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울음소리

밤이 되면 나는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려 나를 본다.
초등학생 때도 밤마다 나를 보았다. 낮에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는 몰라도, 밤이면 나는 어둠 속에서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막연하고 유치한 질문을 던졌다. 이 세상은 시뮬레이션인 게 아닐까, 트루먼쇼의 주인공은 바로 나 아닐까. 지금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올 뿐이지만 그땐 꽤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백하자면 그때 개구리와 풀벌레가 나의 상념을 도왔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뒤편 가드레일 너머로 비닐하우스를 비롯한 농장이 여럿 있었는데, 여름밤이면 그곳에서 그들의 울음소리가 건너왔다.
그들은 맹렬하게 울었으나 나를 불면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울음이란 말을 붙이기 어색할 정도로 상냥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의 울음소리를 배경음 삼아 갖가지 상념에 방문했고, 그마저 지겨워질 때쯤 꿈속으로 입장했다.
모든 게 영원하다고 믿는 아이였기에, 중학생이 된 여름부터 갑자기 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적적해졌다. 있다가 없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덤덤한 척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때 맛본 허무함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무슨 일인지 농사짓던 사람들도 개구리와 풀벌레를 따라 하나둘 그곳을 떠났다. 결국 그 땅에 아무도 살지 않게 되자 개발될 거란 소문이 그곳의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 일대에 가설울타리가 세워질 즈음 대학생이 된 나는 가족과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그 동네와 그들의 울음소리는 내 기억의 거실에서 다락방으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 동네 전철역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전철역이 다리 위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동네 전망뿐만 아니라 가설울타리 너머도 볼 수 있었는데, 그때 울타리 너머를 보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땅이 온통 파헤쳐져, 그 아래 적토가 드러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잔인한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들의 슬픔이 지금 저기 남아 있구나. 그러니까, 개구리와 풀벌레들의 슬픔이.
아주 긴 울음 뒤에는 그보다 긴 슬픔이 따라온다. 개구리와 풀벌레들이 맹렬하게 울었던 그 여름밤이 한참 지난 후에야 나는, 내가 그들의 슬픔과 함께 덩그러니 이 세상에 남겨졌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해 여름밤, 대학교 본관 앞에 앉아 유튜브 알고리즘의 흐름대로 노래를 듣다가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들었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개구리와 풀벌레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기타가 곁들여지고 나서야 내가 노래를 틀었다는 걸 깨달았다. 몇 번 들었던 노래인데도 어릴 적 들었던 그들의 울음소리가 떠오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갖가지 상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보컬의 애절한 목소리와 노래 가사도 전부 나의 상념을 도왔다. 노래를 다 듣고서 흡족한 미소를 띤 채, 나는 이 노래는 두고두고 기억해야 한다며 재생목록에 추가했다. 나를 따라올 노래, 아니 내가 계속 따라갈 노래라면서.
결국 노래란 어딘가에 무언갈 남겨두어, 지금 여기서 두고두고 듣고 또 부르는 게 아닐까. 그 어딘가가 어디였는지, 남겨둔 게 뭐였는지 모르게 되더라도, 노래 속에서는 전부 살아 있으니까.
작년 구월의 어느 밤, 나는 평소처럼 상념에 잠기기 위해 불을 끄고 누웠다. 구겨진 이불을 발로 툭툭 차 폈고 이불의 무게를 느끼며 몸에 힘을 뺐다. 밤이라는 시간은 어쨌거나 견디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낮과는 반대로, 밤은 힘을 빼야 견딜 수 있다.
절기상 가을이지만 여름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던 시기라, 창문을 활짝 열어둔 상태였다. 그런데 창밖에서 가을을 닮은 선선한 바람이 방으로 흘러들어와 내 발을 적시는 거였다.
가을이 왔나,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려는 그때,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개구리와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한 마리가 아니라 수백 마리가 우는 듯한 소리.
그 뒤에 그보다 긴 슬픔이 따라올 소리.
나는 이 근처엔 농가라곤 전혀 없는데, 생각하다가 부리나케 핸드폰을 들어 <별이 진다네>를 틀었다. 바깥의 울음소리와 방 안의 노랫소리가 서로에게 흘러들어, 하나의 매듭처럼 묶여갔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열어둔 채 계속해서 그들에게 그들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오래전에 빌려 간 무언갈 돌려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