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와 불안에서 미끄러지기
강박 일기 따위 거뜬히 매일 쓸 수 있다. 아마도 내 몸에 쏟아진 온갖 공격 어쩔 도리 없이 받아들인 경험이 쌓여 통제 강박에 기름을 부은 것 같다. 멋대로 만져지고 폭행당하고 부당한 지시에 따를 때마다 내가 완벽하게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인지 애타게 더듬거렸을 것이다. 지금도 문단속을 제대로 못 해 강도나 도둑이 현관에 들이닥치는 꿈은 잠의 단골손님이다. 내 집만큼은 빈틈없이 장악하길 원해 생물은 오직 나 하나뿐이어야 한다 주장하며, 수시로 먼지 덩이 그러모으고 머리카락 줍고 소독약 뿌리고 소품의 위치 찔끔 조정한다. 이웃집에서 고함과 우퍼스피커 소리 들려오고 화장실 환풍기 타고 들어온 담배 냄새 맡는 순간 그냥 확 죽어버릴까 싶지만, 문 앞 용케 찾아오는 택배 상자는 언제든 환영이다. 난 자칭 검수의 신, 반품의 신이다. 특히 옷의 하자를 기막히게 잘 찾아내 당당히 교환/환불을 요구한다. 몇 년 전, 양쪽 밑창이 다르게 생겨먹은 신발 한 쌍의 불량 여부에 하루 종일 집착하다 대칭 강박, 균형 강박, 질 좋은 개체 찾기 강박, 합리적 소비 강박이 처음 생겼거나 눈에 띄게 심해졌다. 성에 차지 않아 거듭 상자 뜯다 결국 구매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이즈에 민감해 태그 뜯고도 이 옷이 내 몸에 이 몸이 내 옷에 들어맞나 골머리 앓는다. 혹독하고 피곤하게 사는(죽어가는) 미친놈이 아닐 수 없는데,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비하면 꼴 보기 싫은 옷쯤이야 반품하거나 중고로 팔아치우거나 갖다 버리면 그만이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은 차치하고서, 내가 맞닥뜨린 문제를(귀찮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바로잡는 행위에 중독된 것도 같다.
난 휴가도(집에서) 알차게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밤낮 딱딱한 긴장 상태에 있다. 왕왕 모든 걸 한꺼번에 놓아버리고 싶어진다. 산에 올라 나무 우거진 인적 드문 중턱에서 고개 한껏 젖혀 숨 들이마시고 내쉬며 아 나는 여기서 왔구나 여기에 속한 존재구나 명상하곤 했으나, 이제는 산과 멀어져 대신 음악으로 몸 이곳저곳을 이완한다. 요즘은 Mitski의 커버곡이자 영화 <애프터 양>의 사운드트랙 <Glide>를 즐겨 듣는다. 이 노래는 화음 속 음 하나, 하늘, 바람, 바다가 되어 흐르고 멀리 날아가고 흔들리다 결국 모든 것에서 멀어짐과 동시에(to be away from all) 모든 것의 일부가 되어(to be one of everything) 평안에 이르려는(so to be at ease) 소망을 하염없이 속삭인다. 힘을 빼 담백한 Mitski의 목소리가 봄날 공기의 흐름처럼 아늑하다. 통제력 상실의 공포를 겪기보다 통제력이 전혀 필요 없는 상태에 잠시나마 매혹된다. 언젠가 활공하는 새가 되어 담벼락 내려다본 꿈을 다시 체험한다. 미끄러짐(glide)은 곧잘 실족, 추락, 부상, 낙오, 실패, 좌절, 굴욕, 수치와 연결되는데, 낮은 곳으로 흘러 다니는 물의 입장에선 그저 삶의 형식이자 본질일 것이다. 나도 아주 작지만 하찮지는 않은 음 하나의 역할만 맡으면 안 될까. 조화롭게 짜인 음악이 연주되거나 재생될 때 잠깐 공간을 차지했다 사라지는 음 하나. 기왕이면 <Glide>의 일부로 살아가는 나를 상상해본다. 가사 ‘ease’에 해당하는 ‘솔’로 살아가는 나를.