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냥 다 같이 죽어버리면 멸망을 볼 일이 없겠지만
가끔은 구겨진 채로 잠드는 게 좋다. 반듯이 눕는 게 버거운 날이 있다. 비뚤어지지 않도록, 자꾸 긴장해서 온몸이 빳빳해지는 날. 그런 날이면 좁은 소파에 몸을 구겨 넣는다.
그래서 이제 좀 덜하게 되었나, 죽고 싶다는 생각은.
어려운 게 많다. 책상을 치우고, 빨래를 개고, 하루 두 번 약 챙겨 먹고, 온갖 회의에 늦지 않고(결국 맨날 늦지만), 월수금 저녁마다 잊지 않고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결국 맨날 잊지만),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을 상하기 전에 챙겨먹고(결국 맨날 상하지만)…… 쉽지 않다. 진짜 하기 싫은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그게 오롯이 내 탓일 때, 나는 정말 쓸쓸해진다.
그중 단연 어려운 건 아침에 일어나는 일. 하루를 또 시작하는 일. 일어나서 노래를 트는 습관은 그래서 생긴 것 같다. 그냥 별생각 없이 노래가 내어주는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아침이 한결 나아진다.
한동안 나의 아침 노래는 이랑의 <환란의 세대>였다. 요즘도 자주 듣는다. 누군가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 죽어버리자고 하는 노래를 듣는 게 너무 웃기다고 했다. 그런데,
다- 죽어버리자-
하고 노래를 부르면 묘하게 힘이 난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 할 불행도, 절실함도, 그 어떤 독기도 없어서 한없이 가벼운 인생이고, 그런 인생을 산다고 또 한없이 작아지는, 그런 초라한 사람이다. 그래도, 그래도.
가끔은 좀 확 그냥 다 악! 하고 엎어버릴 때가 있는 것이다.
길 건너 이십억짜리 아파트가 밤늦도록 장식용 서치라이트를 환히 켜두고 있을 때, 그런데 우리 동네는 사다리차가 전신주를 잘못 건드렸다고 일대가 정전될 때, 한국에 런칭한 지 얼마 안 된 뉴욕 햄버거 가게에서 모든 식기를 일회용기로 줄 때, 그런데 가난한 내 친구들은 텀블러 들고 다니면서 할인 받을 때, 가자지구 침공으로 3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을 잃고 죽어갈 때, 그런데 저 멋진 나라들이 휴전 결의안은 거부하거나 기권을 행사하면서 서울의 퀴어문화축제에는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며 자기네 대사관을 내보낼 때, 새벽 일찍부터 휠체어를 타고 와서 지하철에 오르는 장애인들에게 온갖 야유와 비난이 쏟아질 때, 그런데 장애인 단체 불법시위로 인해 지하철이 연착된다고 재난 문자가 올 때, 그럴 때는 그냥 확, 진짜. 그래도, 그래도.
귀한 내 친구들아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그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선수 쳐버리자
이렇게 내뱉고 나면 아니 씨발 우리가 왜 죽어, 이러고 존나 장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비록 나는 별 거 아닌 사람일지언정, 내 친구들은 다 멋져서, 왠지 세상은 살 만한 것 같고, 그래서 이들과 같이 살다 보면 어떻게든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우리 다 망하고 있지 않나. 나는 지구가 멸망하는 꿈을 자주 꾼다. 특히 여름이면 더욱. 여름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비는 너무 많이 내린다. 다락 벽이 젖다 못해 누렇게 익어 가는데, 이거 정말 영원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느 순간이 영원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은, 그 다음 순간이 절대 오지 않는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되기도 한다. 다시는 건조하고 선선한 날이 오지 않을까봐 나는 종종 무서워진다.
지금도 여름은 오고 있고,
나는 풀을 심었다. 그래서,
풀이 자란다. 보리를 심고 물을 주고 마르지 않게 뚜껑을 덮는다. 기다린다. 흙이 마르지 않게 기다린다. 풀은 죽지 않는 이상 언제나 자라는 중이다. 자라는 풀을 고양이가 갉아먹고, 그러면 나는 또 새로운 보리를 심는다.
우리 그냥 다 같이 죽어버리면 멸망을 볼 일이 없겠지만. 그렇게 되면 화도 같이 못 낼 거고 재미도 없을 거다. 우리는 멸망조차도 함께 맞이할 용기가 있다. 그러니까 그냥 산다. 풀 심고 고양이 놀아주고 메일 보내고 메일 확인하면서.
그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 덜 하게 되었다.
잘 살고 싶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