재갈을 풀지 않는다면 더 큰 파국이 찾아온답니다
* 영화 <델마>(2017)와 <스토커>(2013)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원치 않는 분들은 영화 관람 후 글을 읽기 바랍니다. 도서관에서 제 옆자리에 안야(카야 윌킨스)가 앉는 순간, 델마(에일리 하보)는 온통 뒤흔들리다 못해 발작한다.…
샌 주니페로 주민들은 리플리컨트의 꿈을 꾸는가
* <블랙미러> 3시즌 4화 ‘샌 주니페로’와 4시즌 6화 ‘블랙 뮤지엄’,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핵심적인 스포일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샌 주니페로’와 ‘블랙 뮤지엄’ 두 화를 다 보고 난 뒤 생각이 조금은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