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세계 일주
‘새로운 문물을 스스럼없이 수용하며 견문을 넓히고 세계 시민으로서의 가치관을 확립할 것입니다.’ 미래 도시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고,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와 같은 필독서 독후감을 쓰고, 때마다 돌아오는 학급 토론에서 발언 기회가 주어지면 나는 보통 저 말을 돌려썼던 것 같다. ‘진취적인’ 내지는 ‘용감한’과 같은 표현도 곁들였을 듯싶은데, 남들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에서도 금방이라도 울 듯이 한껏 고갤 숙이고 있는 내가 어째서 그토록 다부지고 용맹하며 사교적인 단어들만 골라 썼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부여된 프로토타입-자주적이고 진취적이며 모험심 강한-이 있었을 것이고, 나 역시 그 교육 방침에 어울리도록 부단히 노력했을 터.
사실 나는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단 한 번도 든 적이 없었고,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이 책 읽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이었으며,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애가 제발 말 좀 안 걸기를 바라면서 시소나 구름사다리 말고 홀로여도 충분한 그네를 온종일 타다가, 혹여 반 친구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재빠르게 귀가하던 어린이였다. 그때는 MBTI 성격 검사 같은 걸 지금처럼 재미삼아 하지도 않았으니 ‘내향’과 ‘외향’으로 분류하기 보다는, ‘능동적’, ‘소극적’이란 표현으로 성격을 재단하곤 했다. 학기말 성적표에 ‘소극적’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으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개선해야 마땅하다고 판단해 부모에 의해 방학 때 검도나 웅변학원 같은 곳으로 보내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다행히 나는 웅변학원을 다니지 않았지만, 친구들 몇몇이 웅변학원에서 트라우마틱한 체험을 하고 난 뒤에 더더욱 나서기를 극도로 꺼리게 된 걸 보며 웅변학원에 대한 공포가 더 심해졌다.
사춘기를 지날 무렵부터 나는 나름의 사회화 과정을 거쳐 외향인의 탈을 쓴 내향인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큰일을 하려면 대범해져야 된다는 식의 무모함을 강요받는 듯한 분위기도 싫었지만, 줄곧 소심한 아이로 읽히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내 최초의 방어기제는 ‘척’이었다. 외향적으로 보이려는 ‘척’,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척’,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 무리 없는 ‘척’, 이외에도 각종 ‘~하는 척’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외향인 코스프레하는 것을 이따금씩 뚝, 하고 멈추었는데, 일례로 스무 살 생일날, 나를 빼고 친구들끼리만 내 생일파티를 한 적이 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약속을 잡지 않으려 애를 쓰거나,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겠지만, 그땐 그런 유려한 테크니션은커녕 막무가내로 잠수를 타버려 친구들에게 번번이 회자되는 몹쓸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나 극 I 성향이었던 어린 나는 무슨 배짱으로 어른이 되면 세계 곳곳을 유랑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우당탕탕 좌충우돌을 벌이는 호머 심슨 같은 캐릭터만 봐도 기가 빨리고, 자꾸만 무슨 일이 발생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는 몰입 자체가 안 되어서 졸음이 쏟아지기 일쑤며,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반나절 만에 더없는 막역지우가 되는 그 과정 전반에 아주 강력한 냉소와 회의를 지닌 나는 기실 어릴 적 내 모습 그대로에 가깝다. 이제는 ‘척’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여유가 생겼을 뿐 아니라, 세태적으로도 내향적인 성향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작동하게 되어서일지도. MBTI에 과몰입하진 않지만, 적어도 E와 I라는 구분을 투박하게나마 하게 됐다는 점에서 나는 이 검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길 부디 소망한다.
프로 여행 불편러인 내가 요즘 밥 친구처럼 즐겨 찾는 컨텐츠가 있다. 유튜브 채널 [원지의 하루]의 운영자이자 여행 유튜버인 원지 씨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해저 도시 그림을 그리고 부루마블을 하면서,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라는 서동요에 휘둘려 외향형 인간으로 자라나길 강요받은(!) 80년대 후반생이다. 원지 씨 역시 일주일에 이틀 이상 외출을 하면 심적인 부담을 느끼고, 나가야 할 일이 있어야만 나가는, 한 번 나간 김에 밖에서 해야 하는 일을 단번에 처리하려는 내향인의 특징을 모조리 지녔다. 여행 후 보름 가까이 작은 원룸 밖을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타격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끝없이 늘어질 수 있음에 행복해하는 원지 씨의 자가격리 브이로그를 보며 내적인 친밀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저렇게나 동굴형 인간이 어떻게 그 많은 대륙의 도시들을 옮겨 다닐 수 있는지 신묘하게 느껴질 따름이다.그럼에도 원지 씨는 나와 다르다. 철저하게 안정감을 추구하는 까닭에 여행 전부터 계획을 짜는 데에 전심을 쏟은 나머지, 출발하기도 전에 여행지에 질려버리고 설렘을 잃는 나와는 달리, 원지 씨는 열린 결말을 추구한다. 출발 당일, 공항에서 숙소를 예약하는 기백(!)을 보이기도 하고, 계획이 틀어져 급하게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고 빠르게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여행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해외에 체류한 기간도 있고, 그때의 기회로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어 별안간 미국으로 거취를 옮기기도 한다. 지금은 전업으로 유튜버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의 집을 직접 짓겠다는 일념으로 목수 학교에 다니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 가서도 틈틈이 목수 공부를 한다.
언제든 유연해질 수 있고, 언제든 유연해지기 위해 자주 몸을 뒤척이며 준비하는 사람. [원지의 하루]를 한 편씩 마주하면서 내가 느낀 원지 씨에 대한 인상이다. 딱딱해지지 않고, 하나에만 깊숙해지지 않고, 좋아하고 아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언제든 또 다른 호주머니에 들어있다는 마음. 그러므로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늘 든든하게 만드는 힘을 스스로 꽉 쥐고 있는 사람. 원지 씨는 그런 사람 같다.
홀로 여행하는 동안 만난 현지인들과 간간이 스몰토크를 하게 될 때마다 부디 말을 안 걸어주길 바라며 시선을 회피하는 불통(!) 여행을 하면서도, 영상 러닝 타임 내내 쫑알쫑알 혼잣말을 하며 자신의 하루를 꼼꼼히 아카이브하는 원지 씨의 여행기야말로, 내향인들이 꼭 봐야만 하는 시청각자료가 아닌가 싶다. 쥘 베른의 소설처럼, 이른바 ‘내향인의 세계일주’랄까. 그 누구와 내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다고 원지 씨가 말해준다. 그러니 너무 재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