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거짓된 삶>(2023)

지난 과거를 돌이켜볼 때 선명하게 기억되는 순간이 몇 있다. 이를테면 유년 시절과의 영원한 작별을 마주하게 되는 때. 그런 시퀀스가 갑작스레 펼쳐질 땐 유독 강렬한 감정들이 동시에 찾아든다. 수치심과 죄의식 같은, 처음 느껴보는 알 수 없는 감정 들의 이름은 그 장면으로부터 멀리 지난 뒤에야 알게 된다. 도망치고 싶고 숨고 싶었던, 그러면서도 자꾸만 화가 나고 숨이 막힐 것만 같다고만 느꼈던 막연한 기분. 이제는 그게 어떤 이유로 빚어진 감정이었는지 뒤늦게나마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고, 그 장면 속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장면 속 모든 것에 순응하고 용서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그건 아닐 것이다. 반드시 파괴될 수밖에 없는 것이 유년기의 세계라 할지라도, 한 세계의 몰락과 파멸이 건넨 충격과 그에 따른 고통마저 참작되지는 않는다.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하는 나를 두고 하는 험담 같은 것. <어른들의 거짓된 삶>의 조반나는 아버지로부터 못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조반나에게 직접 말한 게 아니라, 조반나가 못 들을 거라 여기고 어머니에게만 한 말이라 더 상처였다. 사춘기 자식의 변화무쌍한 태도에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했던 마음에도 없는 푸념일까. 그러기엔 아버지는 고모인 빅토리아까지 소환하며 두 사람이 점점 닮아간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지독하게도 싫어하는 여동생 빅토리아. 조반나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자신과 닮았다는 고모 빅토리아를 찾아가기에 이른다.

빅토리아 고모는 지금껏 조반나가 머물고 있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마치 그 세계의 정반대인 뒷면에 살고 있는 사람 같다. 조반나가 살고 있는 윗동네가 아닌 아랫동네, 사람들이 딱히 구획도 경계도 없이 엉겨 붙은 채 이웃집의 수저 개수나 간밤에 몰래 찾아온 손님 얼굴까지 모조리 서로 알고 있는 그런 동네에 고모는 살고 있었다. 한때는 아버지도 함께 살던 집에서 아직 여전히. 무신론자인 아버지와 다르게 빅토리아 고모는 신을 믿었고, 사랑은 화장실 창문처럼 더러운 것이라고 하면서도 죄를 짓는 걸 두려워했다. 가진 게 없지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빅토리아 고모는 제법 큰 돈을 조반나에게 주며 언제든 자신을 만나러 올 수 있게끔 탈 것을 사라고 권유한다.

조반나는 고모가 준 돈으로 산 오렌지색 베스파를 끌고 나폴리를 자유로이 움직인다. 더는 보호자의 도움 없이 보다 멀리, 집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까지 스스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조반나에게 새로이 장착된 기동력은 곧 자유를 뜻했고, 그 자유를 달아준 건 부모가 아닌 빅토리아였다. 조반나에게 빅토리아는 자유와 해방을 의미했고, 풀지 못한 미스터리를 알려주는 열쇠였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고모를 싫어하는 것인지, 두 사람 사이는 어째서 틀어진 것인지, 그리고 갓난아기였던 조반나에게 고모가 주었다던 팔찌는 어디에 있는 건지…… 빅토리아 고모는 대답 대신 조반나에게 부모를 유심히 살피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전한다. 부모를 제대로 보라고. 그러면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보이게 될 것이라고. 그건 예언이었나, 아니면 저주였을까. 한 세계가 곧 파멸하게 되리라는.

<어른들의 거짓된 삶>(2023)

중산층 지식인 계급인 조반나의 부모는 휴양지 별장과도 같은 멋진 집에서 저녁마다 가든파티를 하며 샴페인과 랍스터를 앞에 두고 가난과 불평등, 노동자 계급의 착취와 투쟁을 논한다. 어릴 적부터 늘 그래왔기에 식사 자리 위에 놓인 위선과 모순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으나, 고모를 만나고 난 이후부터 조반나는 어른들의 언행이 좀처럼 진실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완벽한 줄로만 알았던 부모,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실은 아버지의 거짓으로 위장하여 지탱해 온 일종의 연막에 불과하단 것도 알게 된다. 조반나는 특히 아버지를 제대로 보라는 고모의 직언으로 말미암아 파국이라는 결말에 도달한 것만 같아 죄의식을 느끼고 한동안 빅토리아를 찾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은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지 않고, 알고 싶지 않다고 해서 끝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다는 것도 끝내 받아들이고야 만다.

‘어릴 땐 모든 게 커 보이지, 그러다 크면 모든 게 작아 보이지.’
극 중 조반나가 마치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곤 하는 이 문장의 방점은 ‘그러다 크면’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 지금 벌어지는 이 모든 것들이 정말 별것도 아닌 일처럼 작고 작아질 거라고, 그러니 좀 더 버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종의 위로.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한 세계의 몰락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로 인한 통증이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빅토리아 고모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면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얼마큼의 통증이 찾아올지, 통증에 따른 부작용이 얼마나 길어질 것인지 열여섯의 조반나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나폴리를 대표하는 작가 엘레네 페란테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1990년대 초의 나폴리를 배경으로 10대 중반인 조반나의 성장통을 담아낸다. ‘나폴리 4부작’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녀의 여타 다른 소설과도 비슷한 궤를 띠고 있는 이 작품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건너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당도해야 하는 순간 들을 촘촘히 보여준다. 사춘기 여자애가 감당하기엔 벅찬 순간들, 비정하게 느껴질 만큼 따갑고 아린 장면 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해 조반나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잘 감당하길 바라게 된다. 삶은 나쁘고 절망적이고 불행한 것을 철저히 비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잘 통과하는 것, 잘 겪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니까.

엘레나 페란테는 “아무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성장 소설이야말로 제대로 된 성장 소설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 52p, 한길사) 더 나아지고 좋아지는 희망적인 결말이 아니더라도, 한 세계의 끝을 점치고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해 주던 어느 순간들, 그런 장면들을 오래 기억하고 매만질수록 나라는 세계는 거대한 페이스트리처럼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그리하여 성장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넉넉해지긴 할 것이다. 우리는 그 어린 날들로부터 겹겹의 세계를 포개어 지금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까.

 <어른들의 거짓된 삶>(2023)
La vita bugiarda degli adulti
OTT Netflix
연출 에도아르도 데 안젤리스
출연 조르다나 마렝고, 발레리나 골리노, 알레산드로 프레치오시
시놉시스
1990년대 나폴리. 온실 속 화초로 자란 10대 소녀가 거칠고 대담한 비토리아 고모의 도움으로 도시 속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엄격한 부모님의 분노를 마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