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 [Purpose], 2019
당신은 ‘꿈’을 뭐라 생각할까. 나에게 그것은 동경하지만 이루고 싶은 의지는 딱히 없는 대상이다. 끈질기게 품고 있는 것만으로 든든하고, 떠올리면 야릇해지는 비밀스러운 존재 같은.

겸연쩍지만 오랜 꿈을 고백하자면,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르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가수’라는 표현을 쓰기 민망해서 구태여 풀어 말하는 것을 양해 바란다. 그런 주제에 꿈은 크다. 이왕이면 이소라, 박효신 같은 정상급 보컬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노래를 잘하냐고? 어느 학교든 반에 ‘노래 쫌 하는’ 친구들 있지 않나. 나도 그중 하나였다. 시험 기간 선생님의 신청곡을 받아 부르고 자율학습 시간을 얻어내기도 하는. 그래봤자 ‘노래방 가수’ 수준이다. 자기 객관화는 또 다른 나의 장기다.

어쩌다가 운이 좋은 밤에는 이런 꿈도 꾼다. 대형 공연장에서 내가 노래하고 있다. (아마도 올림픽 체조경기장이나 부도칸?!)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고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면 등골이 오싹할 만큼 전율이 인다. 나는 그 광경을 부감 쇼트나 롱 쇼트가 아닌 무대에 선 사람의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황홀경이 따로 없다. 하지만 금세 알아차리고 만다. 이것은 꿈이구나. 아드레날린을 다시 맛보려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려 봤자 무의식 세계로의 재진입은 안타깝게도 불가능하다.

이런 나에게 노래는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부를 수 있는 노래와 부를 수 없는 노래. 후자에 속하는 대표곡 중 하나가 태연의 ‘Better Babe’다. 개인적으로 명반으로 꼽는 태연 정규 2집 [Purpose]에 여섯 번째로 실린 곡이다. 이 앨범은 보컬리스트 태연의 만개한 기량을 아낌없이 드러내고자 하는 사명감 속에서 태어난 것 같다. 그만큼 다양한 장르와 높은 난도의 곡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중 얼터너티브 록 기반의 ‘Better Babe’는 ‘헬난이도’를 자랑한다. 태연 특유의 쏘는 고음이 파워풀한 진성으로 담겼는가 하면, 저음은 묵직하나 섬세하고, 비장미 넘치는 표현의 기승전결까지 더해져 완성도가 높다. 이 곡의 라이브를 공연장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태연조차 노래를 마친 후 ‘하얗게 다 태웠다’ 하는 기색이었다.

부르고 싶은 노래를 발견하면, 보컬을 분석하고 연마하기 위해 한 곡을 무한반복해서 듣는 습벽이 있다. 한동안은 ‘Better Babe’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떤 날은 일하고 이동하고 집에 돌아와 씻을 때까지 8시간도 넘게 이 노래를 재생했다. 가수의 숨소리 타이밍까지 외워지는 단계로 접어들면, 노래방에 가서 실전 연습에 돌입하는 것이 나의 루틴이다. 물론 나 혼자 간다. 몇 번을 반복해 부르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그곳은 ‘노래 연습장’. 마이크 앞에서 나는 좁은 링 위에 올라간 선수처럼 한없이 경건해진다.

‘Better Babe’는 보통 상대가 아니었다. 수천 번 섀도복싱을 했다고 한들 상대에게 주먹이 한 번도 가닿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처럼, 나는 음정 하나도 제대로 때려 맞추지 못했다. 태연히 씁쓸하게 읊조리는 도입부는 미친 사람의 중얼거림이 됐고, “베러 베이~ 베러 베이~” 하고 반복되는 후렴구는 민속성이 가미된 타령 같았으며, 고음이 휘몰아치는 후반부에 들어서는 나 자신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무절제한 소음을 옆방의 타인에게 듣게 하는 것도 부덕이라면 부덕이다. 평소 중간에 음악을 끊는 것을 불경하게 여기던 나이지만 서둘러 리모컨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백기를 든 것이다. 그날 이후 ‘Better Babe’는 ‘부를 수 없는 노래’ 리스트로 영원히 분류되었다.

차라리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하는 흐린 날에 나는 폭풍 같은 이 노래를 꺼내 듣는다. 1시간 연속 재생으로 들어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다. 부를 수 없어도 들을 수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 이 리스트 안에서만큼은 나는 안락한 리스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