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된 거야>(2022)

극 중 엠마뉘엘과 파스칼, 두 자매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앙드레를 간병하는 데 자신의 일상을 기꺼이 내어놓는다. 중년의 소설가인 엠마뉘엘은 한창 원고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동생인 파스칼과 번갈아 가며 하루에 꼭 한 번은 아버지에게 찾아가 안부를 묻고,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들을 대신 해결한다. 미술품 수집가인 아버지를 대신해 갤러리를 찾아가 새로 나온 작품을 살피고, 유언장의 수정을 위해 공증인을 만나 일 처리를 돕는다. 마비 증세로 인해 펜을 손에 쥐는 것조차 힘든 아버지를 위해 두 딸 들은 군말 없이 아버지의 대리인 역할을 자처한다.

앙드레의 예술적 영향 아래 자란 두 자매는 아버지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오랜 시간 길들여진 것처럼 보인다. 파스칼의 두 자녀 중 악기를 다루는 손주만을 유독 더 예뻐하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파스칼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예술 애호가의 고약한 취향쯤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아버지를 간병하는 동안 그들은 줄곧 브람스의 음악을 듣는다. 오래전, 아버지가 좋아하던 곡. 그 곡을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면 아버지에게 혼나곤 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해왔을 때, 자매 들은 어릴 적 아버지가 죽길 바랐던 옛 기억을 소환한다.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핀잔 섞인 말들과 탐탁지 않던 눈초리. 사는 동안 잊히지 않는 몇몇 장면들이 짧은 플래시백으로 교차하여 등장한다. 어쩌면 아버지가 언니에게 주는 선물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파스칼에게 엠마뉘엘은 그건 그저 어릴 때의 원망일 뿐이라고 일축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오랜 시간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엄마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네 엄마는 내게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아버지. 엄마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만나 아직도 그 남자와 지겨울 만큼 사랑싸움을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이제는 자기 죽음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다. 끝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어느 날, 아버지의 책상에서 권총을 발견한 엠마뉘엘은 아버지에게 왜 총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애인 때문에 화가 나서 사둔 것이라고 말한다. 죽거나 죽이거나 할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관계항에 엄마를 비롯해 두 자매가 속해 있던 적이 있었을까. 엠마뉘엘은 그 총으로 아버지를 쏴 버리는 꿈을 꾼다. 아버지에게 못생겼다고 구박당하던 어린 엠마뉘엘이 늙고 병들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를 죽이는 꿈.

<다 잘된 거야>(2022)

영화는 아버지의 조력 사망을 돕는 두 딸의 일종의 간병기다. 존엄사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을 유도하거나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과정을 시간순으로 담담히 그려내는 것에 집중한다. 다만 눈여겨볼 부분은 아버지인 앙드레가 직접 해야 할 일들을 두 자매가 전부 대리 수행한다는 것에 있다. 자매는 스위스에 있는 존엄사 서비스 단체와 미팅을 하고 수십 가지의 필요한 서류 들을 작성하며 공증인과 변호사를 만나 아버지의 마지막 결정을 대신 중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요양원에서 빼내어 사설 구급차를 통해 스위스로 옮기는 과정 내내 조력 사망이 불법인 자국의 법망을 피하기 위해 007 작전을 벌이듯 준비해야 한다. 만일 이 일이 탄로나기라도 한다면 자매는 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대한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엠마뉘엘의 당부가 무색하게 아버지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신의 결정을 거리낌 없이 알린다. 이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하고 뒤처리를 감당해야 하는 건 앙드레 본인이 아닌 자매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온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그 권리를 행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상당했다. 1만 유로 이상이 든다는 얘길 들은 앙드레는 가난한 사람은 어쩌냐며 묻는다. 무심한 표정으로 엠마뉘엘은 답한다. 죽기만을 기다려야겠죠. 그러자 앙드레는 안 됐네, 하며 피식 웃는다. 넉넉하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여든다섯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큰 부침 없이 살아온 앙드레에게 죽음은 고통을 견디며 끝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을 말리는 사촌에게 앙드레는 숨만 쉰다고 다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극 중 여러 번 등장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라고. 겪지 않아도 될 모멸과 수치를 비켜선 채로 품위를 잃지 않고 맞이하는 죽음. 앙드레에겐 그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그 결정에 순응하며 자기 대신 그 과정을 착실하게 대신해 줄 자식이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무언가 단정하다 못해 말끔하게 표백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아마도 앙드레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영화 전반에 묻어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고급스러운 취향과 남다른 기준으로 타자와 세계를 평하는 것엔 익숙했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해 맹렬하게 분투한 적은 없었던 사람. 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앙드레는 자신의 죽음이 언젠가 엠마뉘엘에게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농담을 한다. 뒷짐 지고 관망하듯 자신의 마지막을 마주하는 앙드레의 모습에서 나는 이 영화가 죽음이라는 상태를 어떻게 비추려고 하는지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러나 모두가 앙드레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력 사망의 마지막 단계는 당사자가 약이 담긴 컵을 직접 들어 마시는 것이라고 극 중 존엄사 서비스 단체의 직원은 말한다. 자신들은 그저 환자의 자살을 돕는 것일 뿐이라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한참 동안 노인 자살에 관련한 기사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윽고 내가 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에 휩싸였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영화 속 아버지의 죽음에 완벽한 조력자가 된 두 자매의 돈독한 우애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남겨진 이들이 죽음에 수긍하고 또 순응하면서 어떻게 서로 각별해지는지를 영화는 세심하게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을 마주하는 건 늘 익숙해지지 않으니까. 그것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면 더더욱.

 <다 잘된 거야>(2022)
원제 Tout s’est bien passé
OTT Wavve
감독 프랑소와 오종
출연 소피 마르소, 앙드레 뒤솔리에
시놉시스
갑자기 쓰러진 아빠 ‘앙드레’로부터 자신의 죽음을 도와 달라고 부탁받은 딸 ‘엠마뉘엘’. 끝을 선택하고 시작된 조금 다른 작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품위 있는 마스터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