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ah Carey, [Butterfly], 1997

나에게 가을은 광복절 다음 학교에 가는 아침이었다. 아침 공기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으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고, 등굣길 곳곳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들로 가을이 오고 말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명 관광지인 우리 동네 이곳저곳에 남겨진 여름의 잔재들. 사람들이 남기고 간 각종 쓰레기, 영업이 종료됐지만 철거되지 않고 방치된 노점상과 천막, 이제는 텅 빈 광장에서 저 혼자 나부끼는 현수막. 여름의 열기와 흥분은 식었고, 나는 매일 아침 여름이 남기고 간 허물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그리움과 허전함을 느껴야 했다. 가을은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그해 가을은 그 쓸쓸함이 유독 더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해였고 나는 지독한 사춘기를 앓았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방황의 흔적은 무단 조퇴 한번이 다일 만큼 나는 속으로 괴로워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느끼곤 했던 두려움과 긴장감과는 달랐다. 나에게는 고등학교란 환경 자체가 억압과 폭력처럼 느껴졌고 내가 느꼈던 스트레스의 강도도 말 그대로 고등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견뎌야 한다는 걸 알았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1학기와 여름방학을 버티고 2학기 개학을 맞이한 가을 아침, 사춘기의 열병은 사그라들었지만 마음에는 어떤 흔적이 남았다.

가을 주말 저녁으로 기억한다. TV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보여줬다. ‘디바’라고 불리는 유명 팝가수 여러 명이 한꺼번에 출연한 공연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실황 중계는 아니었고 그해 봄에 있었던 공연을 뒤늦게 녹화방송한 것이었다. 그중 두어 명 정도는 이름과 노래를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난 팝송에 문외한이었다. 첫 무대가 펼쳐졌다. 현악기 반주에 맞춰 사자머리를 하고 금빛 드레스를 입은 가수가 우아하게 등장한다. 노래 시작과 함께 기타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순간이 시작이었다. 나는 머라이어 캐리에 빠졌고 팝송의 세계에 말 그대로 입문했다. 사실 그날 공연의 백미는 ‘My All’은 아니었고, 내가 가장 감탄했던 가수와 무대는 따로 있었지만 ‘당신의 노래’ 청탁이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곡이 ‘My All’이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사 온 파나소닉 시디 플레이어로 이 곡을 비롯한 여러 팝송을 들으며 그해 가을을 보냈다. 대체로 쓸쓸하고 외로웠던 학창 시절 내게 위로가 되었던 노래, 그 노래를 들으며 상상에 빠져들었던 순간들, 그리고 거기서 느꼈던 순전한 행복감.

내가 ‘My All’을 좋아한 이유는 멜로디와 보컬 때문이었지만 가사 첫 소설을 쓰며 글을 마친다.

I am thinking of you
In my sleepless solitude tonight

내가 만났던, 앞으로 만날, 그리고 나의 상상 속에 언제나 함께하는 YOU
그리고 올 추석(음력 8월 15일) 다음 날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

오늘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