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Monologue], 2008
사람은 앉은 자리가 편하면 일어날 일이 잘 없지 않은가. 편한 자리가 어딜까 찾아 더듬거리며 헤매다 보니 바다까지 건넜다. 한국을 떠난 지 햇수로 10년. 설레고 즐거운 여정을 거쳐 옮긴 나라만 4개국. 가방 속에 챙겨 나온 것도 없이 맨몸으로 뚜벅뚜벅 걷다 보니 여기까지 다다랐다.

다 커서 고향을 떠나는 걸 게임에 비유한다면, 힘들게 키워 온 캐릭터 하나가 그냥 삭제된 것과 같달까. 한국에는 필수템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운 좋은 인생이라면 레어템도) 든든한 길드도 있고, 모르는 것 빼곤 다 알았는데, 새로운 맵에서 레벨 0부터 다시 키워내려니 목검을 주워 들고 혼자서 잡몹을 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휘두르고 보니까 소 뒷걸음질 치다 생쥐 잡듯 기회를 얻기도 하며 용케 살아 낸 지난 10년.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불안했다. 그 급류 속에 있다 보면 가끔은 제정신으로 살기도 힘들 지경이지만, 밖으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람이 행복해지는 데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는 않더라는 걸 느린 사회를 경험하며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삶의 모양은 생각보다 정말로 다양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똑똑한 두뇌가, 이비자 비치에서는 섹시한 몸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법. 내 주변을 무엇으로 채우고, 무엇을 보고 들으면서 사는지에 따라 중요해지는 가치들도 많이 변해갔다. 사랑하는 사람, 건강한 습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 내가 어디에서 있든지 변함없이 중요한 것들은 단지 그런 것들이더라. 가진 게 좀 부족해도 나를 충분하게 만드는 것들 말이다.

겨울마다 폭설이 내리는 곳에 살면서 스노보딩을 배웠다. 그 널빤지 놀이를 하면서는 눈 속에 처박히면 처박힌 김에 거친 숨을 고르는 게 평온한 일이라는 걸 알았지. 불어가 가득한 발레 수업을 영어 쓰는 이탈리안 선생님에게 처음 배우면서는 게으른 줄만 알았던 내가 땀을 흠뻑 흘리며 춤을 추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란 것도 처음 깨달았고.

여정의 방점은 남반구 어딘가에서 만난 일본 남자와 결혼이란 걸 하게 되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그 얘기를 또 하나씩 꺼내서 그려 올렸더니 내 얘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더라. 온라인 세상이란 참으로 재미있는 것. 아마 그런 게 없었던 100년 전쯤 태어났더라면 나는 저잣거리의 떠돌이 광대로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떠나지 않고는, 무엇으로든 풀어서 펼쳐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에 광대가 딱이다.

언젠가 엄마가 그랬다. “어쩜 너희는 한배를 타고 나왔는데도 이렇게 다르니.” 나랏밥 먹는 일을 하는 오빠와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런데 난 그런 것보다도 앞으로 몇 번이나 부모님의 얼굴을 더 볼 수 있을지가 점점 더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부모님 댁에 가면 공연히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주식 호가창 보는 아버지의 뒷모습이나, 임영웅 노래를 들으면서 깜빡 조는 엄마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출발도 도착도, 자꾸 하다보니 그 자체가 라이프스타일이 되어버렸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 더 이상 설레지 않는 건 조금 아쉬운 일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을 나의 터전으로 일궈 나가고,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점차 내 일로 만들어 나가는 것도 그런대로 재밌는 삶 아닌가. 흔들리는 땅과 폭풍우는 기나긴 여행길에선 특별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익숙하게 생각해야지. 그렇게 강해지기도 한다.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이 역마살 가득한 인생길을 오늘도 천천히 걸어 나간다. 그리고 이제는 받아들인다. 그게 나와 꽤 잘 맞는 삶의 방식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